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마귀에게 이 땅의 공중권세가 허락된 한...

이 땅의 모든 이는 주님의 말씀을 완벽하게 다 지킬 수 없을뿐더러

100% 완벽하게 거룩함을 갖추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즉, 불완전한 존재이지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완벽해지려면 육신의 장막을 벗는 동시에 구원받은 영체가 되어

천국에 갔을 때 비로소 완벽한 거룩이 완성됩니다.

천국은.. 죄성을 부추기는 사탄마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땅에서 완벽한 거룩이 불가능하니, 육의 모습으로

살길 원하며, 은혜만 앞세우면 그냥 구원의 길에 들어서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런 분들은 마치...

불나방들이 자기가 타죽는 줄도 모르고 불길을 향하여 돌진하듯

모두 지옥 불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찌해야 지옥으로 향하지 않고 천국에 갈까요...

먼저, 바울 사도가 전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미 얻었다 함(완벽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구원/상급)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힘쓰노라)

(빌립보서 3장 12절)

 

믿음이 그렇게 좋다는 바울 사도조차도 이미

완벽하게 구원을 완성했다고 말하지 않고 내가 주님께 붙잡힌바

되어 최선을 다해 달려간다고 고백하는 것을 봅니다.

바울 사도 자신이 완벽했다면 그는 그처럼 고백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모든 걸 이루었기에 확신하노니 천국에 갈 일만 남았다"고

자신감 있게 고백했을 것입니다.

 

완벽은 100% 다 이룬 것이고... 온전이라 하는 것은

여러모로 불완전하지만... 최선을 다해 이뤄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즉 부족하지만, 그리스도의 장성한 모습을 향해 최선을 다하여

달려가고자 하는 심령 상태를 말합니다.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매달리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태복음 11장 12절)

 

내가 완벽하다면 굳이 매일 천국을 침노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또,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이해시키려 합니다.

이 말씀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연약하여 거룩이 부족함을 알 때)에

너희가 강한 것(큰 믿음)을 기뻐하고 또 이것(큰 믿음)을 위하여

구하니(간절히 매달리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고린도후서 13장 9절)

 

위 말씀은... 바울도 사람이 연약하다는 걸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연약의 타성에 빠져 주저앉지 말고 매일 나를 복종시켜

큰 믿음을 향하여 굳세게 달려가길 주님께 간절히 구하려는 상태...

그것이 온전한 믿음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즉, 연약하고 부족함을 빙자하여

사람이란 원래 그런 존재라 어쩔 수 없으니 배 째라고 하지 말고,

천국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세상과 육적인 본능에

한눈팔지 말고, 최선을 다하여

매일 주님만을 간절히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부족함을 알지만, 힘써 침노하는 온전한 믿음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렇게 간절히 매달리려는 속사람의 중심을 보시며

그 사람의 믿음이 온전하다며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베드로후서 3장 14절) 

 

베드로 사도는

믿는 성도들에게 주님 앞에서, 점도 흠도 없도록 힘쓰라 합니다.

힘쓰라는 말의 의미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점도 흠도 없도록

거룩을 향하여 계속 나아가라(침노하라)는 의미입니다.

애초에 점도 흠도 없이 완벽했다면...

굳이, 힘쓰라는 말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위하여 우리가 힘쓸 것은 무엇입니까...

늘 부족한 가운데... 항상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길

힘써야 하며, 매일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려는 마음가짐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친히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가셨습니까...

요즘 교회에서 흔히 가르치는 대로...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가셨으니, 우리는 그저

그걸 받아들이고 이해하면 우리는 그 길을 갈 필요가 없습니까?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주님이 맺어놓은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걸 믿음의 정수라 하며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고난의 십자가는 슬며시 배제하고, 죄를 씻어준다는 보혈 피의

은혜만을 악착같치 취하려고 합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을 믿음이라고 가르칩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진리를 빼돌리는 영적 도둑질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주님께서 동조하시겠습니까...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갈라디아서 6장 7절)

 

그래서 복음은 육의 본능이 요구하는 대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악한 교리를 여지없이 깨는 다음 말씀을 묵상해보십시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2장 21절)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우리가 죄를 범해도 무조건 용서하는 걸 목적으로

대신 지고가신 길이 아니라, 우리들 역시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게

하시려고, 먼저 본을 보이며 가신 길이었음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거듭나 구원받으려는 자)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여 성령으로 거듭나

내 안에 오신 그분의 인도대로 오직 그분만 바라보며 순종하여

따르려는 것이 나를 통해 그분의 열매가 나타나 열리는 것입니다.

즉 그 길은 내 의지로 가는 길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가는 길... 그것이 온전한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부인하고 회개하여 변화 받은 자는 반드시...

주님이 가신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영적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허나, 내 육의 본능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죄의 근처에 갔다가도

다시 나를 쳐 회개와 순종으로 복종시키는 애통한 심령 상태...

그게 온전한 믿음입니다.

큰 죄를 범했지만, 그 죄를 분명히 깨닫고

애통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이켜 간절히 회개했던 다윗 같은 그런

심령 상태를 보고 주님은 나의 합당한 자라고 기뻐하신 것입니다.

다윗인들 주님 앞에서 완벽했겠습니까...

바울 사도인들 완벽한 거룩의 상태를 지녔겠습니까?

아브라함, 이삭, 모세, 베드로, 요한, 야고보, 마태, 주기철, 손양원...

그들도 역시 흠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이 연약해서 어쩔 수 없다며,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죄를 깨닫고 자신을 쳐서, 애통히 천국 침노의 길로 갑니다.

그걸 주님은 정말로 귀히 여기십니다.

 

온전한 십자가 믿음의 길은

거듭나지 아니하면 도무지 그 누구도 갈 수가 없는 길입니다.

하여, 성령으로 변화받아 그분과 동행하며 그분의 십자가 자취를

온전히 따라가는 것... 그래야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을 갈만한 능력과 은혜를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는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순금이라는 것도 99.99999....%이지 100%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인들 더 설명하여 무엇 하겠습니까...

완벽(천국)을 향하여 달려가다 넘어지면 주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다시 일어나고, 힘들면 주님의 은혜로 힘을 얻어 계속 가는 길...

그것이 온전한 믿음의 길이자, 은혜의 본질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구원받습니다.

우리 모두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그 길을 꿋꿋하게 가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