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만나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말씀/룻기 2장 10절~12절 말씀입니다. "10,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 졌느니라 12,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미국에서 한인교회를 담임하시는 한 목사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미국 이민자가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마중 나오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공항에 어떤 사람이 마중 나오느냐에 따라 교회도 결정되고 직업까지 결정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세탁소를 하는 사람이 마중 나오면 이민자도 세탁소에서 일할 가능성이 크고, 마트 사장이 마중 나오면 훗날 마트에서 일할 가능성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인생도 똑같습니다. 처음엔 답이 안 보이는 퍼즐 같았지만,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이끌어 주십니다. 그 과정엔 항상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인생 퍼즐이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하나님께서 왜 이 사람을 만나게 하셨고, 이 사람을 통해서 무엇을 주셨는지도 깨닫게 됩니다.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룻 2:10~11) 오늘 본문엔 룻과 보아스의 운명적인 만남이 등장합니다. 룻은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따르기로 하고 낯선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지만, 그에겐 아무것도 보장된 게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보아스라는 한 사람을 룻과 만나게 하셔서 역사를 이뤄가십니다. 룻기 2장 3절을 보면 룻은 이삭을 줍다가 자신의 시아버지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까지 가게 됩니다. 말씀엔 ‘우연히’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룻의 관점에서 그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기 때문에 우연이란 말이 나오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는 모두 계획 아래 있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룻에게 보아스라는 사람을 만나게 하실 이유가 있으셨습니다. 우연으로 치부하는 인연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에서 그 사람을 만났을 수 있습니다. 만남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부어주시고 이루실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보아스는 많은 여인 중에서도 룻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룻이 보아스의 눈에 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밭에는 룻 이외에도 수많은 여인이 이삭을 줍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삭을 줍는 사람들에게 부유한 주인이 관심을 두는 건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룻이 보아스의 관심을 끌게 된 배경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어려움 가운데 처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그분의 사람들을 보내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만남의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이종남 목사(추산교회)님이 보내주신 말씀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2024년에도 하나님께서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만남의 복을 계속해서 누리게 하여 주시고,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말씀/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승리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죄와의 싸움에서 넘어 질 때도 있고 , 삶에서 다가오는 여러 모양의 상처로 인하여 낙심하기도하고 원망하기도 하며 무기력한 삶을 살때도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지프라기같은 신앙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침 안개와 같은 신앙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복음을 고백하고 구원의 노래는 부르지만 열매가 없는 삶을 사는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왜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삶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속에 내가 살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이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내가 죽고 예수가 사는 역사가 시간마다 있어야 할 것입니다. 1.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 에레미아 17장 9절 말씀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타락하고 부패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선을 행할 것을 결심하지만 곧 악을 행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에 내가 죽지 않니하고 혈기와 습관과 욕심과 정욕,그리고 고집과 교만과 자랑 그리고 자존심으로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내 자아가 죽어야 하는 이유는 내 자아가 죽지 않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자기중심적이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나 교회생활도 자기중심적으로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를 높이려는 교만과 고집 때문에 열심히 일은 하지만 합력하여 선을 이룰수가 없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 안의 내가 죽어야 내 안에 예수님이 살고 우리가 믿음 안에 살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2. 나는 죽고 예수님이 사신다는 의미 내가 죽었다란 말은 내속의 내가 죽었다란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다시말하면 예수님처럼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비난하고 소리를 질러도 무덤 속에 있는 사람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무덤에 가서 아무리 칭찬하고 추켜세워도 그들이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그것 역시 죽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으면 상처 받을 일도 없고, 힘들 일도 없고,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일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을 느낄 내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과 능력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 지혜나 결단이나 내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하는 것도 내 힘으로 하는 순종이 있고 예수님의 힘으로 하는 순종이 있습니다. 내 힘으로 하는 순종은 얼마 못 가서 좌절하지만 주님의 힘으로 하는 순종은 기쁨과 감사가 됩니다. 사도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말씀했고 예수님도 "나와 복음을 위하여 죽고자 하는 자는 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3. 나는 죽고 예수님이 사시려면? 어떻게 하면 나는 죽은 예수님은 사실 수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면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세례의 의미도 그것입니다. 이미 물속에 들어갔을 때에 옛 사람은 죽었고, 물 밖으로 나올 때에 새사람이 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내가 죽었음을 날마다 순간마다 선포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지... 내가 죽어야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저는 이미 죽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저는 죽었습니다.”를 믿음으로 선포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생명과 능력으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분노나 두려움 혹은 염려나 미움 그리고 원망과 조바심의 문제도 그것을 느끼는 자아의 죽음을 선포하고 주님의 다스리심과 이끄심을 구하고 순종할 때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날마다 예수로 사시는 우리 모두가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 저는 이미 죽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부터는 주님이 제 모든삶을 주관해 주세요. 저를 의의도구로 삼아 주님원하시는대로 살게 하시고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백할 때 우리 삶은 복된 삶으로,승리의 삶이 될 줄 믿습니다. 놀라운 기적의 삶이 될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나의 나된것은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배운 지식과 경험으로 살아가는 것이아니라 오늘도 내안에 역사하고 계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능력으로 살게됨을 고백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예수로 살고 예수의 힘으로 서며 예수와 가며 예수의 길로 가서 예수 안에서 영광을 보는 향기로운,열매가 은혜로 가득한 풍성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늘소리(장재식장로)가... 우리의 생명과 호흡을 주시며 늘 사랑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 우리는 늘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넘어지고 흔들리며 사는 불쌍한 종들임을 고백합니다. 아주 작은 일에도 실족하며 낙심하는 종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아직도 우리안에 내가 살아서 나를 주장하려 합니다. 무엇이 그리 들어 내 세울것이 많은지 나를 높이려 합니다. 우리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시고 오직 예수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골고다 십자가에서 고초와 아픔과 피흘림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비통함을 외면한채 십자가 아래서(요한 복음 19장 24절) 예수님의 속옷을 제비 뽑는 군인들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과 십자가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관심이 없이 욕심만 채우려는 바로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요? 되돌아 보게 하시고 로마서 6장 6절의 말씀에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의 종노릇하지 안으려 함이라 하셨습니다. 온전히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는 님들이 되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실 줄 믿사오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하늘소리(장재식장로)가... 주님! 우리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오니 힘든 일에 부딪힐 때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찢어진 상처마다 피고름이 흘러내려도 그 아픔에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게 하소서 어떤 순간에도 잘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을 갖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헛된 욕망과 욕심에 빠져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게 하소서. 고통당할 때 도리어 믿음이 성숙하는 계기가 되도록 강함과 담대함을 주소서. 불안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불만 가득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아무런 가치없는 일로 인해 걱정을 쌓아놓치 않게 하하시고, 걱정을 구실 삼아 믿음에서 멀어지지 않게 하소서. 있지도 않은 일로 인해 근심을 쌓아놓치 않게 하시고, 하지 않아도 될 걱정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게 하소서. 어려울 때일수록 자신에게만 빠져 있지 않게 하시고 주변을 돌아보며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근심 걱정을 만드는 삶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기쁨을 만들어가는 삶을 살아 가게 하소서 -매일 기도에서.../하늘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