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된 성경 말씀은...  

주님의 뜻을 실상으로 기록한 생명이고, 말씀 자체가 이미 주님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장 1절) 

 

성경 말씀이 왜 기록되었습니까... 

에덴동산 시절 금지한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마귀 속성이 들어와 

원죄를 갖고 태어난 인류를 위해, 돌이키는 방법을 기록한 게 성경입니다. 

더 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원받는 방법을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66권으로 매우 많은 내용이 기록되었지만, 

면밀히 접하다 보면, 본질적 큰 줄기가 계속 반복됨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 돌아오라(돌이켜 회개하고 거듭나라)'는 그것입니다. 

성경의 가장 큰 주제는 당연히 '사랑'이지만.. 그 사랑도 거듭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에 거듭남에 대하여 이런저런 표현을 반복해 가며 

서술되었는데... 그게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지 않고는 거듭날(선악과를 토해낼) 수 없으며, 

설령, 성경을 열번 백번 천번 읽었어도.. 주님을 절박하게 구할 생각 없이 

귀로 듣기만 하거나, 머리에만 채워 학술적 지식으로만 쌓고있다면 

아무 의미 없는 헛된 믿음 생활입니다. 

즉, 아무리 큰 항아리에 물(지식)만 열심히 채워봐야 여전히 물입니다. 

잔칫집에서 필요한 것은 포도주이지 밍숭맹숭한 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항아리 속 소량의 물이라도 포도주로 변화돼야 그 가치가 있습니다. 

포도주로 변화된다는 본질적 의미는... 

천국 혼인 잔치에는 거듭난 성도(포도주)가 필요한 것이지 

변화되지 않은 사람(맹물)은.. 천국 잔치에 전혀 필요 없다는 걸 뜻합니다. 

또한, 맹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것은, 예수님의 터치가 있어야 가능했듯 

말씀(주님)이 내 육의 성벽을 부수고 심령을 터치해야만... 

옛사람(맹물)에서 새사람(포도주)으로 변화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그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맹물이 아닌, 포도주로 변화되는 것이 구원의 조건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포도주로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천국 잔치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5절) 

 

성경에는 구약부터 신약까지, 다양한 표현을 통해 

돌이켜 간절하게 주님을 찾고, 구하고, 돌아오라는 메시지가 참 많습니다. 

아니, 성경 말씀 전체가 주님을 구하라는 메시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주님을 구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저 입술로만 

'주여~ 제가 주님을 구하고 찾으오니 제게 임재하소서'... 이런 것일까요?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중언부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주님을 구하는 것일까요... 

실상,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는 것, 그것이 진정 주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말씀으로 너에게 찾아왔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말씀을 접한 후, 너희 악한 죄성을 깨달아 알고) 

문을 열면(주님을 구함... 즉, 자기 부인과 회개)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구한 자에게 성령으로 임재하여)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동행하리라)" (요한계시록 3장 20절) 

 

교회당에서 흔히 행하는... 

5분 동안 이루어지는 초신자들의 주님 영접식에서 

입술로 시인만 하면 그것이 성령 임재이고 믿음이란 가르침은 위험합니다. 

즉, 교회당만 다니면... 그 자체가 믿음이고 구원이라고 인식시킵니다. 

이건 성경에도 없는 것으로써, 사람 편의로 만든 장로의 유전(교리)입니다. 

성경은... 교리로 사람들을 미혹할 걸 대비해 곳곳에서 경고합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사람의 습성)과 세상의 초등학문(교리)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골로새서 2장 8절) 

 

내가 주님을 만나 새 생명을 입으면, 

굳이 교회당 내에서 목사님이 입술로 시인하도록 시키지 않아도,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조차 주님을 나의 구주라 저절로 시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 영접식에서 입으로 시인해서 그분이 영접되는 게 아니라, 

이미 회개(나를 부인)하고 거듭났기에.. 그분이 영접되어 시인하는 겁니다. 

