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에는 어떤 식으로 표현되었는지 찾아 확인해 봤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이나 태도를 완전히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 
나름대로 잘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거듭남을 설명하기에 어딘가 허전합니다. 

내 의지로, 개과천선(改過遷善)할 수도 있다는 인본적 느낌이 묻어납니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는 거듭남은 무엇일까요... 

*복음의 말씀을 통해 내 실체(죄인)를 알았으므로,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걸 눈치채게 됩니다. 

하여, 내 죄에 대한 내적 애통함으로 주님을 찾고 구하여(자기 부인, 회개) 

죄성이 주님 은혜(성령 임재, 보혈 피)로 죽어가고, 

그 대신... 주의 거룩한 속성(성령의 9가지 열매)이 내 심령을 점령한 사건... 

이것을 거듭남(새 생명을 얻음) 또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믿는다는 많은 분들이... 
거듭난다는 성경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함을 봅니다. 
교회당 다니며 성경 지식이 좀 있고, 머리로 주님을 인정하여 '주여' 하면 
거듭남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매우 많고, 또 그것을 구원으로 연결합니다. 
수많은 선생님들이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가르쳐왔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이 그런 거라면 믿음은 아주 쉬운 것이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교인들은 구원받아야 마땅합니다. 
이 말이 맞다면 천국 문은 좁은 문이 아니라, 넓은 문이 돼야 합당합니다. 
허나, 예수님께서 증거하길, 천국 문은 좁은 문이라 분명히 경고하며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매우 적고, 

들어가길 구하여도 못 하는 자가 많다고 쐐기를 박으며 강조하셨습니다. 

아무리 이 시대의 선생들이. 천국에 넉넉히 들어가는 것처럼 가르쳐도, 

예수님이 아니라 하시면 무조건 아닌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누가복음 13장 2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장 13-14절)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구원받을 믿음이 거의 없다)" 

(누가복음 18장 8절) 
 
말씀드렸듯, 거듭남의 의미는... 
내 옛 생명(육)이 죽고, 새 생명(영)으로 다시 태어남입니다. 
성경 지식을 습득하는 것 자체만으로서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거듭나려면 성경을 많이 접해야 하는 것은, 분명히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교회당에 안 다니던 이방인이 
교회당에 다니게 되었다고 새 생명을 얻은 게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동선이 전과 다르게 약간 바뀐 것이고, 성경에 있는 내용을 
머릿속에 정보화시킨 것뿐입니다. 

교인들에게 말씀을 가르친다는 수많은 목사님들이 즐비하고, 

성경만 연구한 신학 박사라 해서, 그들이 다 거듭났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런 경우를 거듭남으로 일반화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태어납니까... 
사람의 정자와 난자가 연합되어야만 새 생명이 잉태되지만, 

만약, 난자가 정자를 만나지 못하면.. 밖으로 버려져 모든 것이 끝납니다. 

이게 바로 물질세계를 통한 거듭남과 버려짐의 원리를 예시하는 것인데, 

사람의 영도 이와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사람의 영이,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과 실상적인 사건으로 연합되어야 
주님을 닮은... 영적 새 생명이 잉태되어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게 곧 거듭남이고, 옛(육)사람의 속성이 청산되며, 
성령님의 인도로 구원의 여정이 시작되는데, 그것이 참믿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곧,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8장 9절) 

그러나... 

사람의 영도, 정자를 만나지 못한 난자의 운명이 그러하듯, 

주의 성령을 만나지 못해 변화되지 않았다면... 육신의 호흡이 멈추는 날 

밖의 어두운 곳(지옥)으로 냉정히 버려지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마다)

찍혀 불(지옥)에 던져지리라" (마태복음 3장 10절)

 

이처럼... 
성경을 알고 동의해서, 혹은 교회당을 다녀서가 아니라, 
실제,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내 영과 연합된 것, 그것이 거듭남입니다.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면, 

정자 고유의 DNA가 형성되어, 태어난 아이에게 

정자 주인인 아버지의 속성이 나타나며, 또한 그 속성대로 살아갑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내 영과 연합되면... 

주님의 DNA인 거룩한 속성이, 주님을 만난 성도에게 스며들어 

주님을 닮게 되는데, 그 속성이 성도를 통하여 삶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 속성을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라고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거듭나기 전이었을 때의 악한 속성들이 점차적 소멸되어 가며, 
그 반대로, 주님의 거룩한 속성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고유 특성이 
점점 팽창해 가며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거듭났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죄성)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데... 

