제목 : 예수님의 고난이 나의 아픔으로 다가 올 때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눅23:46
십자가의 고난을 인내하신 주님의 고난이
나의 아픔으로 다가올 때 진정, 나의 주님이 됩니다.
벌레만도 못한 나를 위해 천지를 창조하신 절대자 하나님께서
아들을 죽음보다 더 큰 고통 속에 버리셨나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주님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다가올 때 비로소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천국이시며 진리이시며 생명이시며
믿음이 되어 주십니다.
십자가의 구경꾼에서 믿음의 중심이 되게 하십니다.
그 사랑 어찌 잊으리오가 됩니다.
그 은혜에 빚 진 가난한 심령이 팔 복의 시작입니다.
이 온유의 복음을 증거하는 이들이 복이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이들중에 사도들도 있었고
사도바울도 있었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눈여겨 보시고 그들처럼 살기위해 기도하십시오.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 누가복음 23: 50-52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산 흔적이 있어야만
예수그리스도의 신부들입니다.
본체만체 하면 하나님께서도 도무지 우리를 모른다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몸을 장례 지내야 합니다.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처럼 죽음을 무릎쓰고
예수그리스도를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도 선한 십자가를 져야만 천국의 길이 열립니다.
우리의 정처 잃은 삶도 예수님께 맡기면 온전해집니다.
영혼은 죽지 않기에 반드시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갑니다.
먹고 사는 것도 맡기십시오.
우리가 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고난도 예수 그리스도요, 영혼의 구원도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다는 것은
우리도 회개에 이를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인내하신 예수님의 고난이
나의 아픔으로 다가올 때 진정, 나의 하나님이 됩니다.
벌레만도 못한 나를 위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아들을 죽음보다 더 큰 고통 속에 버리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살아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으로 분별 하느니라."고전 2장 13
십자가의 처음 사랑 안에서 우리도 깨어서
주님을 날마다 영접하며 복음을 담당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냥 교회만 다니면 죄는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도 십자가에서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받아야 좁은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그 처음 사랑을 체험하면 우리도 가능합니다.
오직 성령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르치십니다.
성령께서는 믿음을 가르치시고 항상 생각나게 하십니다.
영적이다는 것은 천국의 일을 말씀하십니다.
오직 온전한 믿음을 구하십시오.
이제 우리도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처럼
죽음을 무릎쓰고 예수님의 장례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셔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본체만체 하면 예수님과는 남남 됩니다.
하나님은 남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람들은 늘 달라고만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늘 사랑를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헌금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찬양을 드립니다.
늘 복음을 증거합니다.
전승에 의하면 니고데모는 복음을 전하다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십자가의 구경꾼들은 구경만 합니다.
늘 사람들에게 집중합니다.
늘 구약에서 살고 기복종교 놀음만 하고 있습니다.
명예욕에 사로잡혀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람들은
오직 예수님께 집중하며 사나 죽으나
십자가를 지고 나아갑니다.
우리는 본체만체하지 않습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주님이 먼저입니다.
다 잃더라도 예수님을 얻으면 됩니다.
영원 구원함을 받습니다.
이 복을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