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성도들 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여러 단어들

중에 “하나님의 벗” 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지 모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약 2;21-23) 약간의 허물도 있었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우주를

만드신 무한한 창조주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다는 말씀은 참으로 고무적

입니다.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보통 어릴 적 매일 어울려 다니든 동무나 군대에서 힘든 훈련을 함께

받은 동료가 친밀한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같은 경험을

공유한 자들로서 서로의 심정을 잘 알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이유도 목적도 모르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 삼일 길이나 되는 먼 모리아 산으로 가는 동안 금식하며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견디며 많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 응답도 없이 침묵하셨습니다. 백 살에

얻은 자신의 생명과 같은 사랑하는 외아들을 죽여 번죄를 드려야 하는

인간 최악의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 아브라함 외에 또 있을까요?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 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 22:12-14)

 

  모리아 산에는 후에 솔로몬 성전이 세워져 번제 단이 놓여지고, 눈을 들어

본 가시덤불 수풀의 장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골고다 갈보리 언덕입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놀라운 경험적인 계시의 눈으로 깨닫고, 장차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여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큰

고통의 쓰라림인지를 자신의 체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침묵과 희생을 아브라함보다 더 잘

이해할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심정과 동일한

심정을 공유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나의 친구’ 라고 칭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경험으로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 주위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나 대개 그들은 지식적으로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고 확신했지만 예수님이 전하는 구원의 진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어떻게 우리를 구속하고 나에게 무슨 유익을 줄 수 있는

가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예수님은 많이 외롭고

슬프고 괴로우셨습니다. (눅 9:58)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진리와 의를 위하여 사셨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많은 멸시와 조롱을 받으며 외로움, 슬픔, 괴로움

등으로 고통을 많이 겪었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이 가르쳐주신 진리와

의를 따라 살기 때문에 겪는 외로움, 오해, 멸시, 핍박 등을 통해 주님의

고통과 시련과 헌신을 체험적으로 알고 이해하여 주님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다면 우리도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 (벧후 1:3-4) 곧 친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일은 내가 힘쓴다고 되지 않습니다. 먼저 성령을

통해 나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 내 자아가 죽는 경험을 하고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거듭남의 은혜로 (갈 2:20) 주님의 고통을

공유할 때 그때 자연히 주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친구가 됩니다. (빌 2:13)

 

  혹여 지금 주님을 따르는데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 계속되고 아무리

간구해도 응답이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허락하실

때는 거기에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주님을 신뢰하고 말씀과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이기 쉽습니다. 절대로 좌절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행함으로 믿음을 증거하는 친구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오늘날 주님의 고통과 희생을 오해하는 많은 교회에서 “인간은 부패하여

순종할 수 없고, 할 필요도 없다. 무조건 용서받기에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런 교회에서 “예수는 나의 좋은 친구” 라고 평생 노래할지라도

주님께서는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거짓복음으로

자기를 기만하며 합리화하는 자들에게 “여기 내 친구들을 보라!” 하시며.

”입으로는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 (딛 1:16)) 하는 자들의 핑계를

물리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명실공히 주님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누가 자신의 친구인지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3-15)

아브라함은 말씀에 순종하고 행함으로 하나님의 벗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아브라함을 닮은 믿음과 신앙으로 거듭나 말씀에 순종하여

진정한 주님의 친구가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