초신자 입교식 때 입술로 주님을 인정하고, 교회당에 다니고, 
열심히 봉사하고, '주여주여' 외치며, 성경 지식이 좀 있으면, 그 상황들을 
성령 받은 증거로 가르치는 선생이 있고, 교인들은 그렇게 가르침을 받아 
주님을 영접한 믿음인 줄 오해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를 거듭난 믿음으로 기정사실화 하여, 
실제로 수많은 선생들이 교인들에게 주님을 구하지 못하게 합니다. 
5분짜리 초신자 영접식 때 성령을 다 영접했는데, 왜 또 성령을 구하냐며 
금지시키는데, 이는 곧 십자가 설교를 하지 않는 부분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무서운 성령 훼방죕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이 설교하거나 글 쓰는 걸 보면, 그 속에 
회개, 자기 부인, 거듭남, 좁은 길, 성령의 열매 같은.. 십자가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죄의 존재로 태어나게 했으니 어쩔 수 없다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육의 악한 열매가 아무리 쏟아져나와도 

그것을 전혀 이상히 여기지 않게 되고, 그것은 구원과 전혀 관계없다며 

여전히 이방인과 똑같은 열매로 사는 것입니다. 

이분들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왜 변화가 없을까요... 성경 말씀이 아닌, 

사람이 만든 교리가 육적 기질에 잘 섞이니 그걸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문제점을 계속 경고합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사람의 습성)과 세상의 초등학문(교리)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골로새서 2장 8절) 

 

때(말세)가 이르리니 

사람(교인들)이 바른 교훈(기록된 진짜 복음)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죄성을 고수하며)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쉬운 구원 교리)를 따르리라 

(디모데후서 4장 3-4절) 

 

하여, 이런 설교에 중독된 교인들은 

성령으로 변화된 성도의 선한 모습을 행위니 율법적이라 정죄하고, 

자신의 육적 모습을 왜곡된 믿음과 은혜와 사랑으로 포장해 정당화하는... 

늪에 빠지게 되는데... 이런 설교가 듣기에는 참 평안하고,

마음의 위로를 주는 것 같지만.. 결국, 그 끝은 멸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독을 주입한 달콤한 초컬릿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초컬릿 복음은...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철저히 사람 기준의 복음입니다. 

그러니, 입술로는 예수님을 '주여주여' 하며 열심히 시인하지만, 

행위로는 부인하니... 바울 선생은 이들에게 가증한 자, 복종하지 않는 자,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라며 견책하는 것입니다.(딛 1: 16) 

그러므로 교인들이 아무리 듣기 불편해해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 

전하는 것이 교인들을 살리는 길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주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죄성이 흘러나오도록 하신 적 없습니다. 

사람이 마귀의 미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죄가 들어온 것이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주님이 아닌,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하여, 선악과 증상(육의 열매)를 토해내지(회개) 못하면 멸망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 죄인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를 그대로 두지 않고 구원시키고자  

주님께서는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것이고, 회개와 자기 부인을 외치며 

선악과 사건으로 사람에게 들어온 악한 죄성들을 보혈 피의 능력으로 

토해내도록 하신 것... 그게 거듭남입니다. 

 
이성적 머리로 주님을 인정하는 것은 
말 그대로 머리로 동의하고 이성으로 인정하는 것일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인정하고 그 사실을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내 심령이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이 사실을 실제 증명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초대교회 시절즈음..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고통이 가해지고, 생사여탈의 위협 속에서도 

전혀 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당당히 내 구세주로 시인 고백하는 그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 성령으로 아니하고서는(거듭나지 않고서는)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을 내 구세주라 당당히 시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고전 12: 3) 
바울 사도는... 
그런 시대적 상황을 일부분 예시하며 전했던 것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입술 시인이라는 것은... 축적된 성경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학습 문답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초신자의 입교식 때, 입으로 시인하는 그것도 절대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증거하는... 입으로 예수님을 내 구주라 고백하는 것은 

내 신체의 일부분인 입술로 하는 그런 고백이 아니라, 

거듭난 심령의 확고한 영적 고백입니다. 

즉, 그분을 내 구주로 고백하며 시인한다는 의미는... 

내 왕국(내 육적 속성)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또 다른 고백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초신자 입술 시인을 영접의 증거로 여겼다가는 정말 큰일납니다. 

다음의 성경 말씀이 그 증거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십자가를 통과해 새 생명을 얻은 후)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장 10절)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성령으로 아니하고는(거듭나지 않고서는)
누구든지(감히 그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내 구세주라)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2장 3절)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붙잡혔을 때, 두려운 나머지 혼비백산 다 흩어집니다. 

