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성전에는 매우 특이한 상징물이 성전 입구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놋으로 만든 8미터가량 되는 기둥에 
2미터 남짓한 거대한 머리문양을 가졌으며
머리문양을 받치고 있는 것은 석류장식이요, 
그 머리에는 백합화장식을 둘렀으니
당시 건축규모를 생각한다면 
가히 휘황한 자태임이 분명합니다.

성전을 보는 사람마다 빛나고 
당당한 이 기둥의 위세에 압도되었을 것이며
성전을 섬기거나 출입하는 모든 사람은 
이 기둥 아래로 지나가야 했습니다.

이 기둥의 이름이 바로 야긴과 보아스였습니다.
우편 기둥인 야긴의 의미는 
'저가 세우시리라'였고
좌편의 보아스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알려졌듯이 석류와 백합화는 
주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식물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 기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건물로 상징된 성전이 실은 주님 자신이시고, 
또한 그 주님을 모신 성도가 되고
성도들이 모인 회중인 교회가 
성전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기둥은
교회와 성도가 어떻게 세워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가 세우시리라!'
이 사실에 대한 수긍과 믿음이 없으면 
죄가 범람하고 실패 잦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전으로 세워질 것이라는 
소망을 갖겠습니까?

교회를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다는 약속이 없다면 
겨우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종교적인 유희를 하는 것밖에 더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전을 향할 때마다 
하나님의 전을 그가 세우실 것임을 백성들이 되새겼다면
오늘날 우리의 교회도 그러해야 함을 
야긴은 웅변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가장 인기있는 신앙의 화두는 
'능력'일 것입니다.
성도라고 부르는 이들이 진리는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죄와 불의 앞에서는 무기력하고
교회의 전반적인 고민이 세상을 향해 
영향력을 잃었다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능력이 있다!'
하나님은 성전이 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지나야 할 또 하나의 기둥이
보아스라는 사실을 각성시키고 
알려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경건 생활에서 숱하게 실패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쌓고, 훈련하고, 
경험한 것의 총화가 경건이라고 믿는 것만큼
교묘히 성도를 속이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대신 죽으셔야 할 만큼 
부패한 사람을 훈련한다고 경건이 세워지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정말로 진지하게 인정해야 할 것은 자기에게 소망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야, 헛된 기대감이나 가능성을 
자기에게서 찾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습니다. 경건, 의, 지혜, 구속, 이 모든 것이 자기가 아닌 자기 안의 주님을 통해 나타난다는 평범한 진리가 몸서리치게 믿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강단이나, 좋은 교제권이나, 
훈련 프로그램이 있으면
성장하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교회가 모든 것을 다 갖추었어도 
하나님의 개입이 없으면 그 어떤 것으로도
영혼을 세울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전 앞에 세워진 야긴과 보아스는 
정확하게 이 시대 속에서 세우고자 하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두 기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