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의 무게
(시16:11) 오늘 나의 삶이 무겁고 힘들게 느껴진다면, 그리고 이미 처해 있는 상황을 편하게 받아들이기 어렵고 내 마음이 불편하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상황을 원하고 있다면, 그것은 집착의 무게 때문이다.
늪에 빠졌을 때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면 더욱 더 빠져 들듯이 이미 와 있는 상황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원망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면 고달프고 힘들 수밖에 없다.
자기가 보고 싶은 관점에서 원하는 것만 바라보면 항상 부족한 것만 보일 수밖에 없다.
바라보는 각도를 조금만 달리하면 자신에게 이미 있었는데도 미처 알지 못했던 감사해야 할 부분들도 많이 보인다.
다 좋은 일도, 다 나쁜 일도 없으며 과거의 삶의 결과가 현재에 나타나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이치임을 알아야 한다.
내게 없는 것, 내게서 떠나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내게 있는 것, 내게 다가오는 것을 편안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좋고 나쁨을 구분하는 자체가 집착의 뿌리가 된다.
◑ 주님 한 분 만으로 과연 만족하는가?
요즘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 늘 묻는 질문이다. ‘나는 과연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는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내 잔이 넘치나이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16:11)
주님이 주시는 평안, 주님이 주시는 기쁨, 능력 이런 것 말고도 뭔가 재력, 지위, 사람(인맥, 인연) 이런 것들을 필요로 한다면, 나는 지금 뭔가에 ‘집착’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 내가 ‘집착’하는 것을 들춰내시는 주님 (막10:17~22)
부자 청년은 부를 지키는 능력이 있었다.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잘 지키는 것도 상당한 능력이다.
그는 겸손했다. 보통 부자라면 예수가 도리어 자기에게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용기도 있었다. 니고데모는 밤에 몰래 숨어서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는 백주 대낮에, 예수를 찾아와 그 앞에서 무릎까지 꿇었다.
그는 또한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킨 사람이었다. “선생님이여, 내가 이것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막10:20) 참 성실하고 남이 부러울 만큼 도덕성이 높은 사람이었다.
▶청년의 집착을 들춰내신 예수님
그런 흠잡을 데 없는 이 청년에게는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집착이 한 가지 있었다.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하늘 보화만 바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 (막10:21)
아브라함에게는 물질을 바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다. 물질에는 강하고 물질적인 집착이 없으니까... 대신 그가 집착하는 이삭을 바치라고 요구하셨다.
▶나와 하나님 사이를 방해하는 '나의 집착'은 무엇인가?
물질, 교만, 사람. 혹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인가? 나는 과연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가? 성경은 통틀어 그것을 강조하는데 말이다.
인간에게 적당한 명예, 재산, 가정, 이런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집착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것을 들추어내시고 결국에는 그것을 앗아가실 것이다.
오늘 밤, 내 마음이 평안하고 감사한다면... 아무 집착이 없다는 증거요, 내 마음이 뭔가 불만족스럽다면... 내가 집착하는 우상이 있다는 증거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