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 3명이 모이면 지역과 정치,

연예인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들을 하는 것처럼

런던 사람들도 모이면

축구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면 오직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으로 한 관심이 드러나야 됩니다.

삶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 중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사는데 익숙해지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적으로 체질화 되어버린 자라면

그리스도인의 삶과는 거리가 먼 자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의 즐거움이

하나님에 대한 경의와 인류 공동의 유익과 상관이 없다면

그러한 즐거움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전시장에 진열된 전시품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승리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사로잡힌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바르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바르게 되면

이어서 또 바르게 되어야 하는 것은

이웃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어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찬송 부르고,

그렇게 믿기만 하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선행이나 종교가

사람의 생활에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한 것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근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교회에 나가는 것으로도 그리스도인이 되는 근원이 아닙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도

그리스도인이 되는 근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근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 자신이 예수님에 대해서 이전에 알았지만,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비로소 그의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훌륭한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목사이자 군목이었고,

신학대학의 교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임박해 오는

죽음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지키고

끝까지 존경을 받으며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아끼는 제자에게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털어놓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에 대해 제자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친애하는 선생님, 선생님이 전에 제게 자주 충고해 주셨던 것처럼

이번에 제가 선생님에게 충고를 드릴 수 있게 해주십시오.

 

만일 깊은 낭떠러지를 건너가려 하는데 그 낭떠러지 사이에

다리가 놓여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곳에 서서 오직 자기 자신을 점검하며

그 다리가 충분히 믿고 건너갈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다리의 상판이나 재목 그리고 공사의 질을 점검해 보고

다리가 믿을만한 것인지 아닌지 결정한 다음 확신을 갖고 건너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교수님.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 주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데 시간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근원은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이라는 통로 혹은 수단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릴 수 없습니다.

단지 교회의 직분자로서 목사에 순종하고

교회 프로그램에 충성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요즘 교회에선 그

렇게 암묵적으로 강요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있을 때와 각자의 삶의 터전과 사회조직 속에서

직장인으로서 직원들을 거느리는 사람으로서

모습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 밖에서는 세상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은

안하무인이지만 교회 안에서만은

믿음 좋은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되는 현실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끼리끼리만 어울리는 것은

일반 사회나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서로 수준이 어울리는 이들끼리 잘 소통하며 교제권이 형성됩니다.

 

불교에서 석가모니를 제거해도 불교는 존재하며,

유교에서 공자가 빠져도 유교는 건재합니다.

왜냐하면 불교와 유교는 윤리 사상의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이슬람교에서 모하메드를 제거해도 이슬람교는 살아남는데,

왜냐하면 이슬람교는 모하메드가 아닌 ‘알라’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어진다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곧 믿음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다른 사람들의 삶과 다릅니다.

아니, 달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기쁨의 생활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을 그토록 평안하게 만드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절망적인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그토록 희망이 넘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두운 세상에서

그들과 같지 않은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고,

그들의 삶을 돌아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양식을 보면서 매력을 느끼고

끌려올 수 있는 그런 저력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관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시대적 소명을 자각해야 합니다.

세속화되고 혼미해진 우리 시대의 교회를 정화해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과 다른 삶의 패턴을 가진 자임을

세상에 보여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을 보면서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하면서

우리의 삶의 방법에 매력을 느끼면서 끌려오도록 해야 할 책임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