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평생 비교하면서 살아갑니다.
비교한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비교하지 않고 섬김으로 비상하는 인생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비교를 하게 되면 남보다 비교우위에 있으면 우쭐해집니다.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또한 남보다 비교해서 하위에 속하면 열등감이 생깁니다.
수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항상 비교하는 존재입니다.
한국 사람이 모이면 먼저 나이 먼저 묻고 따집니다.
그러면 나이에 따라서 서열이 정해집니다.
나이 때문에 친밀한 관계가 되지 못하기도 합니다.
나이는 그래도 봐줄만 합니다.
문제는 서열입니다.
서열 문화는 줄 세우기 문화입니다.
서열 문화는 갑질 문화입니다.
서열문화는 높고 낮음에 따라 차별이 존재합니다.
차이가 존재합니다.
차등적 대우를 합니다.
예수님은 골고다 십자가로 향하실 때
제자들은 마음이 왕궁과 부와 명예와 권력의 자리로 향합니다.
예수님은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고난의 십자가를 지려 가시고자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왕관을 쓰고 싶어 합니다.
서로 영광의 면류관을 차지하려고만 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막9:33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예수님이 제자들의 토론하는 내용을 모르시지 않을 것입니다.
다 아시고서 묻는 질문입니다.
사실 토론이라기보다는 논쟁에 더 가깝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순간 제자들은 멀쭘해집니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정신 줄을 놓고
딴 생각을 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침묵합니다.
왜일까요?
그들의 중심의 생각이 마9:34절에 이렇게 언급됩니다.
<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그들은 서로 얼굴을 붉히며 누가 크냐고 쟁론하였습니다.
서로 목청을 높였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분노 폭발을 해서 화를 냈을 것 같습니다.
서로 견제모드입니다.
서열을 따지기 시작하면서
제자 그룹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서열을 정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신경이 곤두서는 일입니다.
서열의 문화에서는 자신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남을 밟아 내리는 비겁함과 비열함이 난무합니다.
조금 위에 올라서려고 비루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허다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서열에 두지 않으시고 섬김에 두십니다.
막9:35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세상은 섬김의 자리에 서면
자꾸 무시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섬기는 이들 서빙하는 이들을 무시하는 것은 서열 문화입니다.
섬김의 자리에서 잘 섬기는 것을
낮고 천하게 생각하기에 갑질 문화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고 자체를 바꾸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서열경쟁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번호를 매기시며
서열을 정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섬김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세상적 리더십은 군림하는 것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섬기는 리더십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많이 섬김 받아야 지도자로 인식합니다.
높은 사람으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자꾸 섬기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섬기는 사람이 높은 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입니다.
기억 하십시오.
비교하지 말고 섬김으로 비상하는 인생이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오늘도 섬김으로 몸과 마음과 영혼이 건강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