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제의 해결은 예배의 승리로부터 온다.

예배는 우리의 존재의 이유이다.

개인이나 공동체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배가 있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배다운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리고 회복은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첫째로; 예배는 드림이다.

 

예배는 보는 게 아니라 드리는 것이다.

1) 예배는 제물을 드리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예배자는 가인과 아벨의 예를 들어볼 수 있다.

아벨의 예배는 기쁨으로 받으셨는 데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아벨의 제사의 특징을 보면 알 수있다.

아벨은 첫 양 을 드렸다.

즉, 그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가장 우선적을 여겼다.

또한 하나님이 지정한 제물이 양이기때문이다

 

또한 그는 피의 제사를 드렸다.

피의 제사는 곧 생명의 제사를 말한다.

리고 짐승을 드리는 것은 자신을 대신해서 드리는 것이다.

 

또한 그는 최상의 것을 드렸다.

성경은 그가 기름을 드렸다고 한다.

이것은 최상의 기름기가 있는 부위를 드렸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정 하신대로 정성으로 예배를 드린 것이다.

이것이 가인의 예배와 구별되는 점이었다.

가인은 자기편한대로 이삭(곡물을 농사하여 )정성을 다했다

그러나 하니님이받으시는 것은 번제이지 소제가 아니였기때문이다

 

종합하면 예배는 피조물인 인간이 주인되신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정성과 사랑을 담아 희생적으로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2) 예배는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연이어 나오는 예배에 관한 구절은 

아담의 셋째 아들 셋을 통해서 탄생한

에노스 때부터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라고 한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자신의 주로 고백하고, 선포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고백을 통해서 마음과 존재를 드리는 것이다.

또 다른 예배의 차원은 찬양과 경배를 드림이다.

이처럼 예배는 철저하게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와 예물로 드리는 것이 본질이다.

둘째로; 예배의 구체적인 차원

1) 찬양과 경배

시편 100편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예배의 단계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네 개의 단어를 통해서

찬양과 경배의 단계를 찾아볼 수 있다.

1) 루아(1절, 송영으로)

이것은 “소리쳐 외치다. 쇼파를 갖고 소리를 내다. 

왕의 취임식 때 만세를 부르다.

전쟁의 시작을 선포하라.”라는 의미가 있는 단어이다.

즉, 힘차게 찬양하며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루아이다.

왕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힘차게 소리치며 나아가는 것이다.

2) 야다 (4절, 감사함으로)

그리고 감사함으로 성문에 들어간다.

감사는 어떤 사실에 대해서 인정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속성과 하신 일에 대해서 

공적으로 선포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3) 할랄 (4절, 찬송함으로)

찬송함으로 그의 집에 들어간다.

이것은 어떤 대상을 찬양하고 자랑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야다가 주로 하신 일에 초점을 맞춘다면 

할랄은 그 존재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 점점 더 가까이 가면서 관계안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이 더욱 더 깊어지면 ‘테힐라’가 된다.

이것은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그렇게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

4) 바락(4절, 송축으로)

그래서 그분의 침실, 그분의 보좌 앞으로 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송축한다.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이라고는 무릎을 꿇거나, 

그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그렇게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는 것이다.

그것이 바락이다.

이것이 찬양과 경배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찬양은 

앞의 세 번째까지이며 마지막 바락이 경배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게 예배의 본질이다.

그래서 로마서 12장1절은 

“자신을 산제물로 드리라.”라고 한다.

2) 예물 속에 그가 담겨있다.

그 안에 그의 시간과 땀과 피와 정성과 사랑이 담겨있다.

예물이 그 마음의 중심을 알려준다.

말라기 3장에서 

하나님은 십일조와 봉헌물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그곳에서 예물을 드리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것과 동일시한다.

즉, 예물 드리는 마음을 보시고 

그 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지를 보신다는 것이다.

셋째로; 예물을 드리는 것이 예배라는 것이다.

그것이 예배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말 예배하고싶은가?

그렇다면 예물을 정결하게 드리라.

최상의 것으로 드리라.

그렇게 하나님께 나아가라.

그것이 최상의 예배로 이끌 것이다.

만일 예물을 드리고자 할 때에 

믿음으로 그 예물 안에 자신의 소원을 적으라.

그렇게 하나님께 심는 것이다.

그럴 때에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늘에 심으라.

그러면 잃어버리지 않고 몇날 못되어 다시 얻게될 것이다.

이처럼 찬양과 경배로 나아가 자신의 모든 존재와 

예물을 드림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결론으로; 그렇다며 말씀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배가 드리는 것만 있는가?

그렇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러면 말씀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배의 결과 혹은 예배의 축복이다.

하나님은 예배를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신다.

그리고 말씀으로 축복하신다.

예배의 말씀은 어떤 지식이나 신학이나 

정보나 교양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고 기쁨으로 축복하시는 것이다.

축복은 말로 선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은 하나님의 계시를 담은 말씀이어야한다.

축복이 담긴 말씀은 씨앗과 같다.

그것을 믿음으로 품고 그 약속 가운데서 순종할 때에 

축복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말씀으로 임하는 축복의 씨앗으로 아멘으로 받으라.

그리고 순종하라.

그것은 축복의 열매로 맺혀지게 되는 것이다.

예배는 철저하게 드리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지 보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핵심은 찬양과 경배와 드림이다.

이것에 성공하면 예배는 성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흔히 예배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말씀은 

그 예배의 결과이다.

예배를 받으시고 계시의 말씀으로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받으라.

그리고 삶속에서 기쁨으로 순종할 때에 

름다운 축복의 열매들이 삶속에 

주렁주렁 맺히는 예배자로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