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모든 예언이 이루어져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마지막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복인 흰옷을 입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16)
깨어 무슨 옷을 지키라는 말씀입니까? 바로 주님의 신부가 입어야 하는
의의 옷인 흰옷을 의미합니다.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 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계 19:7-9) 지금은 우리가 주님의 신부로 준비되어야 하는 때로서 마지막 날
주님의 혼인 잔치에 택함을 받아야만 합니다. 많은 이들이 혼인잔치에 청함은
받았지만 택함을 받는 자는 매우 적습니다.(마 22:14) 즉 구원의 옷은 받았지만
의의 겉옷(흰옷)을 더함 받지 못하여 택함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고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사 61:10)
구원의 옷은 은혜로 입혀주지만 의의 겉옷은 하늘의 더함을 입어야 합니다.
바로 성령을 통해 거듭남으로써 입혀지는 의의 옷입니다. 의의 겉옷 = 흰옷 =
예복 = 세마포 옷 = 그리스도의 옷이 하나 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구원의 옷’ 만을 입고 천국에 갈 것으로 맹신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깨어 의의 겉옷을 더함 받아야만 합니다.
의의 겉옷인 흰옷을 입고 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신부가 입는 흰옷은 우리 마음에 입혀지는 것으로서 주님을 향한
순결하고 충성된 마음을 갖고 있는 내적인 경험을 뜻합니다. 즉 주님의 피로
양심이 씻겨져 넓은 길을 도저히 갈 수 없는 정직한 마음, 주님 말씀에 온전히
굴복하고 즐거워하는 마음, 죄를 미워하며 인생의 목적이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마음, 성령의 열매를 사모하는 마음 등이 흰옷을 입은 자들의 증거요
특징입니다. 곧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인도에 굴복하는 마음으로서
세상이나 육신의 정욕으로 나뉘어지지 않은 온전한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현대 교회를 향해 안타까운 기별을 보내고 계십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믿음)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8) 오늘날 교회의 치명적인 문제점들로서 주님이
연단한 금과 흰옷과 안약을 ‘사라’고 하심은 선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불로 연단한 금(믿음)을 사라.
많은 이들이 ‘주여 주여’ 하며 주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말은 하는데, 불 같은
시련에서 연단되어 불순물이 제거된 깨끗해진 순결한 믿음이 없습니다.
사실 ‘믿기만 하면 구원’ 이라면 구태여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받는 시련과 고난의 경험이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대가를
지불하여 시련과 고난을 통과한 정금 같은 믿음을 사라고 하십니다.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오늘날 가장 혼돈되고 오해되는 것이 바로 흰옷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실제로 많은 교회에서 예수를 입으로 시인하면 이미 흰 옷이 이미 입혀졌다고
말하며 한번 입혀진 옷은 절대 벗겨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말은 성경이 말하는
의의 옷인 흰 옷을 입는 깊은 경험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입니다. 정말 그러하다면
‘이미 예수를 믿는 라오디게아 교인들’ 에게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벌거벗었다는 의미는 죄성을 그대로 간직하며 드러내고 있다는
의미로서 흰옷을 입어, 곧 죄를 버려 수치를 보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안약은 영적 분별력을 의미합니다. 설교자의 말씀을 들으면 그것이 진리인지
거짓인지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거짓 선생들의 미혹이 극심하기 때문에
영적 눈이 뜨여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오늘날 교회의 현실을 질책하십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지금은 어느 것이 진리인가로 싸우는 때입니다.
피의 공로로 흰옷이 이미 입혀져 거룩해졌다는 거짓 진리가 득세하고 있지만,
죄 속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기에 그런 사람들에게 흰옷을
입혀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의로워졌다” 라며 흰옷을 이미 입은 양
외치는 거짓 선생들의 미혹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동화에 나오는 “벌거벗은
임금님” 처럼 사기꾼들에게 속아 벌거벗었음에도 옷을 입은 줄 착각하다가
큰 수치를 당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혹자는 아래 말씀을 인용하며 흰옷이 이미 입혀졌다고 합니다.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 7:14)
그리스도의 피로 옷을 씻어 희게 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성경 말씀이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바로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냐” 를 의미합니다. (히 9:14)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무뎌진 양심이 씻겨져야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
죄를 버리고 참 진리를 따르며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게 됩니다. 이 일은
나의 노력이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벧전 3:21) 것은 말씀이 내게 능력으로 임해야 하고 그 말씀(성령)이 내 양심을
씻어주어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듭나 흰옷을 입은
사람들만이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어린 양의 피로 씻음 받은 깨끗한 흰 드레스를 준비하는
주님의 신부가 되어 황홀한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택함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