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히3:7-19)

 

성경은 하나님 나라 언약서이다.

하나님 나라의 출발과 성장 과정, 

종말에서의 완성을 기록한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 결과이다.

이는 각 시대 언약에 의한 하나님의 사역 결과이다.

언약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계약이다.

이는 계약 당사자인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역할과 임무를 규정한다.


언약의 내용은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리라.”

이다(창17:7-8).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설립되고,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으로 성장하며,

종말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아들을 통한 완성을 향하여 나아간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각 시대 중보자를 통해서 

증거된 하나님을 믿고 동행한다.

신구약 백성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명을 누리며 

그 나라에 봉사한다.


하나님 나라의 모태는 모세가 설립한 나라이다.

이 나라는 모세율법으로 경영되는 율법의 나라이다.

따라서 모세율법은 옛 언약의 법이며 

여호와의 옛 통치체제이다.

이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를 규정한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경영방식과 

나라 백성의 윤리적인 삶을 나타낸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윤리는 

하나님의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관계적인 윤리이다.

모세율법은 종과 어린아이의 윤리이며 

그리스도 복음은 장성한 아들의 윤리이다.

 

언약은 하나님 사역의 토대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통해서 

신구약 백성을 구원 경륜의 동반자로 세우신다.

그러므로 언약은 하나님 경륜의 동반자가 되는 길이다.

이는 창조된 세상을 경영하는 일에 

하나님의 동반자가 되는 길이다.

또 언약은 언약 당사자의 어떠함을 판단하고 결정한다.

언약 당사자인 여호와와 그의 백성의 어떠함과 

의로움을 판단하고 규정한다.

언약 당사자의 의로움은 언약에 신실함이다.


여호와께서 각 시대 언약에 신실하시면,

각 시대 백성의 하나님으로 신실하게 행하시면,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각 시대 백성이 언약에 신실하게 행하면,

율법에 부착하여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으로 행하면,

그들은 의로운 백성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의로움은 

율법에 부착하여 여호와의 백성으로 행하는 것이다.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율법을 따라 옛 백성과 세상을 경영하셨다.


하나님 사역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구약에서는 자신의 영을 주신 

사람 중보자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중보자는 그가 본 하나님의 영광을 백성에게 증거한다.

백성들은 중보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누린다.

이처럼 옛 백성들은 그 시대 중보자를 

믿음으로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믿었다.

족장 시대 백성들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으로 믿음으로,

율법 시대 백성들은 중보자 모세를 믿음으로,

중보자들이 증거한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알고 믿었다.


이처럼 구약백성들은 중보자를 통하여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믿었다.

그러면 하나님과 각 시대 백성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하나님과 중보자와의 관계가 

각 시대 백성과의 관계를 결정한다.

이는 백성들은 그 시대 중보자에게 속하기 때문이다.

중보자가 종이라면 그에게 속한 자들은 종이다(출19:9).

그러나 중보자가 아들이라면 

그에게 속한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자녀)이다(갈4:4-7).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의 영을 주셔서 이스라엘에게 보내신다.

모세는 자신이 본 여호와의 영광을 백성들에게 증거하였다.

이러한 모세의 증거를 따라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알고 섬겼다.

그러나 모세가 증거한 하나님은 

휘장으로 가리운 하나님이다.

그가 본 여호와의 영광도 휘장으로 가리운 영광이다.

이는 모세와 이스라엘은 휘장 밖의 영역,

곧 죄가 지배하는 세상에 세워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죄로 인한 휘장의 장벽이 있었다.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옛 백성을 죄가 지배하는 세상에 세우시고,

그들의 종과 어린아이와 같은 

완악함에 맞추어서 동행하셨다.


모세와 이스라엘의 완악한 수준에 맞추셔서,

그들의 종과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에 맞추셔서,

모세율법과 제도를 따라 역사를 동행하신 것이다.

이는 부모가 어린 자녀의 수준에 맞추어서 

양육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모세율법은 종과 어린아이의 도리이다.

모세가 명한 여러 규례와 계명은 

종과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에 맞춘 것들이다.

그래서 율법에는 행해야 할 것과 

행하지 말 것을 명하고 있다.

그런데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다.

아들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셔서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아들을 율법의 통치가 시행되는 유대 땅에 보내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영원 전부터 

아신 바 된 아버지와 뜻을 온전히 증거하신다.

그 결과 아들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심으로 

율법의 통치는 종결되고 새로운 통치가 시행된다.

휘장의 가림이 없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참된 은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예수께서는 율법 아래에 보냄을 받은 그 아들이다.

율법 아래는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휘장 밖의 영역이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요구를 따라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신다.

충성스럽고 자비로우신 대제사장으로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히2:2-10).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마귀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다

(히1:3, 2:14).

이는 자기 백성을 영광으로 인도하시는 맏아들로서 

행하신 일이다(히2:10, 14-15).

따라서 히브리서는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한다(히3:1).


히브리서는 

예수를 단순히 믿음의 대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라고 칭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충성한 모세와 대비한다.

모세는 장래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머슴으로 충성하였다(히3:5)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집을 맡은 아들 

곧 그 집의 상속자로서 충성하였다.

이러한 모세와의 대비는 중보직의 대비이다.

그래서 예수의 중보직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리스도라고 칭하고 있다(히3:6).

지금은 그리스도의 권세와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그 집을 맡은 상속자이며 

만유의 후사임을 드러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고 말한다

(히3:6).

 

모세가 말한 바를 끝까지 잡으면 

모세가 충성한 나라의 영광을 누린다.

가나안땅에서 주어지는 평화와 부유함, 

건강과 장수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모세의 율법을 순종하여 주어지는 

복은 땅에 속한 복이다.

이는 하늘에 속한 영원한 복과 안식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를 굳게 붙들면 하늘의 안식에 참여하게 된다.

따라서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라고 말한다.

이는 예수와 함께 하늘의 안식에 참여한다는 말이다.

이는 예수께서 집 맡은 아들로서 누리는 권세와 영광,

하나님 집의 상속자가 갖는 모든 자랑과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에 참여한다는 말이다.

이는 집 맡은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권세와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된 그의 집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히브리서는 

아들의 권세와 영광을 누리기 위하여,

옛적에 광야에서 넘어졌던 

선조들처럼 넘어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옛 선조들은 어떻게 불순종하였는가?

그들의 중보자인 모세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모세의 말을 불순종함으로 

그를 보내신 여호와께 불순종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기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출애굽 1세대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다.

 

이처럼 히브리서는 모세와 아들을 대비한다.

모세를 거절한 선조들이 

가나안땅의 안식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거울로 삼아서,

예수를 굳게 붙들어서 

하늘에 속한 참된 안식에 들어가라고 권면한다.

이러한 권면은 4장까지 계속된다.

이처럼 히브리서는 아들과 모세와의 약속을 대비한 후에,

광야여행을 언급한 시편 95편을 인용하여 

예수를 붙들도록 권면한다.


이처럼 히브리서는

    “광야에서 여호와께 불순종한 조상들이 누구던가?

     애굽에서 건져냄을 받은 조상들이 아니더냐? ]

     조상들은 40년 동안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심을 증거를 받았다.

     여호와께서는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동행하시고,

     날마다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의 생수를 주셨지 않았던가?

     이러한 여호와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모세를 거절하여 여호와를 믿지 않았다.

     모세가 증거한 말씀을 굳게 붙들지 않아서 

     광야에서 다 죽었다.

     따라서 조상들처럼 망하지 말고 예수를 굳게 붙들어라.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인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리스도는 그 집을 맡은 아들이시다.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고 권면한다(히3: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