다음의 말씀이 그 증거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십자가를 통과해 새 생명을 얻은 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장 10절)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성령으로 아니하고는(거듭나지 않고서는)
누구든지(감히 그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내 구세주라)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2장 3절) 

 

주님 영접식에서 목사님의 선문에 의하여, 

후답으로 시인한 걸 가지고 성령으로 인해 된 거라 하면 절대 안 됩니다. 

마치 '금 나와라 뚝딱' 하듯... 편하고 쉽게 물건 찍어내듯 그러면 안 됩니다. 

5분짜리 영접식에 참가한 초신자들이 

입술 시인 한방에 감쪽같이 주님 영접이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성경적인 주님 영접은... 사람들의 영성(마음 밭)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계기로 일순간 거듭나는 분들도 있고, 평생동안 교회당에 다녔어도 

주님을 영접하지 못한채, 이 땅을 떠나는 분들이 허다합니다. 

평생을 교회당에 다니며 천국에 들어가길 구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다는 주님의 말씀은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하여.. 십자가를 만난 온전한 선생들은 절대, 거짓 영접식을 거행하지 않고, 

교인들이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십자가 말씀(자기 부인, 회개, 거듭남)에 

피를 토하듯 총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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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회개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장 23절)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누가복음 11장 9

 

위 두 말씀은 얼핏 다른 내용 같지만, 

표현만 다를 뿐, 실은 똑같은 의미를 가진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은, 주님을 구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메시지입니다. 

주님을 구한다는 의미는.. 입술로 쉽게 말하듯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내 나라를 구축하고 왕 노릇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그것을 전면 포기하고, 

주님의 통치에만 의지하겠다는 확고한 결단이 들어선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주님 터치로 거듭납니다. 

또한 그런 사람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구세주라 시인하게 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세주라며 당당하게 시인하는 의미 속에는 

내 모든 걸 포기했다는 결단이 포함된 시인입니다. 

전면 포기한 사람이 육과 세상적 기질을 마구 쏟아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열매로 증거된다는 말씀이 바로 그 의미이고, 여기에 도달한 성도들만이 

다음과 같은 바울 선생의 독백처럼 저절로 고백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정리하며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 누구든 주님을 만나(거듭나)지 않고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 거듭난 믿음을 소망한다면... 일단 성경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말씀이 율법이고, 율법은.. 내 영적인 상태가 어떤지 선명하게 진단합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접하지 않고는 결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접해도, 머리로 들어가 쌓이면 안 됩니다. 

심장을 찌르고 들어와 내 육적 가치관을 뒤집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허나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주님을 믿는다며 수십 년 교회당에 다녀도, 

이론으로는 알겠는데, 왜 나는 안 될까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그 이유를 자신의 심장에게 물어보십시오. 

날 포기할 맘이 없기에 나타나는 필연적 결과란 답이 돌아올 것입니다. 

입술로는 포기한다면서도 여전히 세상에 기대고, 육의 속성을 방관한다면 

그는 여전히 자기를 부인할(회개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양심은 절대 거짓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런 자였기 때문에, 그런 현상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인생이 평탄할 때는.. 절박함이 없기에 날 포기할 맘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기댈 곳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 은혜로 인생의 험난한 굴곡을 만나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령 상태가 되는데, 

그분을 간절히 붙잡지 않으면 내 영과 혼과 육은 다 끝장날 것 같았습니다. 

하여, 날 포기하며 주님만 붙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게 되더군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제발~ 미련한 저처럼 꼭 두들겨 맞아야 돌아서는 분들이 되지 말고, 

기록된 성경 말씀을 철저히 의지하면서 사전에 돌이키는 분들이 되십시오. 

저처럼, 꼭 매를 맞아야 포기하고 돌아서는 것도 복이지만, 

맞지 않고 돌아서는 게 더 큰 복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난 후, 그분과 동행하며 이 땅에서 살다 보면... 

옛사람일 때, 나를 통치하던 내 중심적인 자아는 소멸되어 갈 뿐만 아니라... 

눈, 귀, 마음을 통해 들어온 세상 것들이 내 관심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고, 

주님만 점점 더 입체적으로 느껴짐을 눈치채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