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라는 덕목에는 항상 따라붙는 조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길이"라는 말이다.

  사람이 참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한 순간 뿐이라면

 이미 그것은 인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이 덕목에 내포되어 있는 본성이다.

  즉 일초 혹은 일분 혹은 하루를 참았다고 해서 

그 시간이 지난 후에 그동안 참았던 인내를 터뜨려 버리면

  그것은 이미 인내가 아닌 것이다.

참는다는 말에는 끝까지, 참는다는 말이며

그러기에 세상 끝날, 즉 주님 재림의 날까지 참을 때

‘길이’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석기현 목사의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 하나니’에서-

  

 인내라는 단어 앞에 '길이' 혹은 

'오래'라는 수식어가 없다 하더라도 

이미 그 단어 자체에 그 뜻이 자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성도의 인내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길이" "오래 참음" 좀 더 구체적으로는 

"주의 강림하시기까지"라고

야고보서 5장에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내는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우리 신앙생활의 최고 정점, 

그 대단원의 막과 직결되어 있는 덕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