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상에는 오천 명이 넘는 대형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런 교회는

모이는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여러 가지 부서와 프로그램, 순서

등이 다양하고, 영혼을 모으고 구원하기 위해 전도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영혼을 어디에서 어떻게 구원하는가 입니다.

사람들을 가정불화에서, 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절망적인 상태에서, 또는

도박이나 마약중독 등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구원은

우리 영혼이 영생을 얻도록 구원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무리들이 그분을 따랐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할 때에 장정만 오천 명이 되었으니 여자와 아이들

까지 합하면 적어도 만 오천 명 이상이 됐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들의 세상적인 필요나 기쁨을 채워주기 위해 어떤 일을 행하거나 말씀을

하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따르는 그들의 동기와 소원이

잘못됐다고 하시며 그들을 다 돌려보냈습니다

 

  또 한번은, 예수님께서 허다한 무리가 따라오는 것을 보고 이들이 왜

자기를 따라오는지 그 심리를 아시고 민망한 심령으로 걸음을 멈추시고

천천히 뒤로 돌이켜 무리를 바라보십니다. 군중들도 주춤하고 멈춰

섰습니다. 그때 육신의 소욕과 세상적 필요를 위해 따르는 군중들을

측은히 바라보시다가 …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시며 “세상과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라올 수 있는지 즉 제자 됨의 대가를 치를 각오가 있는지 먼저

차분히 계산해보고 따라오라. 만약 자신이 없으면 아예 지금 고만두라!”

라고 참으로 냉정하게 딱 부러지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14:25-33)

 

  사람들을 모으기에 급급한 현대 대형교회들의 모습과 얼마나 다릅니까 … .

예수님은 이미 13장에서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하고 묻는

말에 “좁은 문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힘써도 못할 자가 많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대상은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

나이다” 하는 믿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넓은 길을 걷다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로서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눅 13:23-27)

라는 참담한 선언을 받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유월절 명절 날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

하실 때 많은 무리가 호산나(우리를 구원하소서)를 외치며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들의 필요와 로마로부터의 해방을 이루어줄 메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라고 소리

치는 자들로 돌변했습니다. 오늘날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무조건 구원

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필요와 소원을 들어주는 도구도

아닙니다. 악행(죄)을 버리고 협착하고 좁은 길을 가야 합니다.” 하면

“그렇다면 난 예수 안 믿어!” 라며 돌아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 .

 

  오늘날 십자가는 아무나 무조건 구원하는 값싼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십자가는 미련해 보이지만 주님을 따르는 동기와 소원이 무엇인지 드러내

주며, 알곡은 모으고 가라지는 태워버리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전도방법

입니다. 즉 십자가에는 유혹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지옥이 무서워 천국

가기 위해, 내 인간적인 필요와 소원을 이루기 위해, 또는 어떤 조건이

좋아서 등이 아니라 세리처럼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며 상하고 통회

하는 심령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들이 바로 알곡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성령을 통해 새로운 마음과 동기와 소원을 갖도록 인도해 주십니다.(거듭남)

 

  알곡과 가라지는 의인과 악인의 차이가 아니요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도

아닙니다. 같은 밭(교회)에서 자란 믿는 자들 간의 차이입니다. 곧 무슨

동기와 소원을 가지고 믿느냐에 따라 알곡과 가라지로 나뉘어 집니다.

우리가 가라지가 되면 주님으로부터 “나는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라는

선언을 받고 슬피 울며 이를 가는 큰 낭패를 당합니다. (마 7:21-23)

지금 나는 어떤 동기와 소원을 가지고 주님을 믿고 따르고 있습니까?

 

  오늘날 복음이 얼마나 잘못 변질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힘써도 구원 얻지 못할 자가 많다” 는 주님의 말씀을 절대로 가볍게 듣지

말아야 합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이요 한번 구원은 영원하기에 이를 확신

하고 즐기라”는 허황된 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좁은 길이란 천국을

침노하는 자들이 가는 길로서 행악(죄)을 버리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전쟁을 하는 길입니다. 마귀는 노아 홍수시절에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여 멸망시켰고, 초대교회 때에는 예수를 못 믿게 하였다가,

현대는 예수를 믿으면서, 다시 말해 자기 본위로 잘못 믿게 하여 멸망으로

끌고 갑니다. 마지막 때인 지금은 깨어 정신을 차려야 할 때입니다.(벧전 4:7)

 

  하나님은 주님을 따르는 우리 마음중심 곧 우리 마음의 태도와 동기와

소원을 보시고 구원하십니다. (삼상 16:7)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고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렘 17:10)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어달라고 간청하며 무조건 구원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또한 어떤 매력적인 것으로 이끄시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시련과 고난과 질병을 허락하시면서 “그래도 나를 따르겠니?”

물으시며,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동기와 품성을 예의주시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동기는 이 세상 무엇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기에

육신의 소욕인 이기심 자존심 교만을 버리고 진리와 함께 그 분의 뜻을

행하며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기를 소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으로 거듭나 주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동기와 소원으로 주님을 믿고

따르는 하늘나라 백성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