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너무 배고프면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육체의 허기를 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보며
당연히 먹을 것을 찾게 됩니다.
먹을 것을 찾으면 다행이지만,
찾지 못하면 도무지 견딜 수 없어 괴로워합니다.
이것이 배고픈 사람의 원초적인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은혜에 굶주리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겠습니까...
영적 허기가 올라오면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면 도무지 견딜 수 없으므로
가뭄에 논이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지듯
심령이 갈한 상태가 되어 괴로워합니다.
그런 분들은 은혜를 공급받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려고 하며 몸부림칩니다.
이것이 주님에 대한 갈급증입니다.
아마...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에서 이런 분들을
종종 본적이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모습이 진짜 믿는 사람의 기본적인 영적 상태입니다.
이런 분들은 늘 은혜에 갈급해 하며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고 주님께 호소합니다.
또한,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지극히 이런 모습이 되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메마른 스폰지에 물을 뿌리면 바로 스며듭니다.
은혜에 굶주린 자는 은혜를 받으면 바로바로 흡수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마음은 물댄동산이 되어 생수가 흐릅니다.
온갖 세상적 잡념이 사라집니다.
더더욱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주님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기쁨이 벅차오릅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남을 봅니다.
마음의 평안과 자유함이 넘치도록 찾아옵니다.
주님을 사랑으로 바라보듯 내 이웃에 대하여도
사랑과 긍휼함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 모습이 바로 주님 은혜의 날개 아래 들어온 심령들의
참된 모습입니다.
이런 분들은 어떤 분들입니까...
이미 성령으로 변화받아 거듭난 분들입니다.
또한, 자신의 죄인 됨을 깊이 깨달아 알기에
주님의 비추임을 원하여, 나를 감싸던 어둠이 물러가고
거듭나길 주님께 간절히 매달리던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육이 아닌 영으로 살려는 분들이기에
육과 세상적인 풍요는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여, 영의 은혜는 필수입니다.
차라리... 육의 허기는 견딜 수 있어도
영의 허기는 도무지 견딜 수 없어 합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누구에게 욕을 들어도 그를 용서하며
매를 맞아도 그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여 항상 기뻐합니다.
몸이 아픈 가운데 있어도 이를 두려워 않고
늘 주님의 은혜가 흐르기에 감사만이 넘쳐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주님이 바로 나를 관찰하시며
함께 계신다는 것을 눈치 챗기에
두려움과 고민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거듭나려는 마음도 없이
믿음과 은혜의 이론만 가득한 사람은
이미 다된 것으로 착각하여 육의 모습으로 살아도
은혜가 저절로 알아서 부어지는 줄 압니다.
입술로는 은혜를 말하나
은혜의 본질을 맛본 적이 없기에
은혜의 갈급함을 실상으로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원래 영이 아닌 육으로 살아왔기에
육의 만족을 은혜와 자유함으로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짜은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육이 강성해질수록
영이 죽어간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멸망하는 게 육의 사람입니다.
이는 스스로 살았다고는 하나 죽은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은혜를 갈급히 구하는 분들 중에 주의할 게 있습니다.
객관적 검증된 곳이 아닌, 자꾸 소문난 어디에 가서
뭔가 채워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잘못된 곳에 가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정말 은혜를 갈급히 찾는 분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
해결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들고 계신 성경책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은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옆에 있는데
왜 어디서 무엇을 찾으려 합니까...
어디 가서 누구에게 뭔가를 듣고 얻으려는 것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대하는 것은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성경이나 신앙 글을 읽고 충분히 숙지했으니
더이상 볼 필요가 없다 하여
더이상 성경도 신앙 글도 읽지 않으려고 하는 분들은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분들은 성경과 신앙 글을 지식으로 인식하는 분들입니다.
진짜 은혜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다 아는 말씀이라도 매일 성경을 접하고 신앙 글을 읽어야
영이 피로하지 않고 산다는 것을 압니다.
자동차에 한 번 기름을 넣었다고 영원히 달리지 못합니다.
쇳덩이는 한 번 닦고 방치하면 바로 녹습니다.
계속 닦아줘야 녹(육의 본성)이 생기지 않습니다.
음식을 매일 먹어야 육의 장막이 살아갈 수 있듯
말씀과 기도로 매일 충만해야 영이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정말 심령이 갈급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죄로부터 돌이키기로
단호히 결단한 심령이 성경을 대할 때는
그 역사함이 실로 엄청납니다.
말씀 하나하나가 활활 타는 불꽃이 되어
내 심령 속으로 강렬히 비집고 들어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지금 내가 말씀을 읽으면서...
그 말씀이 나를 향한 주님이 직접 하시는 말씀이기에
마음에 전율이 일어나며 생명으로 역사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대할 때...
