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신령한 품성이고 
이것은 신의 성질 또는 신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영성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를 보면 
은사나 능력, 또는 영적인 신령한 체험등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보다는 특별한 사역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깊은 영성 혹은 강한 영성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마 11장 29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후 1장 4절) 

매일 아침 신문을 펼치면 
종교면 하단에 수많은 광고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00영성원, 00영성훈련원, 등등등 
많은 기도원과 세미나를 통하여 영성을 훈련하고 
깊은 영성을 체험하자는 내용들입니다. 

훈련으로 배움으로 방법으로 
영성이 터득 되어지는 것일까..... 

영성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진짜 영성인 그리스도의 성품은 
겉으로 얻어지는 나타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든 행동을 이끌어가는 
내면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온유의 사전적 의미는 온화하고 부드러움 , 
마음씨가 따뜻함 입니다. 

주님은 공생애 사역 동안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을 향하여 
많은 책망을 하셨고 
가나안 여인에게는 가장 수치스러운 표현으로서 
개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이 온유하신 이유는.... 
주님은 그 마음의 온화하고 부드러움과 
그들을 향한 사랑을 기반으로한 책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책망하거나 비판할때에 
우리의 감정이 반드시 따라갑니다. 
성폭행범이나 살인자들을 향하여 
우리는 내면으로부터 
강한 적대적 감정과 미움과 비판의 마음으로서 
시작된 평가를 하게 됩니다. 

그들뿐 아니라, 
생활가운데 걸음걸음마다 우리의 감정을 
강하게 격동시키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만나게 되는지.... 

우리의 표현은 
우리의 감정과 내면의 충동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입니다. 

좀더 성숙되었다 하는 사람들은 
감정과 내면의 충동을 조금 누그려 뜨려 
표현을 순화하는 정도입니다. 
겉으로의 표현이 잘 억제될수록 
온유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온유는 참아지고 
억제된 표현의 온유가 아니라, 
실제적인 내면의 온유입니다.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온화하고 부드러움......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온유함으로써 
출발된 책망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삶의 모든 표현은 
이 온유가 이끌어 가고 있으며 
온유함을 기반으로하는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겸손이란..... 
겸손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높이고 
제 몸을 낮추는 것입니다. 
겸손 또한 행동의 결과를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얼마든지 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위하여 
남을 높일수 있습니다. 
직장 상사라든지 권세자들과 권력자들과 
권위있는 자들 앞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그들을 높이고 
우리의 몸을 낮출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겸손은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신이시고 우리는 사람입니다. 
종류 자체가 원천적으로 다릅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얼마든지 자신을 높이시고 
드러내셔도 우리는 그분 앞에 할말이 없습니다. 

주님은 신이시고 우리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창조주 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 
(마8장 3절~4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마9장30절)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도 못하리라.. (마12장 19절) 

들레다 라는 말은 시끄럽게 떠들다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즉, 주님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일을 떠벌리기를 싫어하셨다는 것입니다. 
자기 피알시대라 하여 자신의 업적과 이력을 
줄줄이 기록하여 어떻게 하든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하는 시대를 살
아가는우리에게 주님은 들레지 아니하시는 모습으로 
진짜 겸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겸손은 행동이 아니라, 
행동을 이끌어가는 마음입니다. 

겸손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여지지 않게 감추는 것이고 
자신을 감추는 실제적 이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무엘상 16장 7절)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역의 종류나 
크기, 성과, 결과를 보시지 않고 
우리 중심에 있는 그 무엇을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출발과 시작이 무엇에 의한 것이며 
무엇에 의하여 의도 되어졌는가를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음 말씀은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 전서 13장 1절~3절) 

우리 주변에는 많은 명품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비싸니까 
그것과 똑같이 생긴 짝퉁이 돌아다닙니다. 
생긴것으로는 구별할수 없으니 
짝퉁으로라도 명품을 갖고 싶은 욕구를 채우는 것입니다. 

명품백은 절대 짝퉁이 될수 없고, 
짝퉁백이 절대 명품이 될수 없습니다. 
그래서 짝퉁이 명품행세를 할수는 있지만 
그 브렌드샵에 가서 A/S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짝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역은 진짜가 짝퉁이 될수 있고, 
짝퉁이 진짜가 될수있습니다. 
은혜를 받고 은사를 받아 사역을 하다가 
그 안에 있던 사랑을 잃어버리면 
여전히 사역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가짜 사역이 되는 것이고, 
가짜 사역을 하다가도 그 안에 사랑을 갖게 되면 
그것은 진짜 사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첫사랑을 어디에서 잃었는지 확인하고 
그 시점으로 돌아가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방법은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슨 사역을 하며 
얼마나 큰 성과를 얻었느냐가 아니라, 
그 중심에 무엇이 있느냐로 알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야기 하다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모든 사역의 중심과 출발이 사랑이어야 하는데 
그 사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열심으로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흉내낼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성령)가 채워 져야 하는 것이며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채워 졌을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출발된 사역이 시작 되는 것이며 
그것이 진짜 그리스도인, 진짜 사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진짜인지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앞에서 이야기한 그리스도의 성품(성령의 열매)이 
나타나고 있는가를 보면 알수있습니다. 

온유와 겸손..... 
그것이 신의 성품이요 진정한 영성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채워져야만 진짜 그리스도인이요, 
진짜 사랑으로 출발된 사역을 할수 있으며 
그러한 사람에게는 온유와 겸손이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그사람의 사역이나 활동, 
영향력, 사역의 크기 성과등을 보며 평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정도의 불합리함이나 
인격적인 오류를 간과하게 됩니다.
사람이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동기와 출발이 되는 그 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노력만 하면 진짜 처럼 보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꽃같이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을 속일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중심을 살펴야 합니다. 

나는 가짜인가... 진짜인가... 
혹시 진짜 같은 가짜가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