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제일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세상적 육의 미혹을 견디기 힘들다고 답합니다.

돈, 명예, 이성 문제, 자기 부인, 회개... 

이는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내 원수에 대하여 용서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또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 있습니다.

사랑은 크게 어렵지 않은데 용서는 어렵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용서는 그런대로 되는데 사랑이 어렵다고 합니다.

단호하게 말씀드리면, 두 부류 모두 틀린 주장들입니다.


사랑과 용서는 서로 전혀 다른 의미의 단어가 아닙니다.

사랑과 용서는 글자가 다르지만, 분명히 같은 의미의 말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 있기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있기에,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고, 

용서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한, 그 누구에게도 제한 없이 용서하십니다.

또한, 그 누구에게도 제한 없이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고 주님 앞에 섯을 때는

내가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했는지 그것을 꼼꼼히 따지실 겁니다.

사랑과 용서의 마음이 없다면 단호히 내침을 당할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의 마음은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선악과를 먹은 후, 사랑의 거룩한 주님의 마음이 잠들고 

그 반대인 미워함과 분노하는 마귀의 속성이 들어옵니다.   

하여, 진정으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태복음 19장 26절) 


위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사람의 본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주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으로서 

주님이 함께하면(새사람으로 변화되어 성령님과 동행 하면) 

성령께서 그 사람을 통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너희가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말씀은

너희 스스로 할 수 없으니, 필히 너희가 거듭나 나와 함께해야

그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변화되어 주님과 동행하면 다음과 같은 기적이 일어납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레위기 19장 18절)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누가복음 6장 35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장 44절)


위 말씀들은 사람이 하라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사람을 통해 주님께서 하시겠다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도무지 위의 말씀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주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이런 기도를 하시며 눈을 감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장 34절)


예수님은 육체가 사망하는 그 순간까지 원수들을 용서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똑같은 기도를 하며 죽은 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스데반 집사입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 7장 60절) 


스데반 집사가 원수들에게 돌에 맞아 죽는 그 순간에도 

왜! 예수님과 똑같은 기도를 하였겠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속성이...

성령으로 거듭난 스데반 집사에게 그대로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성령으로 변화 받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인간의 감정상

절대... 원수들을 위하여 그런 기도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나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영이 변화 받았으므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기에

주님은 스데반을 통하여 거룩한 기도가 나오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수많은 교인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에이~ 스데반 집사와 우리가 같나 스데반 집사 정도 되니 저렇게

하는 것이지, 어찌 우리가 스데반처럼 저렇게 할 수 있느냐" 하며 

오버하지 말라고 핀잔을 줍니다.

그분들이 왜 오버스럽다고 운운 하면서 이런 주장을 하겠습니까...

실상으로 변화된 영적 체험의 신앙이 아닌... 

머리로만 다 하려는 관념적 이론 신앙에만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변화되어 주님의 성품에 참여해본 적 없기 때문에 거룩한 마음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여 나오는 평범한 오류입니다.

그러나...

진정 믿고자 한다면, 이런 생각은 아예 지우십시오.

주님께서는 변화 받은 자에게, 원수를 사랑하는 능력을 차별하여 

부여하지 않으십니다. 그 능력은 아주 똑같습니다.  

이천 년 전 스데반 집사 시대에 역사하신 그 성령님이...

바로 이 시대에도 역사하시는 바로 그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여,

우리들도 거듭나 주님께서 함께하면, 스데반처럼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거듭나 주님께서 함께하면, 아들을 죽였던 원수조차

기꺼이 사랑한 손양원 목사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성경에 기록되거나, 기독교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특별한 뭔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들의 모습이 변화된 자의 표준일 뿐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여타 다른 사도들처럼 오래 살며 성화의 길을 갔던 것도 아니고,

거듭나 집사가 되자마자 돌에 맞아 죽는 순교를 당한 것입니다.

성경은 변화된 자가 어떤 길을 가는지 예를 통해 계속 증거합니다. 

그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누가복음 6장 32절)


위 말씀은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이 보통 행하는 사랑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변화 받지 아니하면,

내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사람의 의지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자신이 거듭났는지 아닌지 스스로 알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진정 내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있는지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사랑의 마음이 부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과 증오와 분노입니다. 

이 마음은...

마귀로부터 스며든 것이므로, 아직도 내게 사랑과 용서가 아닌, 

이런 악한 마음이 계속 올라온다면 아직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정말 거듭난 자는... 누가 나를 이유 없이 때려도

그들의 방법대로 동일하게 맞서지 않고,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의 영혼이 불쌍히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왜 불쌍히 느껴집니까...

나 자신은 맞은 것 하나로 끝날 일이지만, 저들이 회개하지 않고

저대로 인생이 끝나면 영원한 불의 지옥에서 고통당할 것이니...

얼마나 불쌍하게 느껴지겠습니까...

하여, 도무지 그들과 같이 맞서지 않고 용서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런 마음을 내 안의 성령께서 주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지금 내 주변에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 내 주위에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형제자매가 있습니까?

그들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달라고 주님께 매달리십시오.

그런 마음 곧 주님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런 마음이 바로 나를 부인하고 돌이키려는 것과 상통합니다.

자아를 죽여달라고 주님 앞에서 굴복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구하는 기도는 막연히 '성령을 주시옵소서'가 아닙니다.

여전히 내 원수에 대하여 계속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려 하면서

어찌 성령님을 구하노라 하십니까...

그런 정도의 구함은 온전히 주님을 구하는 자의 심령이 아닙니다.

나로서는 할 수 없지만, 사랑하고 용서하려 하면서 구하는 것이

주님 보시기에 진정한 구함입니다.


진정으로 변화되고자 하는 자는 분명히 뭔가 다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매달립니다.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매달립니다. 


지금 내 주변에 사랑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형제가 있다면...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보려고 하십시오. 

그러면서 주님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어찌 나는 내 원수조차 용서할 마음이 조금도 없으면서

주님께 내 죄를 용서해달라고, 주님을 구할 명분이 서겠습니까...  

이런 이기심은 주님께서 거부하십니다.

그러나 내 원수에 대하여 용서할 마음을 품고 내 죄를 주님께

고한다면 얼마든지 용서하십니다.

주님께서는 그 마음을 기억하시고,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절대 원수가 나에게 먼저 호감의 반응을 보이는지 봐가면서 

대하겠다는 태도를 접으십시오.

그것은 내 중심적 악한 이기심입니다.

그런 마음은 이 땅의 어느 사람이나 다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과 용서의 마음은...

나 자신의 문제이지 상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먼저 내가 다가가서 그들을 뜨거운 가슴으로 품어보려고 하십시오.

내가 변화되려고 하면 상대도 알아보고 변화되게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사람을 그리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모습들을 다 보고 계십니다. 

이런 귀한 마음을 품는 분들은 반드시 귀한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장 3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