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앞 부분 푸른색의 글은 토마스 아캠퍼스의 기도입니다.

 

주님, 저를 깨뜨려 주소서..

나의 주인이신 거룩하신 예수님..

저는 영적 채찍질을 많이 당하고 책망을 들어야 마땅한 사람입니다.

저는 더러운 죄인이지만... 탄식하지 않았고,

상처투성이지만... 슬퍼하지 않았고,

곪을 대로 곪았지만... 신음하지 않았고,

오염되었지만... 씻지 않았고,

독이 퍼졌지만... 해독제를 찾지 않았고,

연약하고 대책이 없지만...

위대한 영혼의 의사이신 주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심을 듣고도

아무 감동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눈물이 나지 않았었습니다.

 

저는 날마다 죄를 짓습니다.

매 순간 어떤 식으로든 저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어떻게 하겠다고 결단해놓고도 그것을 이행하지 않았으며,

그러면서도 육으로는 즐겁게 생활했었습니다.

 

슬픕니다.

베드로는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통곡했지만,

저는 닭의 큰 울음소리를 듣고도

예배당이나 골방에 들어가 눈물을 흘리지 않았었습니다.

 

매우 슬픕니다.

애통한 세리와는 달리, 저는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를

다 알면서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저는 저의 모든 죄에 대해 슬퍼하고 탄식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저의 죄로 말미암아 역경과 고난이 닥친다면 저는

그것들을 참고 견뎌야 합니다.

 

거룩하신 주님!

회개하는 마음과 간절한 음성으로 주께 간구하오니

이 잠시잠깐의 인생을 살면서 사망을 통과할 때 저를 도우소서.

그리하시면 잔인한 원수와 싸울 때 원수가 저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제 자신을 신뢰하지 말고,

저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는 가운데 이 죄인의 믿음이 강해지게 하소서...

 

거룩한 예수님

이 처참한 죄인을 기억하시고,

저의 이 연약한 몸 안에 거하시어

갖가지 죄를 저지른 저를 위해 간구해 주소서.

 

--이상은 토마스 아캠퍼스의 기도였습니다--

 

주님... 오직 주님만 바라보나이다.

오직 주님안에 거하고 싶습니다.

저는 악한 죄인임을 주님께 고백하며 나를 포기하고자 합니다. 

성령을 부어주셔서 저의 모든 죄성을 예수님의 보혈 피로 씻어 주소서... 

저는 더 이상 추악한 죄인으로 살길 거부하고자 합니다. 

거룩하신 주님~

성령의 능력과 은혜로 섬세하게 짠 세마포를 저에게 입혀주소서..... 

애타고 갈급한 심령으로 주님을 바라보나이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

나의 영혼은 주님을 향한 갈급함으로 몸부림 치나이다.

부디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포도나무 줄기에 접붙임 당하는 은혜를 부우소서..

주님과 이 죄인이 먹고 마시고 동행하길 간절히 원하나이다...

 

ps-

이 기도문은 성령님을 받기위한 기도입니다.
성령님은 갈급한 심령으로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간절히 주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오십니다.

 

교회에서 흔히 하는
4영리의 영접 기도는 정말 위험하기 짝이없는 기도입니다.
4영리 영접기도는 머리로 받고 이성으로 동의한 것이지

으로 동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령님의 영접이 아닌

그 교회 교인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의식일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면 

교인들 중에 구원 못 받을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만약이런 행위로 인하여 교인이 자신은 성령을 받았다고

착각해서 평생을 진짜 주님을 구하는 부르짖음이 없다면

성령의 열매도 없을 뿐더러 그게 뭔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 교인에게는 매우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게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길 구하여도 못할 자가 많다는 

추상 같은 주님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진짜 사역자들은

절대 4영리 영접기도 시키지 않습니다.
4영리 영접기도는 성령을 받지 않은

교리만 강조하는 목사가 시키는 의식일 뿐입니다.
목사 자신은 성령님을 받지 않았다고 입증하는 것입니다.

 

또한...
위 본문의 기도만 한다고 해서 성령님이 오시지 않습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면서... 

여전히 나의 삶이 세상을 따라가고자 한다면 

입으로만 형식적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악한 행위입니다.

또한기도 자세를 어떤 모양을 취해야만 한다든지

몇 시간을 기도해야 한다든지 이런 것... 결코, 아닙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그런 것은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육체적 기도 모양이나 시간을 보는 게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 얼마나 주님을 향한 간절함이 있느냐를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실 뿐입니다.

 
주님은 입이 아닌...

삶이 따라가려는 기도로 영접하길 원하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분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사도행전 5장 32절)

 

위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성령을 주신답니다.

그저, 입술로만 '주여주여'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기 싫은 것 억지로 꾸역꾸역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고넬료처럼 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힘써 주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이 오심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고넬료는 그런 가운데 성령 받았음을 성경은 이미 증거하고 있습니다. 

 

님(성령님) 영접은 쉬운 게 아닙니다. 

나의 육적 속성을 유지하려 하며, 자꾸 세상에 미련 갖고 있다면 

아무리 영접기도를 많이 해도 성령님은 결코 오시지 않습니다.  

내가 주님의 뜻에 의지하여

내 모든 것를 주님께 굴복시키며, 죽고자 결단 할 때, 
비로서 주님은 나를 인정하시고 성령을 허락하십니다. 

그것이 진정 주님을 구하는 자의 참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성령님의 임재로 뒤집어지는 회개가 터져나오고

비로소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닌,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그리고... 주님 영접의 증표는

삶 속에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주님의 거룩한 성품)로

반드시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