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1:7, 고후 7:10, 벧전 3:12, 벧전 2:20)

 

 

단어는 같다. 그런데 다르다.

같은 이지만, 내용이 다르다.

문맥에 따라서 뜻이 다르거나, 정 반대의 의미도 있다.

 

 

1) 두려움 :

두려움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사람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어서 자기 생명을 보호하게 된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두렵다. 뜨거운 불 앞에 서면 두렵다.

배워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본능적이다. 이런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두려워하는데 문제가 있다.

 

 

두 종류의 두려움 :

① 좋은 두려움 :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을 두려워(Fear)하는 것이다.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19:2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것이라.

 

(시 115:11)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Fear)하는 것은 좋은 것이고, 축복이다.

이것은 경건한 두려움이다.

 

 

② 나쁜 두려움 :

이것은 사탄, 마귀가 주는 것이다. 어두움의 세력이 가져다 준다.

나쁜 두려움은 우리 마음의 평안을 빼앗아 간다.

나쁜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과 마음과 정신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

 

공포와 무서움이 엄습해서, 겁이 나고, 놀래고, 가슴 두근거리고,

영어에 Scare 한 것이다. Fear 와 Scare 는 같은 것이 아니다.

 

두려움이 공포로 임하면 공황장애가 생기고, 그러면 들고 죽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믿고두려워하지 말라고 수도 없이 말씀해 주셨다.

 

아브라함에게도, 야곱에게도, 모세에게도, 여호수아에게도, 이사야선지자에게도,

바울에게도 하나님의 종들에게 똑같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사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렇게 나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아준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믿으면,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

 

성탄의 사건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로 말미암아 두려움을 없애고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다.

 

좋은 두려움, 경건한 두려움을 갖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나쁜 두려움은 믿음으로 물리치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 두 종류의 근심 :

① 좋은 근심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다.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이 말씀에는 두 가지 근심이 나온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 근심이다.

전자는 구원에 이르도록 회개하게 만든다.

후자는 사망에 이르게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경건한 근심이다.

내가 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가?하는 근심은 내 인생을 복되게 한다.

이런 근심은 좋은 근심이다.

 

 

② 나쁜 근심 :

나쁜 근심은 세상 근심이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다. 너희는 천부께서 돌보아 주시니 :

(마 6:31)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염려하지 말라

 

(마 13: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돌보심이니라

 

이런 염려, 세상 근심, 걱정은 믿음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 근심은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꼬? 하는 이런 경건한 근심만 하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두 얼굴 :

(벧전 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둘다 눈과 얼굴을 향하시는 것은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가?

우리의 얼굴도 같은 얼굴이지만, 다르다.

 

① 환한 얼굴 :

의인을 향한 얼굴이다. 웃는 얼굴이다.

기뻐서 사랑스러워서 보는 환한 얼굴이다.

 

(민 6:25-26)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이 때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은 은혜주시는 얼굴, 평강 주시는 얼굴 빛이다.

 

그래서, 이와같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고 했다.

(시 105:4)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찌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찌어다.

 

(시 80:19)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우리가 구하는 하나님의 얼굴은 환한 얼굴 빛이다.

② 화난 얼굴 :

하나님의 환한 얼굴이 있는가 하면 다른 얼굴도 있다.

분노하시는 얼굴이다. 진노하시는 얼굴이다.

서운해 하시는 얼굴이다. 채찍을 든 얼굴이다.

 

(벧전 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의인에게도 얼굴을 하시고, 악행하는 자에게도 얼굴을 하시지만,

같은 얼굴이 아니다. 하나는 환한 얼굴이고, 또 하나는 화난 얼굴이다.

발음이 비슷하다. 그러나 정 반대이다.

 

(예화) 우리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두 얼굴이다.

아버지가 착한 아들을 향해서는 환한 얼굴로 웃으며 바라보고,

아들이 속썩일 때는 화난 얼굴로 본다. (발음이 비슷하나, 정반대)

 

우리는 하나님의 어떤 얼굴을 구해야 할 것인가?

 

 

4) 두 종류의 고난 :

고난받는 것은 같으나, 그 내용이 다르다.

(벧전 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①  있는 고난 :

이것은 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받는 고난이다.

복음 전하다가 받는 고난(행 5:41),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고난 (마 5:10-12)

신앙절개 지키다가 받는 고난. (예) 주기철목사, 다니엘의 3친구.

 

 

② 헛 고생 :

죄 짓고 매 맞는 고난이다.

요나가 불순종하다가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고, 고생했다.

다윗이 범죄함으로 채찍을 맞았다.

 

고난이 다 같은 고난이 아니다.

뜻있는 고난이 있고, 죄짓고 매맞는 헛고생이 있다.

쓸데없는 헛고생은 하지 말아야 하고,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은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되고, 천국의 상급이 될 것이다.

 

(결 론)

단어는 같지만, 내용이 다르다.

1) 두려움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경건한 두려움이 있고,

공포스러운 두려움, 겁에 질린 세상적인 두려움이 있다.

 

2) 근심 : 세상 근심이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다.

전자는 사망에 이르고, 후자는 회개하게 만든다.

 

3) 얼굴 환한 얼굴이 있고, 화난 얼굴, 분노하시는 얼굴이 있다.

전자는 은혜와 복을 주시려는 얼굴이고, 후자는 진노하시는 얼굴이다.

 

4) 고난 : 뜻 있는 고난이 있고, 죄 짓고 매 맞는 헛고생이 있다.

전자는 고난받아도 기쁘고 감사하지만, 후자는 받지 말아야 할 고난이다.

 

단어는 같지만, 영적인 내용이 다르다.

올바른 선택을 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