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미 주어진 혜택을 미처 몰라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정부에서 주어진 혜택을 모르거나

무관심하게 넘어감으로써 유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주어진 영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혜택이 무엇인가요? 바로 주님의 선물인 보혜사 ‘성령’ 입니다.

 

  강대상에서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신 것을 믿습니까?” 라고 물으면

모두들 “네”라고 대답합니다. 그럼에도 성경, 특히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특징을 자세히 설명한 요한1서를 보면 그냥 지나치거나 피하고 싶어집니다.

또 히브리서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의 이야기도 아주 딴 나라 사람들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럴 때마다 “진정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신가?” 하는  

의구심과 회의감이 들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령이 하시는 주 사역은 무엇인가요?

많은 이들이 성령의 사역을 치유, 귀신축사, 환상을 보여줌 등 어떤 신비한

능력으로만 생각하지만,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요 14:15) 라고

했듯이 첫 번째 보혜사인 예수님처럼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진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양심에 호소하시고, 책망 하시고, 위로하시는 사역을 하십니다.

 

  성령은 어떤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얼마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시다가 갑자기

“내가 너희 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겠다” 라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제자들은 깊은 근심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유대 교회에서 출교 당하고 유대사회에서

매장된 상황에서 예수님이 없다면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때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시며 성령님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이 없으면 난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령을 가진 사람들에게 성령이 주어집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이 없으면 그 신앙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왜 “나는 포도나무요”라고 하셨습니까? 포도나무는 어떤 나무인가요?

포도나무는 버팀목인 지주대가 없이는 바로 설 수가 없어 쓰러지고 마는

아주 연약한 나무입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도 그렇게 연약한 존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라고 하시며 아버지가 주시는

성령을 지주대로 삼고 의지하며 공생애 사역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모본이신 예수님처럼 성령을 붙잡고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우리는 예수님(성령)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오랜 세월 교회 다니며 예배 드리고,

성경을 읽으면서도 주님께서 약속하신 선물인 성령을 받지 못하여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영위합니다. 죄와 유혹이 올 때 성령님을 붙잡지 못해 자꾸

쓰러지면서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하며 낙망합니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유일한 소망으로 바라보며 의지하게 됩니다.

새롭게 거듭나 자기를 부인하고 옛 습관을 버리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교만과 자존심과 허영심을 꺾어 겸손과 온유를 배우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사 이웃을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게 됩니다.

큰 고난 속에 마음이 괴로울 때에도 위로와 용기를 주십니다.

성령님의 은혜로 자족하는 법을 배워 감사와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유혹에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 죄를 물리치게 해주십니다.

바른 진리를 분별하게 하사 미혹에 흔들리지 않게 해줍니다. 등등

 

  반면, 내 안에 성령이 안 계시면,

진리의 말씀에 굴복하지 못하고 변명과 핑계의 정신이 생깁니다. 또

회개할 수도 거듭날 수도 없기에 속 사람이 변화되지 못하고 모든 생각과

계획이 내 중심적이 되어 이웃을 시기하고 비판하고, 분노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으며 죄를 물리칠 수도 없습니다. 또한 육신의 소욕을

따르는 이기심으로 인해 항상 불안하고 만족과 감사가 없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 16:13)

오늘날 “한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거짓 복음을 따르는 많은 이들은 성령의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미 구원이 끝났기에 모든 진리를 알 필요도 없습니다.

이는 성령을 소멸하는 참담한 일입니다. 아무리 십자가 은혜를 높일지라도

성령이 내 안에서 역사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희생이 아무 소용없고 효력을

발생하지 못합니다. 그저 '성령의 열매' 가 없는 공허한 신앙이 되고 맙니다.

모든 진리로 인도하는 성령이 없으면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기에 사람의 미혹

넘어가게 되고,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말씀하신 ‘이기는 자’ 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 현대 교회 안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과 성령과 전혀 상관없이

사는 두 부류의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지주대인 성령을 붙잡고

의지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하늘로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혹여 지금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다는 확신이 서지 않을 지라도 낙심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님은 지금 우리 아주 가까이에 계십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받으라"(요 20 : 22)

하실 때 내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성령을 맞이하면 됩니다. 대신 성령의 인도하심

받기를 진정 원한다면 성령님께 전적으로 복종 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수입니다.

하여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영적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만이 성령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게 되고, 그렇게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성령은 주어집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꼭 붙잡고 의지하며 생수를 날마다 마심으로 주어지는 기쁨과

평안 속에서 천성 문을 향해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좁은 길을 가야 합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 모두는 우리 힘과 노력으로 안 되기에 지주대인 성령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는 성도들이 되어 성령을 통해 거듭나 하늘 천성 문까지 뻗어

올라가는 포도나무 가지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