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 레위는 세리라는 직업 때문에 

사람들로 부터 지탄을 받고 기피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였다.

그런 레위를 주님은 주목하여 보셨고 부르셔서 제자를 삼으셨다.

마태라하는 레위가 위대한 사도가 될 것 을 미리 보시고 부르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의 일꾼으로 삼으신 것이다.

이러한 레위를 부르신 것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의 친구라고 하면서 비난을 했다. 

유유상종(類類相從), 죄인과 한통속이라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 나타났듯이 

기도라는 형식을 빌어 바리새인들은 

저 사람 보다 자신은 의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신앙의 우월성을 사람들 앞에서 보이기를 즐겨 하였다.

 

하나님 앞에 의인은 없다.

의인인양 착각하고 있으나 

그것은 자기의 영적 교만에서 나온 것이다. 

세상에는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만 있을 뿐이다.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은 세리를 죄인이라고 욕하고 싫어하여 

식사도 같이 하기를 거부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세리가 되겠다는 경쟁률이 높았다고 한다. 

고수익 직장이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의 중심을 보신다.

예수님이 의인을 부르러 오셨다면 

나는 구원 받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교회 안에 선한 의인을 단 한 사람이라도 찾아 낼 수 있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은 의인인 체하며 

신앙생활 잘하는척 위장하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가?

성급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급하게 정죄해서도 안되며 

그럴 자격이 우리에게는 없다.

바리새인들은 남의 죄만을 보았다.

그리고 부정적인 것만을 보았다.

남들을 안 좋게 보는 습성이 있었다.

그런 그들이 세금을 낼 때면 

세리들에게 잘 보여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아부하며 

밉보이지 않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주님은 레위의 무엇을 보고 부르셨을까?

레위는 주님의 부르심에 

그 좋은 직업을 버려 둔채로 주님을 따랐다.

아마도 부정직한 세리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자신을 괴롭혔을 것이다.

그런 중심을 아신 주님은 레위를 불러 

위대한 사도로 부르셔서 마태복음을 기록하게 하셨고 

끝내는 주님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의 자리에 까지 이른 신앙의 표본이 된 것이다.

남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직업이나 학문 정도와 빈부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어리석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가?

이 모두는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신앙인의 자세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의 삶을 본 받는 것이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마져 

정죄하는 일을 함부로 하지 않으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하시면서 사랑의 마음을 베푸셨다.

모든 세리가 죄인이 아니듯 

우리의 잘못된 선입관을 버리는 자신의 성찰이

앞설 때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