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혈기를 부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직도 내가 내 주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는 주님께서 아직도 나의 주인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삶에 관여하며 사신다면 내 안의 주님께서 나를 통해 혈기를 부리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람은 육적 혈기가 있으면 안 됩니다. 거룩한 영적 울분만이 있어야 합니다. 내 기준의 자아로 바라보는 세상적, 육적인 것이 맘에 안 들어 혈기를 부리면서 주님을 앞세워 거룩한 영적 분노로 포장해서도 안 됩니다. 주님은 이미 그 속마음까지 다 헤아리십니다. 내 의지대로 또는 맘에 안 드니 분노가 올라오십니까?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못 견디시겠습니까? 상대가 나에게 안 맞춰줘서 견딜 수 없습니까? 내 자식이 내 앞에서 서로 맘에 안 든다고 혈기를 부리며 싸운다면 보기에 좋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까지 다 세고 계십니다. 이 모든 것을 면밀히 다 보고 계십니다. 주님의 시선을 의식하는 믿음이 내게 있다면 과연, 모든 것을 보시는 주님의 면전에서 혈기를 내겠습니까?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을 내가 아노라" (이사야 37장 28절) 더욱 무서운 것은... 행위록에 다 기록된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찬양한다면... 주님의 면전에서 자존심 내세우며 혈기 부리지 마십시오. 혈기는 세상의 마귀로부터 온 것입니다. 혈기를 떨치지 못하면 거듭남도 구원도 없습니다. 혈기는... 상대를 맹렬히 정죄하게 하여 믿음을 떨어뜨리거나 거듭나지 못하게 하는 수단으로 마귀가 가장 잘 활용하는 악한 수단입니다. 이 순간... 하나님은 슬퍼하시며, 마귀는 미소짓습니다. 혈기를 부리고 있다면 나는 지금 마귀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노하면 나는 마귀에게 패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이성을 잃어 혈기가 폭포수처럼 마구 나오지만, 시간이 좀 흐르면 곧바로 깊은 후회감이 듭니다. 후회감이 왜 옵니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이고, 자신도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욥기 5장 2절) 혈기는 날이 바짝 선 보이지 않는 칼날과 같습니다. 실제 칼은 육을 상처 낼 수 있어도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아물지만, 혈기의 칼은 상대의 마음을 찌르는 것이기에 어지간해서는 상처가 아물지 않습니다. 이는 보이지 않는 살인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과 나를 멀어지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 됩니다. 자신이 믿노라 한다면, 핍박을 받는데 익숙해야 합니다. 내가 내 혈기로 남을 정죄하며 핍박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가 나에게 그런다고 나도 같이 그러면 안 됩니다. 인간의 보편적 특성상 남이 나에게 혈기를 부리면, 자동적으로 나도 똑같이 맞서는 것을 흔히 봅니다. 이는 나도 상대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믿노라 하며... 내가 남들과 같다면 그 믿음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상대가 나를 자극하면 그냥 흘려보내십시오. 그냥 철저히 바보가 되십시오. 내 머리 위로 날아가며 날 자극하는 새를 굳이 붙잡아놓고 따진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날아가는 새는 그냥 계속 날아가도록 두십시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창세기 49장 6절) 그냥 두면... 제풀에 지쳐 더이상 머리 위로 날아갈 생각을 못 합니다. 맞대응해 봐야 상대만 더욱 격동시킬 뿐입니다. 나에게 아무 유익이 없이 화만 더할 뿐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가십시오.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십시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고, 사랑이 깃든 기도 앞에서는 마귀도 물러갑니다. 따뜻한 사랑 앞에서는 얼음장 같은 마음도 녹여버립니다. 그게 사랑의 위대한 힘입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언 15장 1절) 많은 분들이 나는 거듭나고 싶은데 잘 안 된다고 합니다. 왜 안 되는지 자신에게 먼저 물어야 합니다. 이론으로 지식으로 아무리 성경의 진리를 알아도 그게 머리에만 머물러 있고, 가슴으로 내려와 내가 그 진리대로 따라가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을 구하고 찾는 사람은 남들과 달라야 합니다. 나를 향한 핍박이 맹렬히 다가와도 억울하다고 느끼겠지만, 참고 견디며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절대 이방인들과 같아서는 안 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주님께서 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주님의 성품)를 주시겠습니까... 그저 인품이나 좋게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타락시키려는 마귀의 도발에 맞대응하지 말고 그 열매의 성품으로 마귀에게 승리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래야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국을 침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구하며 거듭나려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듭나려면 반드시 마음을 찢는 회개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애통하게 회개하려는 사람이 혈기를 부려서야 되겠습니까... 거듭나려는 사람이 이방인의 습성과 같아서야 되겠습니까... 남들과 똑같이 하면서... 아무리 입술로 주님을 찾은들, 주님께서 반응하시겠습니까? 주님은 회개하고 거듭나려는 자의 삶을 면밀히 지켜보십니다.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인내하는 모습을 보십니다. 그가 진정 회개하고 거듭나려는 의지가 있는지를 살피십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완벽하며 정확하고 날카롭습니다. 거듭남은 막연히 지식을 알고 주님을 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먼저 내가 주님께 다가가고자 하는 영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온전한 생명이 되어 나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 영성이 통했을 때 주님께서 나를 만지시며 역사하십니다. 부디... 나는 주님을 알기에 믿노라 한다면, 육의 악한 속성인 자존심과 혈기에서 멀어지십시오. 혈기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바보가 되십시오. 안된 말이지만... 진짜 바보는 자아가 없기에 상대가 아무리 심한 욕을 하며 맹렬히 자극해도 화를 내는 법이 없습니다. 바보가 되려는 과정이 거듭나려는 자의 온전한 자세입니다. 그리고, 거듭난 자는 완전한 바보가 된 자입니다. 아마... 거듭나 실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사는 사람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이해할 것입니다. 내 자아로 세상을 보지 말고, 주님의 시선으로 보십시오. 내 시선은 없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분명히 세상이 달라 보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정하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한다면... 온전한 바보가 되시길 간절히 권면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