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은 두 형태로 변화됩니다.
꾸미는 사람과 가꾸는 사람으로 갈라집니다.
꾸미는 사람은 성경 지식을 지적하는 도구로 사용하며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기에 교만한 자들이 많습니다.
가꾸는 사람은 성경 지식을 자신을 가르치는 절대적인 잣대로 여기기에
내면을 가꾸는 지혜로 받아들이며 매우 겸손합니다.
꾸미는 사람은 속사람은 변화가 없으면서 겉사람만 거룩하려고 하지만,
속사람의 본질은 변함없기에 결국 겉사람도 속사람의 모습이 나옵니다.
가꾸는 사람은 속사람이 거룩하기에 겉사람도 당연히 거룩합니다.
꾸미는 사람은 은혜를 내 속사람을 감추고 방어하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가꾸는 사람은 은혜를 내 속사람을 연단하는 축복으로 여깁니다.
꾸미는 사람의 기도는 내 잠재된 욕구를 해결하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가꾸는 사람의 기도는 주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뤄지길 바랄 뿐입니다.
꾸미는 사람은 뭔가를 계산하고 주님을 사랑하려고 하지만,
가꾸는 사람은 계산 없이 오직 순수하게 주님을 사랑합니다.
꾸미는 사람은 지옥이 무서워 천국에 가려고 애쓰지만,
가꾸는 사람은 주님을 매우 사랑하기에 천국에 가려고 합니다.
꾸미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가꾸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생명으로 여깁니다.
꾸미는 사람은 받는 것만 좋아하고 흘려보내는 법이 없습니다.
가꾸는 사람은 흘려보내는 것을 더욱 좋아합니다.
꾸미는 사람은 교만하지만, 가꾸는 사람은 아주 겸손합니다.
꾸미는 사람은 성경 말씀을 머리에만 저장하려고 하지만,
가꾸는 사람은 뜨거운 심장에 넣고 더욱 뜨겁게 만듭니다.
꾸미는 사람은 주님 가신 길을 이해하는 것으로 끝내지만,
가꾸는 사람은 주님 가신 길을 무조건 믿고 따라갑니다.
꾸미는 사람은 남의 눈에 든 가시를 바라보며 정죄 판단을 일삼지만,
가꾸는 사람은 내 눈의 들보를 더욱 신경 쓰며 뽑으려고 합니다.
꾸미는 사람은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지만,
가꾸는 사람은 삶으로 주여주여 합니다.
꾸미는 사람은 주님의 진리를 머리로만 깨달으려고 하지만,
가꾸는 사람은 가슴으로 깨닫습니다.
꾸미는 사람은 나를 나타내려고 상당히 공을 들이지만,
가꾸는 사람은 나를 숨기고 주님을 나타내는 데 온 힘을 기울입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겉사람만 꾸미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내 속사람을 주님의 말씀으로 가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 보면
교회에서는 다 거룩해 보이고 인격자들만 모인 집합소로 보입니다.
그러나 교회만 나가면 가정에서, 직장에서, 어느 모임에서...
세상적인 이방인의 모습이 여지없이 나옵니다.
교회 내에서는 교인끼리는 서로 속이고 속을 수 있으나,
주님은 하나도 빠짐없이 현미경처럼 모두 지켜보고 계십니다.
과연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며 공의의 하나님으로 인식한다면
교회에서나 밖에서의 모습이 절대 다를 수가 없습니다.
같은 교인들의 시선이 두려워 가식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 아니라,
추상같은 주님의 시선을 더 두려워하며 온전히 숙여야 합니다.
교회 안팎에서의 모습이 다르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 두려워하는 사람은 장소를 불문하고 어디에서든
반드시 거룩한 모습이 나옵니다.
입술로만 주님을 사랑한다, 두려워한다, 거룩한 분이시다
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그것은 거듭나지 않았다는 증거만 보일 뿐입니다.
입술이 아니라, 현실의 삶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십시오.
그런 분들이 진정 거듭난 분들입니다.
속사람은 어떻게 가꾸는 것일까요...
삶은 변화되지않으려면서 입술로만 변화시켜달라고 매달린다면
그런 날은 평생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삶은 그대로 유지하려 하면서...
주님께 자기를 부인하고 굴복할 마음이 없으면서...
변화만 받으려 기도하기에 계속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속사람이 진정으로 변화될까요...
내 삶을 주님께 모두 드리고 철저히 맡기십시오.
세상적으로 살았던 나를 단호히 부인하고 주님 앞에 굴복하십시오.
입술로만 부인하지 말고
회개에 힘쓰고 그 증거인 삶으로도 부인하십시오.
주님은 그 진정성을 지켜보시다가 합당하다 여기는 때가 오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속사람을 변화시켜주십니다.
살아 역사하는 성경 말씀의 깨달음을 통하여, 혹은
어떤 환경과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성령께서 만지셔서
변화시켜주십니다.
그것이 곧 성령으로 거듭남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이 반드시 올텐데
꾸미는 데만 급급하여 가꾸지 못한 삶을 회상하면서
후회하며 통곡하는 모습이 되지 마십시오.
세상에서는 자신의 죄에 당당하다가, 막상 주님 앞에 서는 날
땅을 치며 후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면서 내 죄로 애통하다가
회개하고 거듭나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애통함과 가난한 심령은 이 땅에서만 있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애통해 봐야 이미 늦은 때입니다.
속사람이 거듭나면 겉사람은 저절로 거룩의 모습이 나옵니다.
속사람이 거듭나면 겉사람은 예수님의 모습이 반드시 나옵니다.
꾸미지 말고 믿음으로 가꿔서 거듭난 모든 분들이 되시길
간절히 권면 드립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 4장 3-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