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회에서 간증집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믿음이 매우 좋다는 청년들이 인도에 가서 단기선교하고 돌아와

인도 현장에서 겪은 에피소드에 대하여

느낀 대로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는데,

한 청년부 여성이 통곡하면서 자기는 가짜였다고 울먹이는 것입니다.


이유인즉슨...  

인도로 선교를 가기 전에... 자기의 모습은 스스로 생각해도

믿음이 상당히 좋지 않을까 자평했다는 것입니다.

교회 거의 안 빠지고 모든 예배에 참석했고,

어지간한 봉사는 눈에 보일 정도로 열심히 했으며,

찬양할 때 늘 감동하여 왼손은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하늘을 향해 늘 올리며 찬양했고,

기도할 때에는 눈물 흘리며

회개의 기도와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애통의 기도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하여 자기는 내심 생각해도 잔잔한 영성과 뭔가 구별되는

기특한 믿음이 있다고 늘 생각했고,

늘 은혜가 넘쳤으므로 나 같은 자가 구원 못 받으면

누가 받겠는가 하는 어느 정도의 자신감도 있었다고 합니다.

 

늘 그렇지만...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어떤 물질이나 도구나 환경을 통하여 분석해보거나

겪어보면 바로 가려집니다.


명품 가방인지 짝퉁 가방인지 아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고 합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비를 맞으면서도 

가방을 가슴에 품고 막 뛰어가면 진품이고,

머리 위로 올려 가방으로 비를 막으면 짝퉁이라고 합니다.

빗물이 진위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내 믿음이 진품인지 짝퉁인지는 자기 자신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보통 위에 말씀 드린 대로... 교회에서 열심히 하고, 

눈물 좀 흘리면 은혜가 충만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으로 스스로 착시 현상에 빠지는데

이건 대단히 위험한 현상입니다.

이 여성분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이 여성분은 인도에 가서

자신이 가짜임을 확인하고 좌절했다고 합니다.

인도로 출발 하기 전, 믿음 좋은 자신은 인도에 가서 야심 차게

선교사역을 해 보리라 의기양양하여 출발했습니다.

인도에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매쾌한 역한 냄새가 고통스러웠고,

후덥지근한 날씨가 괴로웠고,

도심지로 들어가니 거지들이 여기저기 해결한 변들이 많아

냄새가 진동하고, 거지들의 구걸행위에 피해 다녔고,

결정적으로 이 더러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하고픈 생각이 전혀 안 들고

그냥 한국으로 다시 가고픈 생각이 굴뚝같았다고 합니다.

 

겐지스 강 근처에 가 보니

여기저기 시체를 화장하여 강에 막 뿌리고,

강변에 아무렇지도 않게 변을 보는데 너무 더러웠고,

또 사람들은 겐지스 강을 신성시하여

그 더러운 오물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떠내려 가는데

옷을 벗고 들어가 몸을 씻고 혹 어떤 이는 마시고...

너무 혐오스러워서 그들을 전도하고픈 생각은 다 달아났고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더럽고 미개한 사람을 대상으로 선교할까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 그냥 국내로 다시 돌아올 생각만 가득했다고 합니다.


괴로운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왔을 때...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니... 멈출 수 없는 통곡이 났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에 대한 믿음의 진짜 실체를 봤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출발 전에는 자기의 믿음과 열정이면

무엇이든... 어딜 가든... 어떤 일이든... 

씩씩하게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는데 

막상 현실을 접하니, 그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만 있을 뿐

본인의 믿음은 다 거짓이었음을 통감하고

내가 믿음 좋다고 나를 속이고 주님을 속인 것에 대한

진정한 회개가 일어났고 

교회에서 그저 종교생활만 할 때는

그렇게 믿음 좋고 은혜 충만하여 지금 당장 죽어도

구원받을 거라고 추호도 의심치 않았는데...

머릿속에만 있던 믿음을 실상으로 행하려는 상황이 되다 보니

도저히 순종하기 힘들었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미웠던 것입니다.

 

자신은 그저 머리로만 주님에 대한 지식이 가득했고,

입술로만 주님을 찾았으며,

입술로만 회개했고,

입술과 기분으로만 사랑과 순종을 외쳤으며, 

입으로만 성령 충만하여 구원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외친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그 자신에 대한 신앙의 밑바닥을 정확하게 확인하니

주님을 보기 부끄럽고 민망하여 고개도 들지 못하고

그저 엉엉 울기만 했다고 합니다.


평생 진짜 호된 회개를 하면서 저는 가짜입니다.

