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화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상대방이 내가 꽁꽁 숨기고픈 약점을 들춰내거나, 내 가치관과

상대방의 가치관의 차이로 정면으로 충돌했을 때 일어납니다.  

왜, 충돌하겠습니까... 내 가치관이

상대에게 존중 못 받고, 침해되거나 무시당했다 느껴질 때입니다. 

하여, 지켜야 할 나의 뭔가를 남에게 무시당했다 판단되었을 때 

본능적으로 이 뭔가를 보호하기 위해 속사람이 불끈 올라와,

상대에게 저격당한 가치관의 상처를 치유하고 보호하려는

반사적 표현이 바로 분노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켜야 할 뭔가는 또 무엇입니까...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해 마귀가 심어준 육(죄)적 속성의 괴물들... 

그것은 곧 자존심으로 대표되는 자아입니다.

자존심은 무엇입니까, 견고한 내 자아를 귀히 여겨 지키려는 것...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은 내 자아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고,

이것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속 사람의 본능이 서운함과 분노로 표출되는 반사적 반응입니다. 

그것이 분노와 서운함의 진짜 이유입니다. 

그래서, 자아가 강한 사람일수록 자기 가치관의 기준이 견고하여 

이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분노가 많이 표출되고 주변 사람들과 

트러블이 많아, 늘 힘든 분위기로 만들어갑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진정 그리스도인이라면, 내 개인적인 모든 것을 부인했기 때문에

내 자아의 가치관을 지키고 존중할 이유와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거듭나, 자아가 소멸되어가는데

소중히 여기며 지킬 게 무예 있습니까... 

다 내려놓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주변과 트러블이 없고 늘 먼저 물러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거듭나면... 세상과 내 자아의 가치는 배설물로 보이기에 

별 큰 관심이 없습니다. 하여, 나를 지키겠다는 근본 이유는

곧, 내 안의 나... 즉, 아직도 내 가치관이 크다고 여기는 교만이... 

내 안에 굳건히 또아리 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직도 나의 주인으로 통치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현상이 내게 지속해서 발생한다면, 심각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원인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아직도 날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는 곧, 거듭나지 않았다는 증거의 열매입니다. 

 

물론...

자기를 부인한 사람도 가끔 서운하고 화날 때가 있습니다. 

허나, 그것은 아주 가끔 단발적인 것이고 지속성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럴 때 그들은

자기 가슴을 치며.. 간절한 마음으로 애통히 회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성화 되어가는 것이고 그 빈도는 점점 줄어듭니다. 

 

성도가 진짜 분노할 상황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이방인에게 신성을 무시당했을 때입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이야말로 비교불가의 절대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사람 육적 본능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지킬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이런 거룩한 분노도 미움을 동반한 분노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하여 긍휼한 마음이 묻어 나오는 사랑의 분노입니다. 

그러므로 증오와 미움으로 분노하는 것을 거룩한 분노라 하며 

함부로 포장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영적 살인죄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처럼, 형제에 대한 분노를 쉽게 생각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므로 형제에게 분노했던

분들은 틀림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지옥행)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한1서 3장 15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태복음 5장 22절)

 

성경에 예수님도 화내는 장면이 나옵니다만...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새끼들이라 힐난하는 장면은 

증오의 감정을 실어서 분노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신성이 작용했던 것입니다. 왜 그들을 불쌍히 여겼습니까... 

그들은 이미 지옥행이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결정되었습니까... 빈정대며 주님의 일을 훼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장 33절) 

 

성령 훼방 죄는 절대 사하심이 없기에 극도로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마태복음 12장 31절)

 

그러므로

주님께서 바리새인을 향해 화내며 욕했으니, 나도 당연히 화내며

욕할 수 있겠다는 육적 아마추어적인 발상은 아예 포기하십시오. 

주님은 근본적으로 주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 진노 속에는 미움의 마음이 아닌 안타까워하는 사랑의 마음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위 말씀(마 5: 22)에 기록되었듯... 형제(사람)에게

악한 감정을 가지고 분노하는 것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사람들을 통해 계속해서 분노와 서운함의 마음을 

노골적으로 자극하기 위해 분노의 영을 끊임없이 보냅니다. 

왜 보낼까요...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속 사람 안에 견고히 진 치고 있는 자아를

자극하여 거듭남을 포기하게 하려는 목적이고, 

이미 거듭난 사람은, 어떻게든 넘어뜨리기 위함입니다. 

결국, 지옥으로 끌고가려는 속셈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분출하는 분노가 인간의 원래 성격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마귀가 주도하여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려는 폭탄입니다. 

함부로 폭탄을 넙죽 받아 터뜨리려 하지 마십시오. 

폭탄을 터뜨린다고 도무지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오히려...

그게 터질 때마다 터진 영역만큼 당신의 영은 계속 죽어갑니다. 

분노를 터뜨리지 말고.. 주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 현명한 자의 

참된 모습입니다. 

그것 역시 자기를 부인하려는 거룩한 발상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구한다는 것은, 육의 모습으로 살려고 하면서 입술로만

'주여주여' 구하는 것은, 진정 구하는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마그마처럼 꿈틀거리는 육의 악한 열매들이 밖으로

안 나오도록 인내하며

주님을 구하는 게 진정 나를 부인하며 구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면밀히 살피십니다. 

 

지금도 

나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거나, 분노의 마음이 올라온다면... 

마귀가 자극하고 있는 것이므로 마귀가 요구하는 대로 이끌리지

마시고, 이것을 단호히 거부하려 하며 주님께 이를 통제해달라고

절박한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내 안의 육을 소멸시키는 길은... 오직 내 안에 성령님이 오셔서

 통제 관리하는 길 외에는그 어떤 방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이를 못 견디고 물러가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분노의 마음이 죽지 않고는, 절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거듭나 주님의 날개(은혜) 아래 들어가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