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는 자를 144,000명으로 제한한 신천지 얍삽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경을 무시한 처사이다.

 

예수의 재림 때 

둘 중의 하나 버림과 들림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주방에서 있던 아내는 들림 받고, 

들림 받지 못한 남편의 허무함,

수업 중이던 학생 절반이 

들림과 나머지 당황한 학생들..

어베젼스를 보는 듯한 이런 전개는 본질을 왜곡한다.

 

전 인류 반을 들림과 버림으로 나눌 수 있을까?

기독교 숫자는 많이 잡아 30%이고, 

그 중 복음주의 교회는 몇 프로나 될까?

 

예수께서 들림과 버림을 이야기하신 전후 

맥락은 ‘깨어 있으라.’이다.

종과 주인의 비유에서 깨어 있는 종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반면 깨어 있지 않은 종은 술판을 벌이고 방탕한 삶을 산다.

 

슬기로운 종과 악한 종의 차이는

주인을 대하는 마음이다.

 

만약 주인을 연인처럼 고대한다면, 

늘 그립고 집 안을 깨끗이 할 것이다.

이것이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의 자세이다.

다시 오실 신랑 예수를 기다리는 신부처럼 말이다.

 

인생을 너무 문자적으로 재단하지 말고

사랑으로 봤으면 좋겠다.

 

사랑 안에 살아갈 힘이 있고,

버티게 한다.

 

그것이 핍박과 순교에도 주님을 기다린 성도의 자세였다.

얼마나 좋은가? 

그토록 소망하는 예수님을 직접 볼 수 있다니..

그런 날이 오기 전, 오늘을 감사하며 살아가자.

가까운 자에게 “사랑한다.” 고백하며

일상을 사랑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할렐루야!

(마태복음 24:36-51 묵상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