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중에는 선한 사람도 있지만
사탄이 하는 짓만 골라하는 악한 사람도 있다.

이들은 신분에 관계가 없다.
학식이나 종교인이나 할 것 없이 

인간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악은 언제나 존재한다.

교회 안에도 가는 곳마다 

분쟁을 일으키고 문제를 유발하며
그 입술로 정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꿀같이 달게 여기고
온 교회를 발칵 뒤집어 놓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 안에서 그런 사람들을 볼 때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욕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정죄를 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친하다고 방관하며 모른 체할 것인가?
그렇다고 기도만 하면서 애를 태우며 살 것인가?

신앙인으로서 딜레마가 아닐 수가 없다.
죄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것은 

그 죄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니 관계가 악화될 것 같고
자신의 삶에 무엇인가 손해가 될 것 같은 환경에서는 

더욱 난처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것 때문에 상처를 입고 

교회에 실망한 나머지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인은 정체성이 분명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형편에서도 '예'할 때 '예'하고 

'아니오' 할 때 '아니오' 할 수 있어야 한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의탁하고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못하기 때문에 

믿는 자의 정체성을 잃는 것이다.
맛을 잃은 소금처럼 사는 것이다.

성도는 세상의 빛이다.
빛은 빛을 내야 한다.
당신의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따끔히 이야기하고 

사랑으로 권면하며 그래도 돌이키지 않으면 

공중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알게 해야 한다.

그래야 보고 듣는 이들이 두려움을 갖고 

그런 죄를 짓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이방 사람처럼 취급하고 그를 멀리해야 한다.

돌이키지 않는 자는 사탄에게 내어 준바 된 것이다.

예수님도 가룟 유다에게 수차례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돌이키지 않는 자는 자신의 죄과를 받는 법이다.

교회 안에 악이 뿌리내리지 않도록 

영적인 땅을 기경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거스르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거나 방치해서는 안 된다.

말 한마디 안 하였더라면 

목숨을 잃지 않았을 세례 요한을 생각해보라.
스데반 집사처럼 그들이 수많은 군중일 지라도 

진리를 꺽지 않고 싸웠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말씀 앞에서 타협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에 살고 진리에 죽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