어떤 사람이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제자라는 추궁에 3번이나 부인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아 거듭난 후 그는 거침없이 예수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성령을 받은 불같은 믿음으로 의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 역시 성령을 받아 심령이 의롭게 된 후에... 

온 땅에 퍼져 처참한 순교를 당할 정도로 예수님을 시인하며 증거했었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 때문에 크리스도교가 오늘날에 이른 것입니다. 

결국, 그들을 통해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 

제자들이 성령 받기 전과 후의 영성이, 이 정도로 다른 것입니다. 

의로워지면 주님이 내 구주라는 머릿속의 지식에 그치는 고백이 아니라, 

뜨거운 심장으로 느끼게 되어 그런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구원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분들 중...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귀신의 존재를 인정했으니, 그 사람은 귀신을 영접한 악령의 사람일까요? 
아마... 그것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손사래 치며 극구 부인할 겁니다. 
맞습니다. 귀신을 영접한 악령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로...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주님을 영접한 성령의 사람일까요? 
목사님이, 여러분은 예수님을 구주라 고백했으니, 성령 받은 증거라는데... 

정말 그런지 증명할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 배우며 숙지해 왔던 교리적인 내용을 제시하면서 

이것이 그 증거라 주장하지 말고... 그것을 지지하는 참된 증거의 말씀이 

성경 어느 부분에 기록되었는지, 그 말씀을 제시해야 합니다. 

입술 고백의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귀신조차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하게 고백 인정하는데, 

그런 경우를 온전한 믿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귀신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누가복음 8장 28절)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그건 믿음이 아니다) 
귀신들도 믿고(주를 시인하며 인정하고) 떠느니라 

(야고보서 2장 19절) 
 
주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영, 혼, 육을 만드셨는데.. 사람을 제외한 모든 생물은 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능대로 살다가, 천국지옥 없이 그냥 본래 흙으로 돌아갑니다. 
사람의 영, 혼, 육 중에서 혼과 육은 내 의지대로 컨트럴할 수 있지만, 
영만큼은 절대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만약 내 영을 내 의지대로 이렇게 저렇게 할 수만 있다면 
창조 질서가 무너지는, 아주 위험하고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겁니다. 
영화나 만화에서처럼, 내 영이 맘대로 내 육을 들락거리며 
뭔가 악한 일을 마구 도모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불치병자나 늙어 죽게 될 사람이, 다른 젊은 사람의 육체에 들어가 
생명을 새로 다시 연장할 수도 있는... 영화에서나 가능한 어처구니없는 
무서운 현상이 실제 생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주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의 영만큼은 엄격한 창조 질서를 위해 
절대 인간의 의지(예를 들자면: 뉴에이지 사상)대로 뭔가를 할 수 없도록, 

철저한 장치를 걸어놨던 것입니다. 

하여, 마귀도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는 장난질 칠 수 있어도, 

사람의 영만큼은 마귀 뜻대로 좌지우지 장난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나 마귀를 두려워 말고, 내 영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장 28절)
 
그러므로.. 
심령이 거듭나는 역사는 인간 스스로의 능력이 아닌, 
초월적 현상으로서, 오직 주님만이 내 영을 다루기에 임하는 현상입니다. 
뉴에이지에 심취된 자들이 그러하듯 

사람 스스로 이런저런 고행과 명상을 통해서는 절대 거듭날 수 없습니다. 
주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도 없이, 그저 교회당만 열심히 다니거나, 
성경을 백번 천번 읽거나 연구해도... 
그 자체만으로는 거듭남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입니다. 
그저 말씀이 머리로만 들어가 지성으로 쌓이게 되면 성경을 많이 읽어도 
그는 학술적 성경 지식만 누적되는 바리새인 같은 성경 이론가만 됩니다. 
마치, 포도주로 변화되지 않고, 항아리에 물만 부어대는 격입니다. 
그것은 절대 거듭남이 아닙니다. 

포도주가 아닌 맹물 그대로이니, 포도주 맛이 나는 게 아니라, 

맹물 그대로의 맹맹한 맛... 즉, 육의 속성이 습관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허나, 말씀을 단 한 구절이라도 접했을 때, 

그 말씀이 내 육의 성벽으로 무너뜨리며 심령 안으로 들어와 
내 영, 혼, 육에 지진을 일으키면 필히 변화된 새 생명의 길로 가게 됩니다. 
이는 그 사람의 심령 밭이 가난하고 애통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그렇다면 거듭남의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말씀은 곧 주님'이라고 하셨으니(요1: 1) 일단, 말씀을 접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믿는다면서 성경을 읽지 않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성경 말씀(주님)에 집중하지 않으면서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것은 참으로 앞뒤가 안 맞는 경우입니다. 
사람 몸에 수분을 채워야 생존한다면서도, 물에 관심 없는 것과 같습니다. 