그냥 흔한 책을 읽듯 그런 식으로 읽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을 거룩히 여기는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 땅의 권세자 앞에만 서 있어도
기를 못 펴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어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앞에 두고
그리 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결국
기록된 주님의 말씀을...
인쇄된 글로만 본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은 그냥 인본적 윤리 서적에 불과합니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됩니다.
기록된 말씀에...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라고 예수님이 삭개오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도 '아 삭개오를 불렀구나...'
이렇게 제 3자의 관찰자 입장의 마음자세라면
그는 성경을 생명이 아닌, 그냥 책을 읽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심령이 갈급하여
성경을 생명으로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삭개오의 부름이 곧 나를 향한 부르심이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라는 말씀을 접했다면
죄의 두려움으로 숨었던 아담은...
바로 나 자신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혈우병에 걸려...
갈급히 예수님을 찾는 여인의 장면을 읽었다면
내가 혈우병 걸린 당사자의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여리고 성에서 구걸하던 소경된 바디메오가
정말 갈급히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찾고 있다면...
내가 직접 갈급한 바디메오가 되어 예수님을 불러야 하고
바디메오를 데려오라는 장면에서
나를 데려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인본적인 마인드 컨트럴이 아닙니다.
정말 은혜가 갈급하여 주님을 간절히 찾는 심령에게는
성경에 기록된...
이런 장면들이 다 자신에게 향한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 전서 5장 12절)
그리고 실제...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그 시대만의 한 장면이 아니라,
직접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란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대할 때...
절대 제 3자의 관찰자 입장에서 읽지 마십시오.
그것은 지식 주의나 교리 주의자들이나 하는 방식입니다.
성경은 지금 바로 나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2인칭의 직접 듣는 자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마 가슴에서 지진이 일어날 것입니다.
뜨거운 눈물이 흐를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가 느껴질 것입니다.
바로 말씀(성령)으로 거듭나는 모습입니다.
왜 말씀을 읽으며 거듭납니까...
이분들은 이미 자기를 단호히 부인하고
죄로부터 돌이키려 굳은 마음을 먹은 분들이기에
마음 밭이 옥토가 되어, 주님의 말씀 씨앗이 뿌려져
그 옥토에서 발아된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다고 무조건 역사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심령의 상태로 읽느냐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합니다.
마음밭이 육으로 가득한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
머리만 채울 뿐이지만,
마음 밭이 준비된 사람이 읽으면 심령에 채워집니다.
이렇듯 성경만 제대로 대해도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은혜는 그렇게 받는 것입니다.
육에 미련이 많아, 은근히 육으로 살길 원하면서...
그저 감나무 아래 누워, 은혜로 다 알아서 되겠지 하며
입만 벌리고 있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십시오.
은혜는 이 모든 것을 단호히 부인하고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기도하는 자에게 부어집니다.
저를 비롯한 사람들이 쓴 신앙 글은 참고서에 불과합니다.
성경이 주식이라면...
신앙 글은 양념이나 보조식품에 불과합니다.
그저 성경의 진리로 인도하는
길라잡이 정도에 불과할 뿐입니다.
모든 진리의 본질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갈급한 심령으로 성경에서 모든 것을 먼저 찾으십시오.
주님의 말씀이자 곧 주님을 옆에 놔두고
소문난 곳만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뜨거운 심령으로 성경을 대하다 병이 나은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을 대하다가 비추임을 받아 거듭난 분들도 있습니다.
성경을 보다가 자신의 세상적 가난함이
오히려 영적 풍요의 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가난함을 허락하셔서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몸이 병약함으로 인해 육신의 죄를 짓지 못함에
감사하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고난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그게 복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어
실로 감사함이 넘친다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이렇듯 말씀을 살아있는 생명으로 받게 되면...
모든 게 감사하고,
모든 게 즐겁고,
영적 엔돌핀이 온 심령에 넘쳐납니다.
이것이...
은혜받아 물댄동산의 심령이 된 사람들의 본질입니다.
어서 은혜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들어오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부인하고 죄로부터 단호히 돌이키려는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 품은 마음은 입술만의 가벼운 고백이 아닌,
무겁고 뜨거운 심령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 상태로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대하십시오.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은혜의 본질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지금까지 내가 보던 평면적이고 밋밋한 느낌에서
입체적 실상의 뜨거운 불길의 말씀이 나를 휘감을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 좁은 길, 십자가의 길, 순종, 천국의 침노가 익숙해지고
육의 본능과 유혹, 죄의 길에서 멀어지게 하여
주님의 거룩성을 닮아가는 것...
이 모든 것은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은혜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영적인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죄에 유혹되지 못하게)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로마서 6장 14절)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로마서 6장 15절)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린도전서 15장 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