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기독교인들이...
쉽게 구원받을 거라는 낭만적 기대감을 거두지 않습니다.
사람은 근본이 악하기에 죄의 속성은 어쩔 수 없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하여, 믿기만(?) 하면 주님의 뜨거운 은혜가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기에
당연히 구원되는 것쯤으로 대부분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어긋난 구원관이며,
이 구원관만 의지하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멸망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 뜻이 아닌, 사람이 편집한 구원관(교리)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구원되려면 반드시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회개입니다. 주님은 기록된 말씀을 통하며 회개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경고하셨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누가복음 13장 5절)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시편 7장 12절)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요한계시록 2장 16절)
온전한 회개 없이...
주님을 믿는다고 한들, 그분께서는 절대 인정치 않습니다.
그저, 입술로만 주님을 시인만 하면, 그 시인 안에 회개와 자기 부인과
구원받는 믿음이 다 들어있다며, 도무지 두렵고 떨림 없이
여전히 옛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이는 회개도, 자기 부인도, 믿음도 아닌 멸망의 입술 시인입니다.
그 입술 시인은, 이천 년 전의 그 시인과 다름을 누차 말씀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단지 입술로 '회개합니다' 하는 것도 참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입술만의 선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반드시 거룩하게 변화된 삶의 증거(열매)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악하게 사는 내 자식이...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고 입술로 고백하고서
부모가 안 보이는 데서 여전히 또 그 모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 용서 구함이, 진정한 고백일까요?
부모님들 중, 이런 자식의 모습을 바라볼 때 마음이 어떨까요...
'인간이란 태생적으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이렇게 자포자기하면서
자식의 악행을 관망만 하겠습니까?
그럴 부모는 없습니다.
아니... 그런 부모는 애초에 부모 자격이 없습니다.
자식을 정말 지극히 사랑하는 부모라면 눈에 흙이 들어가는 순간까지
올바르게 변화시키려 힘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당연히 주님께서도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날까지 변화시키려 회개를 독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면, 주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6장 23절)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요한계시록 2장 21절)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는
입술의 선언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 증거됩니다.
그 열매는 내가 억지로 맺는 열매가 아니라... 주님께서 거룩의 마음을
주시기에 저절로 맺혀지는 열매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주님 의지대로)
(갈라디아서 5장 25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립보서 2장 13절)
진정 회개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 죄의 근원을 모두 포기하려 할 것입니다.
지금은 옷만 찢을 때(입술만의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참 회개로
주님 앞에 무조건 엎드리며 뜨거운 눈물을 흘릴 때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찢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싫어하는 것을 진정 버리고자 결단할 때
주님이 임재하시어 나를 만지시는데, 그게 바로,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주님께 문을 활짝 열어드려 그분(성령님)을 영접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마음을 찢음이(자기 부인) 동반되는 것입니다.
하여, 마음을 찢는다는 건... 지금까지 육의 죄인으로 살던 자기 자신을
찢어, 죄와 분리하려는 속사람의 애통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임재하여)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장 20절)
그런데 이 시대에...
우리는 좀처럼 마음을 찢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통과 없이, 쉬운 구원만 받을지,
천국 문을 열어젖히는 데만 계속 혈안 되어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 내 구원을 요구합니다.
허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왜 깨지길 완강히 거부하며
십자가를 들려 하지 않으냐?"라고 말입니다.
즉, "너희는 권리(구원)는 원하면서
내가 요구하는 의무(자기 부인)는 모른체 하는구나"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다 알아서 은혜로 살펴주시길 원하지만... 주님께서는
마음을 찢으며 뜨거운 눈물로 통곡하길 원하십니다.
뜨거운 눈물의 통곡도...
반드시 나를 완전히 버리고자 하며 은혜를 요구할 때
그리스도의 보혈 피의 은혜가 임하여.. 영혼의 심장 속을 가득 채우며
뜨거운 통곡의 눈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보혈 피가 흐른다면...
내 옛 구습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기록된 성경에서, 회개한 성도가 이 땅에서 어찌 살아었는지 조목조목
살펴보십시오.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기록되었습니다.
인위적 그렇게 살고자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주님(성령)이 내 안에서 그렇게 이끄시기에 그런 것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보혈 피가 흐르노라 주장하며 어찌 예전과 똑같은
구습이 습관처럼 계속 나올 수 있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이 땅에서 숨 쉬는 한
이 땅의 세상은 사탄마귀의 공중권세가 가득하기에
죄 사함을 받아 보혈 피가 흐르는 사람도, 의도치 않게 구습의 모습이
나타날 수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보혈 피가 흐르며 성령님이 임재하는 사람은
자의든 타의든 자신이 범한 죄상에 대하여 가슴을 치며 회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도무지 견딜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내 죄에 대해, 양심을 찌르며 회개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사도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 가슴을 치며 애통하였습니다.
바울 과 같은 이런 영적 상태가, 참된 은혜 상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이런 이들이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더 이상 주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릴 때가 아닙니다.
주님이 먼저 오시든, 우리가 먼저 이 땅을 떠나든 코앞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숨 쉬는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한 은혜의 시간인지 기억하십시오.
회개 없이, 이 기회의 시간이 지나면...
내 죄로 인해, 심히 애통하여 통곡하는 것이 아니라,
숨 쉴 때 왜 회개하지 않았을까, 자신을 저주하며, 이를 가는 고통스런
통곡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사실입니다.
부디... 옷만 찢으며(입술로만) 회개했노라 하지 말고,
마음을 찢으며(진실로 나를 부인하는 참된 회개) 주님께 돌아오십시오.
그분께서... 영원한 천국으로 반드시 이끌 것입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형식적 입술로만 회개치 말고)
마음을 찢고(참으로 회개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요엘 2장 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