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육체가 정상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누가 고의로 나를 때렸을 때 아픈 통증을 느꼈다면

나의 육은 정상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아픈 통증을 못 느꼈다면 비정상이라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하다가 몸에 상처를 입어서 아프다든지,  

몸에 병이 들어 견디기 고통스러울 때 할 수있는 게 무엇입니까...

병원을 찾는 일입니다.

내가 병을 낫게 할 수 없으니 병원을 찾습니다.

병원을 찾아 처방을 받아야 몸이 회복됨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통증을 느끼는 사람의 대처방법입니다.

 

그런데...

통증을 전혀 못 느끼는 증상이 있습니다. 

문둥병입니다.(한센병이지만 성경에 따라 문둥병으로 합니다) 

이 문둥병은 누가 꼬집거나 송곳으로 찔러도 아픔을 못 느낍니다. 

이 문둥병은 주님께서 손대지 않는 한 완치하기가 어렵답니다. 

그래도 육체적인 문둥병은 영적으로 큰 문제가 안 됩니다. 

 

진짜 문제인 것은 영적 문둥병입니다. 

이들은 영적인 통증을 전혀 못 느끼고,

실제 영이 죽어가는 것을 모르며,  

죄를 죄로 여기지 않으며 자신은 의롭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하다고 착각하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주님의 공의에 대하여 두렵고 떨림이 전혀 없습니다. 

자신이 죄로 물든 악한 모습을 볼 줄 모릅니다. 

영적 목마름이 없기에 시냇물을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하여 애통함이 없기에 가난한 심령이 뭔지 모릅니다. 

도무지 자신의 악한 모습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뜨거운 심장으로 간절한 회개도 없었으면서 

그리스도의 보혈 피로 이미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모두 소멸되었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회개와 순종은 쓸데없는 행위라고 여깁니다.

 

지식적, 이론적으로 복음은 알지만, 머리에만 갖혀있어서 

지속적인 믿음의 삶이 없습니다. 

성경 지식을 아는 것이 믿음이라 여기고,

성경 지식이 더욱 깊어질수록 믿음이 성장하는 것으로 압니다.

자신의 의가 매우 강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공의는 감추고 오직 사랑과 은혜에만 기댑니다.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이 간절한 회개에 의한 영의 고백이 아닌,

그저 입술만의 고백으로 자신은 거듭난 자라고 확신합니다. 

그들의 삶은 육의 속성을 버리지 못해 여전히 육으로 살아갑니다. 

간절한 회개도 진정한 거듭남도 없이 막연한 관념에 젖어

믿기만 하면 은혜로 구원된다고 확고하게 믿습니다. 

이들은 교만하면서도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남들에게 정죄 판단을 너무도 쉽게 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복음의 삶이 없이 복음의 이론만 앞세우는

지식 교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행위라고 격하시키며 이를 거부합니다. 

결정적으로 거룩의 모양은 있으나 진정한 거룩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죽지도 않았으면서 죽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영이 아닌 육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지 않는 한 이런 분들은 

성령으로 거듭나기 굉장히 어려운 부류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장 5절)

 

그러나... 영적으로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뼈저리게 사무치도록 느낍니다. 

항상 간절한 회개를 해야 한다고 가슴을 칩니다. 

늘 가난한 심령이기에 애통함이 떠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죽어가는 병든 환자란 사실을 인정하고

누구보다 자신의 상태에 대하여 잘 압니다. 

그래서 항상 영적 목마름이 있습니다.  

단호하지 못해 우유부단한 자신의 모습에 매우 괴로워합니다.  

낮아지려는 마음이 있고 겸손함이 있습니다.

세상적 육의 속성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에 대하여 비통해합니다. 

십자가에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걸 잘 압니다.

육의 속성을 단호히 포기하고 주님께 나오면 

얼마든지 주님께서 회개의 영을 부어주셔서 성령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분들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영적인 병을 치유받아야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3-4절) 

 

병자가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못하면 치유받길 거부합니다.

병자가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의사를 찾아야 의사는 치료합니다. 

예수님도 나는 멀쩡하다 하며 목이 뻣뻣한 자는 그냥 둡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자신을 낮추며

가슴을 애통하게 치며 치유받길 원하는 자만를 치유하십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늘 자신의 건강상태를 체크합니다. 

그래야 작은 병이라도 사전에 미리 알고 치유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병든 자임을 인정하고 아는 것은 굉장히 큰 축복입니다. 

자신이 환자임을 인정해야 의사이신 주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못 고치는 병이 없는 최고 명의이십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빨리 명의이신 주님께 나와서 병(죄)의 환부를 보여드리고 

고쳐달라고 매달리십시오. 