저는 주님과 저 자신마저 속였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는 철저히 가짜였습니다.  

가짜 믿음이었습니다, 가짜 은혜였고, 

나만의 가짜구원을 만들어서 스스로를 만족하게 했습니다.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용서하소서...

주님...주님....엉엉...

이때 성령께서 입하였다고 합니다. 


평생 처음으로 회개다운 회개를 했는데 

성령님께서 역사하기 시작하시는지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이 생겨서  

더럽다 여겼던 그들에게 다가가는데 그들이 왜 그리 불쌍하게 보이는지,

그들이 누운 변들을 치우고 싶었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그들을 안고서 기도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며,

내가 이들을 전도하지 않으면 이들을 누가 전도할까...

나부터라도 먼저 앞장서서 

주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행하자는 거룩한 마음이 막 피어났고, 

입맛에 맞지 않던 그들의 음식이

아무 거부감 없이 입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부족했지만 최선을 다해 단기선교를 했다고

앞에 나와서 울면서 간증했다고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혹, 자신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해 보고 싶지 않습니까?

혹시, 우리도 내가 만든 정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믿음과 은혜만 앞세워 

구원받았다고 자신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증해야 합니다.

머리로만 알면서 다 되었다고 확신하는 종이 십자가의 믿음인지,

실상의 진짜 십자가의 믿음인지 확증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늘 속이면서 내 스스로 만든 눈물을 흘리며

오늘 큰 은혜를 입어 나는 거룩하다고 하지 마십시오.

나보다 어려운 우리 이웃의 힘든 모습을 보면서도

그냥 내일이 아니라고 지나치거나 터부시했다면 

우리는 거짓 믿음이고 내가 흘리는 눈물은 

내 감정에만 충실했던 눈물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과 함께하는 성도님들은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주님이 인정하는 진실한 믿음은

반드시 거룩한 성령의 열매로 증명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 대한 율법의 기본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함이

믿는 자에 대한 율법의 근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함이 없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한다는 다짐도 역시 가짜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내 이웃도 내 목숨처럼 사랑하게 되어 있기에

내 이웃의 어려움을 눈 앞에 보고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도 진정으로 사랑할 리가 없습니다.

지식적으로만 주님을 사랑하고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 보는 바(육안에도 보이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육안으로 안 보이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한1서 4장 20절)  


그(주님)를 아노라(시인)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한1서 2장 4절)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믿노라 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태복음 15장 8절) 


나 자신의 모습를 관찰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은 속여도 주님은 결코 속이지 못합니다.

하여, 주님은 우리의 신념적, 관념적인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에서 나오는 행함의 열매로 구원을 결정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야고보서 2장 18절)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야고보서 2장 22절) 


또 혹자들은 행위을 강조했다고

눈동자에 각잡고 핏대를 세우는 사람 분명히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제게 따질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과 야고보 기자에게 먼저 따져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강도 만난 이웃을 불쌍히 여겨

그를 도와준 사마리아인을 선하다 인정하셨지만, 

머릿속이 터질 정도의 성경지식만 가득하고

입술로만 주여주여를 외치면서

강도만나 쓰러진 불쌍한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 

제사장과 레위인을 선하다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과연 선한 사마리아인입니까?

아니면 지식만 가득한 입술로만

주여주여을 외치는 악한 제사장과 레위인의 모습입니까?

우리 믿음의 밑바닥은 어디입니까?


주님을 소리높여 외치기 전에

우리 신앙의 밑바닥 정체성을 먼저 확인하십시오.

사람들은 우리의 가면 쓴 모습을 보고 판단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가면 뒤의 민낯을 보고 판단하십니다.

가면만 쓰고 스스로 거룩하다 하지 말고,

우리 자신을 위하여 가면을 과감하게 걷어버리고

생얼굴로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을 사랑함 같이

내 이웃에게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진짜 믿음을 소유한

신앙인이 되게 해 달라고 매달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즉, 성령으로 거듭남을 구하는 게 먼저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행위 자체로만 거론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그건 바리새인들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거듭난 믿음의 사람은 성령의 열매로 파생되는 모습이 

분명히 삶의 결과로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입술(교리, 이론)로는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적 믿음의 실상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믿음을... 교리만 앞세워 느낌이나 지식으로 가볍게 재단치 말고, 

거듭난 믿음에서 나오는 실상의 열매로 분별해야 합니다. 

사람이 만든 교리는 틀릴 수 있어도, 성경은 절대 틀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장 14-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