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극중 여주인공역을 맡은 전도연씨는 
아들을 죽인 원수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복수심이 점점 사그라져서 
이제 용서할 수 있겠다는 힘을 얻는다.

그러나 정작 살인자의 입에서 하나님을 감옥에서 만났고, 
자신이 가졌던 죄책감을 들게 되었으며, 
용서받아 마음이 평안하다는 고백에 
여주인공의 눈빛은 변하고 마음이 일그러진다.

용서해주어야겠다던 자신의 마음은
순식간에 일그러지고, 
복수심과 공평하지 않는 신의 처사에 분노하게 된다.

이 영화는 휴머니즘에 기반한 
인간이 가진 의문에 질문하게 만드는 영화다.

‘신이 인간의 고통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인가?’
‘왜 당신 먼저 그를 용서하고, 왜 당신이 그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난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내 마음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는데...’

휴머니즘의 뿌리가 곧 모든 것의 기본을 ‘인간’이라고 여기기에 
그렇게 질문 던질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영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실상 실화가 또 하나 있다.
여순반란사건의 때에 손양원 목사님은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양아들로 받아들인다.
공산주의에 물든 청년들이 죽창을 들어 
손목사님의 두 아들을 죽였고 
이 모든 과정을 막내여동생 손동희 권사님은 
책으로 묶어 소개하였다.

가장 힘든 것이 내 행동이 합리적이고 마땅한데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을 때이다.
사람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 다를 때이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는데 
절대 그에게 손을 대지 않고 살려둔다.
그 이유는 자기 생각과 판단이 아닌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이 기준이 되었다.

다윗이 용사 아비새에게 말했다.

“그를 멸하지 말라. 
  누가 자기 손을 내밀어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무죄할 수 있겠느냐?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주께서 그를 치시리니 
  그의 날이 이르러서 죽거나 
  혹은 그가 싸움터에 내려가서 멸망하리라. 
  내가 내 손을 내밀어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주께서 금하신다.”
      (사무엘상26장 9-11절)

오랜 시간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제 고생이 끝났다 싶을 시점에 
다윗의 생각이 어떠한지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삶을 조심스레 살고 있다.
자기 마음과 생각에 파수꾼을 두고 있다.

판단과 심판과 평가는 
내게 있지 않고 주님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다윗은 모든 기회가 합리적으로 주어졌음에도 
내가 할 생각과 행동을 절제하고, 
주님 앞에 겸비하여 자신의 마음의 
생각과 판단 속에 죄가 있는지 늘 깨어 있었다.

이것이 실력이고 경건이고 믿음이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의 생각이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고
내가 할 일이 있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미워하거나,
시기하거나,
깔보거나,
그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을 은근히 퍼뜨리거나
인간의 감정으로 보복하는 어리석음을 절대 범치 않겠다라고
나는 고백하였다.

나보다 다른 사람이 잘 될 때 
진정 박수쳐 줄줄 아는 자가 큰 자다.

사람은 신뢰할 존재가 아니라 
내가 먼저 신뢰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며
그 신뢰가 비록 악이 되어 돌아온다 할지라도
선으로 악을 갚겠다는 결단이 믿음이다.

판단은 주께 있고
어둠을 이기는 창조는 내게 있다.

함께 동거동락하며 모든 것을 함께 할지라도 
내 자녀, 내 아이에게 해가 되거나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돌을 드는 것이 약한 인간의 마음이다.

나의 신뢰는 오직 주께 있다.
판단 역시 주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