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의 사전적 의미는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의 위력은 사단의 모략을 무력화시키고 사람의 영을 살리는

살아있는 위대한 사건이자 역사입니다. 

예리한 도구에 찔려본 적 있습니까? 

찔리면 찔린 부위에서 피가 나오며 고통이 동반됩니다. 


복음에 찔려본 적 있으십니까? 

만약 복음을 접하고도,

말씀에 부딪혀 마음의 아픈 고통으로 몸부림침을 느끼지 못했다면 

참된 복음을 접한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은 주님의 살아있는 말씀이며 주님 그 자체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장 1절)



주님의 말씀을 접하면서도 내적 찔림의 고통이 없다면 

자신을 다시 돌아봐야 합니다. 

살아있는 주님의 말씀은 그 무엇보다 예리한 날 선 검입니다. 

이 검에 찔리면 엄청난 고통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주인이 되어 내 맘대로 살아왔던 부패한 심장이   

예리한 날 선 검에 찔리면 강하게 발작하여 

내 영혼 전체에 지진이 일어납니다. 


여러 마리의 팔팔한 미꾸라지를 그릇에 넣고 소금을 뿌리면 

화들짝 놀라 엄청난 고통에 못 이겨 빠른 속도로 꿈틀대며 

내장 속에 있던 더러운 찌꺼기들을 마구 토해냅니다. 

더러운 것을 다 토해내야 맛있는 추어탕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말씀은 미꾸라지에게 뿌리는 소금입니다. 


배추로 김치를 만들려면 팔팔한 순을 죽여야 맛있는 김치가 됩니다. 

팔팔한 배추는 그냥 누그러지지 않습니다. 

팔팔한 배추는 양념이 스며들지 않습니다. 

반드시 소금을 뿌려야 누그러지고 양념이 스며들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그 후, 맛있는 김치로 재탄생 됩니다. 

주님의 거룩한 말씀이 배추에 뿌려지는 소금입니다. 


이렇듯 복음은 더러운 찌꺼기를 걷어내고 팔팔하던 힘을 빼버리며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을 접하며 화들짝 놀라 

내 안의 부패한 죄악이 눈물에 섞여 나온 적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이 내 심장을 찔러 가슴을 부여잡고 

통곡하며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연하게 된 적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심령은 복음이라는 예리한 날 선 검에 찔린 것이고 

배추가 연해지듯 내 심령의 변화가 분명히 찾아온 것입니다. 

이런 분은 거듭남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에 찔림으로 인하여 내 속사람의 더러움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내 속사람의 더러운 죄를 깨닫지 못하면 

애통한 회개가 없기에 거듭남도 없고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육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의 입으로 먹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기만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의 더러운 죄성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도 없고 속사람의 변화도 없습니다.

거듭남은 더더욱 없습니다.

거듭남이 없으니 구원도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먹는 사람은 

말씀이 살아 움직여 내 속사람을 찌르기에 내 더러운 죄악들이 놀라 

밖으로 다 분출됩니다. 

그것이 가슴을 치는 회개라고 하며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거듭남은 지식으로 인해 머리에 말씀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먹음으로 인해 내 속사람의 더러운 죄악이 밖으로 분출되며

내 영혼이 깨끗하게 변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팔팔한 배추가 소금으로 연하게 누그러져야 양념이 스며들듯

성령님은 죄와 함께할 수 없기에 더러운 죄를 몰아내고 오십니다.

이런 사람이 흰옷을 입은 영혼이며 구원될 사람입니다. 


복음을 접하고도 내 속사람의 변화가 없이 이방인처럼 

교만하기를 그만두지 아니하며,  

인내하지 못하고 급하며, 

분냄을 즐겨하며, 

다른 이웃 형제를 '라가'라 하며,

입에서 쓴 물이 넘치고, 

이웃 형제를 정죄 판단하며, 

여전히 내 의가 강하여 자존심에 의존하고, 

탐욕이 있고, 

형제를 고발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복음을 접하며 찔린 게 아니라, 복음을 본 것입니다. 

그러기에 속사람의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나를 신뢰하며 계속 나로 살려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즉... 복음을 거부한 자의 모습입니다.


스스로는 복음을 받아 주님의 양이 되었다고 주장하겠지만,

변화되지 않은 영혼은 결코, 주님이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접하고

내 심장이 뜨겁게 고동하며 속사람의 진동이 일어났을 때  

겸손하기를 즐겨하며,  

인내하려고 하며, 

분냄을 억제하며, 

이웃 형제에 대하여 의롭게 변호하며, 

입에서는 단물이 나오며,

이웃 형제를 정죄 판단하지 아니하며,

내 자아가 죽길 원하기에 자존심에 의지하지 아니하며,

탐욕이 없어지는 현상을 느끼게 된다면

복음을 본 것이 아니라, 복음에 찔린 것입니다.

찔렸기에 속사람의 변화가 일어나며

거듭남의 출발점에 서서 준비하는 영혼들입니다.

나를 포기하고 예수님 형상으로 살려는 영혼들입니다.


복음은 머리에 저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건 복음이 아니라 학식입니다.   

복음은 내 심장을 겨냥해 찔리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도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을 접하며 

내 심장에 전율이 느껴지십니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직접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나는 주님의 말씀에 의하여 통치되고 있는 중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으로 힘차게 파고든다는 증거입니다. 


진정으로 복음을 접한 사람은 거듭나야 합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뜨거운 눈물이 많이 흘러야 합니다. 

애통함으로 인해 가슴을 치는 일이 많아야 합니다. 

늘 가난한 심령이 되어 낮아지고 겸손해야 합니다. 

골방에 들어가려는 마음에 이끌려야 합니다. 

나는 더러운 죄인이라는 거룩한 부끄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갈급하게 매일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이런 모든 현상들이 바로... 나의 뜨거워진 영혼으로   

주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거듭나려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의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예리한 날 선 검에 찔린 영혼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4장 12-13절)


우리는 생명력이 있고 예리한 말씀의 검에 찔려 우리의 속사람 속에 있는 

죄의 덩어리를 끄집어내는 위대한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복음의 말씀에 찔리지 않고는 천국 문을 볼 수 없습니다.

찔리는 고통이 없다면 고통을 느끼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어서 복음의 말씀에 찔려 거룩한 고통을 느끼시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길 간절히 권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