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멋지고 비싼 자동차가 있어도

그 연료통 안에 기름이 없다면, 그 차는 절대 전진할 수 없습니다.

기름이 없는 차를 무슨 능력으로 운전해서 전진할 수 있겠습니까...

믿노라 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뭔가 믿음대로 살려고 하는데... 

뜻대로 안 되어 자꾸 넘어지며 자신의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육의 죄성이 끝도 없이 올라와 자신을 괴롭히는 걸 확인케 됩니다.

하여, '나는 왜 이럴까' 자신을 질책하며 주저앉고 싶습니다. 

영적 방황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근데, 왜 이 현상이 생기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내 의로 신앙생활 하려니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꼭 기억할 게 있습니다.

영적인 모든 역사는, 내 의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믿음 생활을 내 의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내 의로 백번 천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인도하시는 절대적 은혜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영의 영역은 은혜가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장 5절)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태복음 19장 26절) 

 

위 말씀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만이 

내가 아닌, 그분의 주도로 하늘나라 기준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그분께서 인정하는, 진정한 은혜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그러려면 먼저 은혜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 증거하는 참된 은혜입니다. 

여기서... 비슷한듯 다른 은혜... 

대부분의 교회에서 가르치는 은혜에 대해 의문이 생깁니다. 

진정한 회개도, 자기 부인도, 거듭남도 없는 대부분 교인들을 향해 

은혜를 받으라 선포하고, 교인도 '은혜'가 만능이라며 열광합니다. 

자신은 은혜 안에 있다(?)고 하며 기뻐합니다. 

사실 맞는 가르침입니다. 

은혜 없이 구원받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은혜가 막 부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설교를 듣는다고 

은혜가 저절로 막 부어지며 은혜 안에 거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교회 다니는 모든 사람들은 자동으로 은혜 안에 거하며 

모두 구원받아야 논리에 맞습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교회에서 무한 반복되는 설교 패턴입니다. 

그러나... 

기록된 복음은 그런 식으로 증거하지 않습니다. 

간절히 주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부어진다고 합니다. 

즉, 성령으로 거듭나길 간절히 원하길 찾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 은혜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중략.....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장 9-13절) 

 

이 말씀이 바로 성령으로 거듭남... 

성령님이 실상으로 내 심령 안에 들어오시는 걸 의미합니다.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초신자 때 입술 영접, 그런 관행적 영접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주님 영접이란...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주님의 성령이 실제로 내 심령에 오셔야 

그게 복음적 실상의 영접입니다.  

그럴 때... 영과 혼과 육에 거룩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주님께 새로운 생명을 받아 은혜를 누리는 온전한 믿음이 됩니다. 

이런 믿음의 성도만이 

내 안에 거룩하신 성령님이 계시므로 

그분의 거룩함이 내 삶으로 투영(열매)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 거듭난 믿음의 사람은.. 늘 육과 세상이 아닌, 거룩에 

힘써지도록 하나님께 인도함을 받는 은혜가 부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 이끌림을 받는 영적 은혜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으려 이 접붙임의 과정으로 가고자 하면 

자꾸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어 하는, 육적 방황 현상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오락가락하며 괴로워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동안 마귀가 구축한 죄의 세상에 잘 길들여져 중독되어 있는데 

그 중독증과 주님의 말씀이.... 서로 밀고 밀리는 현상 때문입니다. 

거룩한 주님의 말씀은 내 육을 밀어내려 하는데 

마귀에 중독된 내 육의 속성은 

본능적으로 말씀을 밀어내며, 현실에 안주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그게 혼란스러워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5장 17절) 

 

그러나... 

사후,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누구든 이 둘 중 하나의 길로 갈 터인데..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십자가(자기 부인, 회개, 거듭남) 통과 없는 천국은 없습니다. 

반드시 주님을 찾고, 구해야 하고... 

성령으로 거듭나 실상의 은혜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여... 우리는 그 무엇보다 주님을 구하는 게(거듭남) 먼저입니다. 

그 후에야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가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믿노라, 은혜로 사노라 하면서... 

육의 죄성이 자꾸 올라오는 게 힘들어, 나는 왜 이럴까 하기 전에...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솔직히 질문해보십시오. 

이 질문의 본질은... 

진정으로 나를 부인하고, 회개하며, 

내 육과 죄 된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길 절박히 구했냐는 것입니다. 

입술로만 구하는 게 아니라... 

정말 내 모든 것을 팔아 제일 값진 진주와 바꾸려 했냐는 겁니다.

실제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지키려 하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주님은 나로부터 나를 빼앗으러 오셨는데 

나는 주님께 빼앗기지 않으려 발버둥 치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진정 나를 포기한다면, 빼앗길 게 없는데 무예 힘들겠습니까... 

 

말씀을 정리하며 마치겠습니다. 

내 의로는 절대 온전한 믿음과 은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참된 은혜는 거듭나 그분으로 맺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 접붙임 당하려 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내 모든 것을 포기(부인)해야 가능합니다. 

전적인 육의 포기함 없이, 아무리 은혜를 외친들 소용없습니다. 

본능적으로, 육을 포기할 마음이 없으면서... 

그저 은혜만 앞세운다고 은혜로 살게 되는 게 아닙니다. 

은혜는... 내 죄성을, 슬쩍 가려주는 데 이용되는 도구가 아닙니다. 

은혜(영적 은혜)는... 단호히 나를 포기하려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도.. 벼랑에 매달려 곧 죽게 되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자처럼 

아주 갈급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매달릴 때 말입니다. 

천국 가는 길이... 왜 좁고 협착하다 하셨는지...

왜 구원받을 자가 매우 적다 하셨는지.. 꼭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택의 여지 없이, 무조건 성령이 내게 오셔야 합니다. 

그 길만이 구원을 보장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신명기 4장 29절)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장 30절)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 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