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잘 믿으며 성실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도 실 생활에서 마귀의
유혹에 넘어지며 시험으로 인해 쓰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연약하고 부족할까 하는 속상한 마음이 들며, 나는
도대체 언제 경건한 영성을 늘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계속 연약하게 만들어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무기력한 존재인지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 매달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뒤를 돌아보아도 경제문제나 건강문제 등 여러 어려운 문제들로
인해 그 누구도 나를 건져낼 수 없는 고난의 웅덩이에 빠져 눈물을 흘릴
때, 그때 정말 주님께 굴복하고 간절히 매달리며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신앙의 성장은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지를 아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연약합니다. 태어나자
마자 경건하고 신앙이 좋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을 비롯해 모든 믿음의 선진들도 다 자신들의 연약함을
드러낸 부족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겸손히 자기를 낮추며 주님만
의지하고 매달렸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우리처럼 연약한 분이셨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예수님이 자주 새벽에 산에 올라가 기도를 많이 하신 것은 무슨 신령한
능력을 받으려 하신 것이 아니라, 육신의 연약함을 인하여 죄와 유혹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절박한 심령으로 성령충만을 간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기도와 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으로서, 그렇게 승리하심으로
연약한 우리도 죄와 유혹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모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내 인생이 조금만 잘 나가면 쉽게 교만해지며 자신의 연약함을
망각하기에 말씀과 기도로 주님께 매달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실은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큰 문제입니다.
대개 그들은 자신들을 도리어 강하게 만들기 위해 물질, 건강, 은사 등을
열심히 간구하지만, 정작 십자가의 길과는 정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연약함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로 주님께 매달리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는 타락한 본성을 갖고 태어나서 죄와
유혹에 쓰러질 수밖에 없다, 또 너무나 연약하기에 말씀에 순종할 수 없고
유혹을 물리칠 수 없다. 그러므로 오직 십자가 은혜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
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연약함을 구실삼아 오히려 목이 곧은
교만한 소치로서 마치 십자가에 달린 ‘다른 편 강도’의 발상과 같습니다.
“달린 행악 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눅 23:39-40)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는 믿는다는 신자들 중 두 부류가 있다는 것을
예시합니다. 저편 강도는 한편 강도와는 달리 자신의 죄에 대해 반성도
회개도 없이 반말 투로 “네가 그리스도인 것을 믿을 테니까 나를 무조건
구원해줘라” 입니다. 얼마나 강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뻔뻔스런
태도입니까? 오늘날도 많은 이들이 변질된 은혜로 각색한 아주 그럴듯해
보이는 거짓교리에 미혹되어 ‘저편 강도’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기에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이는 하나님도 성경말씀도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물론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죄와 유혹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연약
하고 부족하고 무기력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만큼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께
매달리게 되고, 그리하면 우리에게 성령을 주사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롬 8:26)
주님이 우리를 연약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를 더 가까이 두어 사랑하며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 참된
행복과 기쁨을 주어 스스로 강해진 자들보다 더 강하게 만들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즉 참으로 힘든 상황과 형편으로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우뚝 서는 오뚝이 신앙을 심어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7)
지금 회개하면서도 또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나를 보며 많이
절망하십니까? 주님은 그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귀하게 보시며 관심을
가지십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 하시리이다” (시 51:17) 진정 연약한
우리는 갈급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주님을 간절히 찾고 구하여야 합니다.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시 39:4)
우리 모두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성도로서 무너지고 넘어질 때 낙담하지
말고 더욱 말씀과 기도를 통해 상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총과 평강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