실제, 죽을병으로 거의 다 죽어가는 사람들도 죽고 싶지 않아 

희망을 놓지 않고 의사를 붙들고 고쳐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것을 봅니다.

하물며, 믿는다는 우리가 주님께 못 매달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주님은 집요하게 매달리는 사람을 아주 좋아하십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질릴 정도로 집요하게 영의 병을 고쳐달라고 매달리십시오. 

주님은 그 마음의 동기와 중심을 보시고 

반드시 회개의 영을 부어주셔서 성령으로 거듭나 

영의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복중의 복이요 은혜중의 은혜입니다.  

나의 죄 된 옛사람이 죽는 것을 두려워 마십시오.

죄 된 옛 구습을 포기하는 것은 단호한 각오가 반드시 동반되기에

정신적 금단증상으로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나 이마저 뛰어넘는 용기와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내 앞에 그 어디에도 비교가 안 되는 진주가 있는데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내 몸속에 혹이 있다면

환부를 도려내어 수술하는 고통이 따르는 법입니다.

병의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는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세상 육적 속성을 과감하게 도려(포기)내십시오.

 

육의 것을 눈 딱 감고 단호하게 포기하는 분들...  

새사람을 입을 용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을 찢는 회개는 바로 이런 사람의 몫입니다.

그런 사람이 천국에서 신랑이신 주님을 뵐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집 나간 둘째 아들인 탕자가 모든 것을 잃은 후에나 애통함을 느껴

가난한 심령이 되어 회개하고 아버지(주님)께 돌아왔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누가복음 15장 18-20절)

즉, 모두 포기해야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육적 속성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단호함도 없이, 그걸 그대로 간직한 채  

그저 입술로만 주여주여 보혈 피를 외친다고 죄가 사해지는 것도 아니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피는 이처럼 전적으로 나를 단호하게 포기하여 

애통하고 가난한 심령이 된 분들에게 적용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주님께 완전히 굴복해야 응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과정이 되려면 결국... 

나 자신이 죽을 병자라는 것을 확실히 인정하는

영적으로 솔직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라도... 나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시는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주 솔직하게 고백하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저는 자아가 강한 악한 자입니다. 

저는 손해를 감수하는 배려보다 챙기려는 이기심이 강한 자입니다.

저는 자존심이 강해서 내가 능멸당하면 참지 못하는 자입니다. 

저는 은연중에 남을 무시하는 자입니다. 

저는 은연중에 나를 나타내고 높이는 교만한 자입니다. 

저는 인내가 부족해 참지 못하는 자입니다. 

저는 나에게 위해를 가한 자를 도저히 용서하기 힘든 자입니다. 

저는 내 생명을 다하는 사랑이 아닌 입술로만 사랑한 자입니다. 

저는 눈에 안 보이는 주님보다 보이는 사람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저는 사람들 앞에서 거룩한 모양을 유지하려고 했으나,

보이는 사람이 없으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이중적인 자입니다. 

저는 회칠한 자입니다.

........................................ 

이것을 단호하게 고백하려니 두렵습니까?

왜 두렵습니까?

주님은 이미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내 영의 입술을 열어 고백하길 기다립니다. 

부모도 내 자식이 잘못했음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할 때 매우 기뻐하며 용서할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용서 못할 부모는 천하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워 말고 솔직하게 고백하십시오. 

나의 우유부단한 마음을 버리십시오.

내 더러운 옛 구습을 모두 죽여달라고 간절하게 고백하십시오. 

주님은 나 자신을 숨기고 그럴듯하게 위장하여 나아오는 자와  

나의 더러운 옛 구습을 포기하려는 단호함도 없이

입술만 가지고 나아오는 자는 결코, 만나주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위선이고,

이미 다 알고 계시는 주님을 속이려는 악한 모습입니다.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솔직하게)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잠언 12장 22절)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편 17편 1절)

 

주님은...

아주 솔직하고, 아주 애통하고, 매우 심령이 가난하고,

자신의 더러움을 솔직히 고백하는 자를 좋아하십니다. 

 

주님은 거만한 바리새인이 입술로만 주여주여하는 

위선적인 기도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누가복음 18장 11절)

그러나...

가난한 심령으로 애통하게, 나는 악한 죄인 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가슴을 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 세리의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세리의 이 솔직한 모습이 주님을 간절히 찾는 자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부디... 먼저 세리가 되십시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8장 13절)

 

그리고... 집요할 정도로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단지, 입술로만 용서해달라는 게 회개가 아닙니다.

나를 먼저 확실하게 포기하는 게 회개입니다.

나를 단호하게 포기하며 용서를 구하는 순간

폭포수 같은 눈물이 터질 것입니다.  

주님은 매우 기뻐하시며...  

그와 먹고 마시기 위해 그를 향해 달려가실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장 19-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