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아는 혈루 병 앓던 여자의 이야기 중에 그녀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능력이 나타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시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밀치는 등 예수님의 몸을 접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무런 기적이나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 여인이 무엇을, 왜, 어떻게 만졌기에 능력이 나타난 것일까요?

 

  먼저 옷자락(옷단)과 혈루 병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민 15:37-39) 이스라엘 자손들이 소매와 두루마리 끝 옷단에 청색 술

두른 것은 인간의 타락한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라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 고토에 거할 때에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소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

 같았느니라” (겔 36:17)

교회가 반역하고 주님을 떠나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여 육신의

정욕으로 방종하는 상태를 피를 쏟는 부정한 여인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혈루 병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이야기는 우리에게

심오한 영적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보혈의 생명의 피를

땅에 쏟는 부정한 여자(죄인)라는 사실을 진정 깨닫고 고침 받기 위해

육신의 정욕을 버리고 주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로 결단하고

그 여인처럼 상하고 통회하는 간절한 심령으로 죽기 살기로 주님께

나아가 엎드려 주님의 도움과 은혜를 구하면 주님의 능력(성령)으로

나의 죄의 병이 고침 받아 구원받는 “복음”을 현시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피를 흘리는 부정한 자들을 어떻게 고쳐주십니까?

에스겔은 계속 이어 설명합니다. “너희를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원래의 가르침)로 데려가서 맑은 물(진리의 말씀)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들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켤케 하실 것이며” (겔 36:24-25)

오직 순수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정결케 하십니다. 혈루 병 걸린

여인이 많은 의원들에게 오히려 괴로움만 받았다고 했듯이 여러 선생이나,

신학 서적이나, 인본적인 교리들이 우리를 정결케 하지 못합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육신의 소욕)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옥토)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겔 36:26-27)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말씀하고 있으며 그 궁극적 목적은 율례 곧

계명을 행하게 하려 함입니다.

 

  옛날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군중들은 진리의 말씀인 주님을 보면서도

온전히 돌이키는 회개의 결단이 없이 그냥 군중심리로 주님 곁에 서성이고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머리로 예수를 수긍하고

믿으며 교회 문지방만 밟는 오늘날의 수많은 현대교인들을 상징합니다.

 

  지금 현대교회의 많은 이들이 십자가 보혈의 생명의 피를 땅에 헛되이

쏟는 부정한 여인들임에도 불구하고 믿기만 하고 가만있어도 보혈의

피로 씻음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게 하여 내 목전에서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여” (사 1:16-17)

내가 깨끗하게 되기 위해 주님께 엎드려 굴복하지 않으면, 곧 우리가

순종하겠다는 결단이 없으면 주님도 우리를 정결케 해주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 장’ 이라고 부르는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의 선진들 모두 행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지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히 11:6) 의 믿음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믿음이지 그저 지식적인 동의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요일 3:22)

 

  만일 혈루 병 걸린 여인이 주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그저 열심히 바라

보고만 있었다면 아무런 역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결단과 함께 죽기살기의

능동적인 행함이 있었기에 주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막 5:34)

이렇게 단순하고 분명한 믿음을 왜곡시키고 행함을 부인하는 복음은

잘못된 것이요, 행함이 포함되지 않은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은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는 생애를 의미

합니다. 혈루 병 앓는 여인은 주님의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주님께 굴복하여 엎드려 손을 뻗쳐서 그 옷단을 만졌고 그때 주님의

능력인 성령이 주어져 병 고침 받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거듭남)

 

  우리 모두도 죄의 고질병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기에 고침 받기 위해

그 여인처럼 애통하고 상한 심령으로 온 맘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주님께

나아가 청색 술을 붙잡아 주님의 능력으로 거듭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