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삼라만상을 보면 각 사물마다 각기 질서정연하게 자기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만물이 그로(예수님)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 (골 1:16)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 인간들도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목적)에 적당하게 지으셨으니” (잠 16:4)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지금 내

직업이나 소유만 아니라 내 삶 전체가 하나님 것이요 그분의 신비한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사실을 마음 속으로 진솔하게 받아

드린다면, 설령 지금 아무리 견디기 힘든 상황일지라도 차분해 질 수 있고

주님의 선하신 섭리를 의지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보다 높고 깊기에 우리가 그분의 섭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어느 도심지 빌딩 숲을 지나갈

때에는 그 도시의 윤곽을 알지 못하지만, 그곳을 벗어나 높은 곳에 이르러

뒤돌아보면 그때 비로소 도시의 윤곽이 잡히는 것처럼,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는 그 당시에는 주님의 섭리를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요셉이 형들에 의해 비참한 노예로 팔렸을 때, 그리고 보디발

아내의 농간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 그 당시에는 그건 분명 저주였습니다.

나중에 애굽 총리가 돼서야 그게 다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달았습니다.

또 환상을 통해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성령의 계시를 받은

사도 바울은 그곳 첫 성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 관원들에게 붙잡혀

실컷 두드려 맞고 손과 발이 착고에 채워진 채 캄캄한 지하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당시에는 저주이지 주님의 섭리라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나중에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 후에야 주님의 섭리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저런 하나님의 섭리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내 생각과 계획으로 무슨 일을 경영할지라도 우리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 이시라는 사실을 망각하기 일쑤입니다. 하여

어떤 문제나 고난이 생기면 불평하고, 혈기를 부리고, 다투고, 안달하고

또는 낙심하며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궁극적으로 나를

주님의 목적대로 이끄실 것을 믿는다면 넘어지거나 일어나거나, 일이

잘 되거나 안 되거나, 아프거나 건강하거나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모든 죄인들이 진리를 깨닫고 구원

받도록 계획하고 부르셨습니다. 하여 보혈의 능력을 믿고 나아가 회개하며

주님을 나의 구세주로, 나의 주로(주인) 받아드리고 주님 뜻대로 순종하며

살기로 결심한 자들이 바로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입니다.

그들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자기부인)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새 마음을

받아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로서 ‘주님께서 지명하여 부른 자들’ 이요,  

(사 43:1) 그들의 모든 생애는 주님의 섭리 가운데 있고 그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으로 이끌어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정결한 신부로 만들기 위해 가끔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허락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바른 길을 벗어나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도록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라고 인도하시는 사랑의

손길입니다. (사 30:20-21) 우리가 앞이 캄캄한 터널 속에 있을지라도

주님께 굴복하고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바른 진리인 정로를 따라가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미래를 보는 눈이 없기에 현재 당하는 일들을 이해할 수 없고,

우리의 짧은 안목으로 주님의 깊은 섭리를 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님 뜻에 합당하게 부르심을 입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며 따라가는 한, 우리는 주님의 섭리 가운데 있기에 지금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문제로 시련과 고난과 절망 속에 있을지라도

희망을 잃지 말고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는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날 여러 달콤한 교리와 장미 빛 꽃 길을 외치는 미혹이 만연하여

고난을 당하는 것은 믿음이 없어 축복을 받지 못한 탓이라고 합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하나님을

창조하는 황당한 소치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쉽다고 말씀하신

적이 한번도 없으며 고난의 쓴 잔을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주님의 은혜에

진정 감사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지나온 과거를 가만히 돌이켜 보면서,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인도하신 그 섭리를 깨닫게

되어 주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게 됩니다.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2)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사 43:21)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우리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재 창조해 (거듭남)

하늘나라 유리바닷가에 서서 손에 종려나무 가지와 거문고를 가지고

주님의 구원의 영광을 찬송할 자로 만들어 가십니다.(계 7:9, 15:2) 그것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입니다. 우리가 그 뜻에 부합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면

주님께서 ‘어린 양의 황홀한 혼인잔치’에 우리를 기쁨으로 초대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정결한 신부로 그 혼인잔치에 참석하고 싶지 않습니까 … .

 

  지금 참으로 견디기 힘든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사도 바울과 실라가

온몸에 피 멍이 들고 손과 발이 착고에 채워진 고통스런 상태로 지하

감옥에 갇혔어도 찬송을 부른 것처럼, 우리 모두도 주님의 섭리를 믿으며

인내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