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수많은 교인들이 자신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으니

그래서 주님의 보혈 피와 은혜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죄를 덮어달라고 요청합니다.

본인은 변화되려는 갈망도 없이 

은혜를 자기 죄를 덮는 데 이용하려는 악한 마음이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능력과 은혜에 의지하여 회개의 자리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죄짓는 것을 주님의 은혜로 눈감아 달라고 떼쓰는 것과 같습니다. 

죄도 적당히 짓고, 구원도 받겠다는 전형적인 양다리 신앙입니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이유만으로 위선적 삶을 살아도 

자신들은 구원받기로 되어있다는 주장과 아주 똑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원된다면 흔하게 보이는 돌들도 구원받습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태복음 3장 9절)

 

예수님은 죄를 들춰내 그 고치려고 오셨지 

죄를 덮으러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병자에게는 병 고침을 받기 위해 능력 있는 의사가 필요하듯, 

죄 짓는 자에게는 죄를 회개시킬 능력 있는 주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2장 1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복음 5장 31-32절)

 

위 말씀은 같은 뜻입니다. 그런데 무슨 뜻입니까...   

그냥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은혜로 죄를 덮고 구원시키러 왔다는 말씀으로 들리십니까?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절대 아닙니다.

만약, 이 세상에 죄가 없이 의인만 있다면 다 구원될 터인데

예수님이 뭐하러 이 세상에 오셨겠습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의인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기록된 바 의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장 10절) 

 

의인이 아닌 죄인들만 있기에 그들을 부르러 오신 것입니다. 

부르기만 하실까요? 

병든 자를 능력 있는 의사가 고쳐야 건강하게 살 수 있듯,  

환자가 병든 것을 알면서도 의사가 병을 은혜로 덮어버리면 

그 환자가 살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곧 죽습니다. 

무조건 죽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회개시키므로 죄인의 영을 살려 구원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회개시키러 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사람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기에 그것을 다 인정하고 죄인들을 불러 

은혜로 덮어 죄를 사하여 구원시키러 온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 악한 교리의 늪에 빠진 사람들은 분명히 깨어나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회개를 원하십니다.

입술로만 하는 형식적인 회개 말고, 마음을 찢는 회개를 원하십니다.

간절한 회개는 주님을 만나는 첫 관문입니다.

간절한 회개도 없이 주님을 만났다고 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머리의 지식이 아닌, 

심장으로 주님을 느끼는 지식으로 만나야 그게 믿음입니다. 

 

주님은 이유 없이 아무나 보혜사 성령으로 만나주시지 않습니다. 

아무나 다 만나주신다면 구원은 아주 쉽기에 성경은 다시 쓰여져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려면 반드시 먼저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회개는 전지적으로 주님의 개입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육의 악한 속성을 버릴 맘 없이, 회개의 자리로 나오지 마십시오. 

악한 속성을 포기하려는 마음도 없이 주님을 만나려고 한다면 

그것은 시간 낭비만 할 뿐입니다. 

 

고집, 교만, 자존심, 빈정거림, 의심, 음란, 분냄, 명예욕, 권세욕,

정죄, 판단, 미워함, 원망, 원수짐, 분열심...

 

육신의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됩니다.

이 마음들은 모두 성령의 아홉 가지 성품과 반대되는 악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포기하려는 단호한 마음도 없이 회개의 자리로 나온다면

주님은 결코, 만나주시지 않습니다.

만나주지 않으니, 마음을 찢는 뜨거운 회개가 나올 수 없습니다.   

이런 악한 마음들을 과감히 포기하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굳건히 내 마음을 장악하여 버티고 있다면

성령의 아홉 가지 성품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비워야 채워지는 것입니다.

죽어야 사는 것입니다.

버려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악한 마음을 내 능력으로 던져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회개 시킬 수 있는 주님의 능력과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은혜는 이럴 때 필요한 것이지, 죄를 덮는데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능력으론 할 수 없으니 이 악한 것을 포기하고자 선언합니다. 

이 악한 세상의 쓴 뿌리가 내게서 떨어져 나가도록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간절히 애통한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하러 주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회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능력으로... 내 입술로만... 저절로 회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죄인인 우리가 가난한 심령이 되어 애통하고 간절히 요청할 때 

주님께서 회개의 영을 부어주심으로, 나의 악한 세상의 쓴 뿌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회개에 대한 응답이라고 합니다.

 

위에서 열거한 세상의 쓴 뿌리의 속성을 강력하게 포기하고자

강한 마음으로 결단하십시오.

결단이 없으면 결코 회개에 대한 응답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 것도 붙잡고 하나님도 붙잡으려고 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속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절대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결단하려고 하는 강력한 마음도 없이 세상 것을 쥐고

아무리 입술로 외쳐봐야 시끄러운 메아리로만 돌아올 뿐입니다.

 

세상의 죄악으로 가출했던 탕자, 둘째 아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길 결단하고

아버지를 찾아왔을 때 만나주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회개는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회개, 회개...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가 되어야 성령으로 거듭남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가 이리도 중요합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3절)

 

진짜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세상의 습성을 단호히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그 마음을 아시는 주님은 바로 오셔서 쓴 뿌리들을 몰아내고 

성령의 아홉 가지 성품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며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역사하십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4장 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