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에도 관계치 아니하는 ‘괜찮은 성도’


우리말에 “괜찮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괜찮다”라는 말은 “관계치 아니한다”는 말의 줄임말입니다. 

이 말은 현재 좋은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이 말이 어떻게 해서 좋은 의미로 사용되었는가에 대해서 

국문학자인 이어령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치열한 당파싸움이 많았습니다. 

이 시대의 당파 싸움은 어느 한 파가 득세할 경우 상대 파를 모조리 죽이고 

심지어는 그 가족까지 몰살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복잡 미묘한 정치적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당파에도 관계치 않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당파에도 관계치 아니하고 

초연하게 사는 사람들을 미덕인양 찬양했고 

그러므로 인해 “관계치 아니한다”라는 말은 좋은 의미로 사용되어졌습니다. 

 

몇 년 전 한국에 갔을 때 잠실 야구 경기장을 처음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야구보다는 축구를 좋아하지만 그 때 마침 축구 경기는 없고 해서 

야구장을 찾았습니다. 

사실 나는 한국에 있었을 때 동대문야구장 밖에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잠실야구장이 어떻게 생겼나 하는 호기심도 있고 

또 평소에서는 보기 힘든 야구를 

아주 오랜만에 즐기려고 야구장을 찾은 것입니다. 

 

나는 표를 사는 매표소에서부터 당황했습니다. 

표를 사기 위해 돈을 내밀자 매표소의 직원이 어느 팀으로 줄까요? 

하고 물어 왔습니다. 

사실 나는 야구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고 

또 특별히 어느 팀을 응원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야구장을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순간 머뭇거렸습니다. 

또 10년도 훨씬 전인 동대문야구장에서 표를 살 때는 

그러한 말을 물어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나는 당황했습니다. 

그러자 직원이 이상하다는 듯이 

“1루 석으로 줄까요? 3루 석으로 줄까요?” 하고 되물었습니다. 

나는 얼떨결에 1루 석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야구장 안으로 들어가서야 직원이 그렇게 물어 본 이유를 알았습니다.

 

야구장에 들어가 보니 1루 석 쪽과 3루 석 쪽은 

완전히 양 팀으로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나는 어느 팀이 이기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투수가 잘 던지면 그리고 안타를 치는 선수가 있으면 박수를 쳐 주고 

또 행운의 홈런을 치는 선수가 있으면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며 축하해 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어느 팀이 이기든 그냥 야구를 즐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앉은 자리의 팀이 아닌 상대방을 응원할 수도 없었고 

그리고 당연히 내가 앉은 자리의 팀만 응원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는 봉변을 당할 것 같았습니다. 

나는 어느 팀에 관계치 않고 그냥 야구를 즐기기를 원했는데 말입니다.

 

사회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어느 편에 서지 않고 그냥 열심히 일만 하면 되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승진을 위해서 어느 편에 서야 하고 

나의 유익을 위해서 어느 편에 서야 합니다.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혹 다른 편에 섰다가 그만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어느 편에 서지 않고 열심히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러한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스러운 교회 안에서도 그러한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 편에 서야 하고, 장로 편에 서야 하고. 어느 누구 편에 설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꾸 교회는 파가 나뉘고 그래서 교회는 자꾸만 시끄러워져 갑니다. 

성도, 즉 성스러운 무리는 어느 편에도 관계치 않고 

오직 하나님 편에만  있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하긴 우리가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초대교회 때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사도 바울은 

아볼로 파는 무엇이고 바울 파는 무엇이냐고 질책하지 않았습니까?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들이라고 책망하지 않았습니까?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1:12-13, 3:3)

 

만일 내가 섬기는 교회가 시끄럽다면 

그것은 성도들이 하나님께만 중심을 두어야 하는데 

어느 파에 관계해서 생긴 일들이 아닙니까? 

어느 쪽에도 관계치 아니하는 ‘괜찮은 성도’,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모습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