내 마음밭의 상태가 어떠하든... 

일단, 씨앗을 뿌려야 싹이 나든 말든 할 것 아니겠습니까... 

씨앗을 뿌리지도 않고 거두려 한다면, 영적 도둑임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알아야 회개하든 거듭나든 말씀 인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멀리하는 교인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거듭난 믿음이 생기기 위해서는 
말씀에 찔려 주님을 간절히 구하고 찾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구하고 찾는다는 의미는.. 입술로 주님을 구한다는 인본적 개념이 아니라, 
내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란 것... 즉, 자기 부인(회개)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사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실상 인정해야 합니다. 
말로만 인정하지 말고, 내 육체의 배를 가르며... 
죄로 오염된 내장과 피를 꺼내고 쏟아내는듯.. 엄청난 결단이 요구됩니다. 
주님 앞에 나는 한 없이 작아지며 철저히 무능 무익하고 그분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애통의 마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내 모든 걸 포기하겠다는 고백... 

그것은... 부담 없이, 육의 입술로 하는 고백이 아니라, 

내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듯한 엄청난 결단이 수반된 고백입니다. 
내 죄로 인해 간절하고, 애통한 심령이 되어, 내 죄성을 용서해달라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을 구하는 사람의 본질입니다. 

정말 주님을 절박하게 구해야 합니다. 
형식적으로 구하는 것은 주님이 먼저 아시기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복음에 찔려 내 애통한 회개를 주님이 받으실 때, 성령님이 임재하십니다. 

즉, 복음의 말씀(주님)이 내 심령을 찌르고 들어와 

내 영혼육을 복종시키고 내 삶을 주님 뜻대로 간섭하는 게 거듭남입니다. 

회개(자기를 부인)는... 어떤 기한을 계획하고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쾌락을 다 맛본 후, 죽을 때가 다 되어 회개해야지 하며, 
기회주의적인 신념이라면, 그 마음이 얄팍하여 절대 회개할 수 없습니다. 
그 신념으로 어찌 애통하고 간절하며 상한 심령의 마음 밭이 되겠습니까... 
계산 없는... 진정 간절한 회개가 있었을 때만이 성령을 부어주셔서 
나의 모든 오물(죄성)을 깨끗이 청소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바울 사도가 고백한 위 말씀은... 
복음의 핵심 중 핵심이며, 실상적인 진정한 믿음 고백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아니하면 결단코 표현할 수 없는... 
전율이 감도는 너무나도 감동적인 은유적 표현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진정한 고백이자 믿음입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새롭게 된 믿음은, 반드시 열매로 증거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반드시 열매가 나타나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반드시 분별하십시오. 
초신자 입교식 때, 내 혼적 이성으로 주님을 고백 인정한 걸 가지고 
그걸 주님 영접의 증거라 가르치며 거듭난 실상도 없이 '믿기만 하면 구원' 
이라고 전파하는 선생들을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선생들은... 

모든 교인이 다 성령을 받았다는 전제하에 설교합니다. 
교인들 안의 성령님이 모든 교인들을 교회당으로 인도했다고 가르칩니다. 
그들 가르침이 사실이라면, 이 땅의 모든 교인들은 다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 많은 교인들이 정말 다 구원받을까요... 

정말 동의하십니까? 
그건 성경과 전혀 다른 내용이며, 다른 예수를 전하는 거짓 선생들입니다. 
이런 선생들에게서 돌아서십시오. (마7:13-14, 마 7: 21, 눅 13: 24, )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1장 8-9절)
 
"너희(거짓 선생들)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장 15절) 
 
지금 우리는... 
말세를 향에 폭주하는 급박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불치의 질병이나, 무슨 사고로 갑작스레 죽을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도둑처럼 느닷없이 오실 수도 있는 시대입니다. 
주님의 뜻과 시간은... 내 계산에 맞춰 내 요구대로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주님의 뜻과 시간에 맞춰 내가 이끌려야 합니다. 
지금 호흡하는 이때가 주님을 구할(자기 부인, 회개) 절호의 기회입니다. 
정말 간절하고 애통한 심령이라면... 반드시 만나주십니다. 

그것은 주님의 분명한 약속입니다. 
 
"나를 간절히 찾는(회개하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 17절)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편 42편 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