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대하는 2가지 자세

로마서 1장 16절과 17절 말씀을 보면 
복음에 대한 세 가지 정의가 나와있습니다.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는 것이고, 
죄인이 의인이 될 수 있다는 위대한 소식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복음 앞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로마서 1장 16-17절 말씀은 우리에게 2가지 권면을 줍니다.



첫째,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16절).

복음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복음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자랑할 만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육체의 생명은 영혼이지만 그 영혼의 생명은 
바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에 생명을 가지다 주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태도를
가진다면 오히려 그러한 태도가 부끄러운 일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하십시오. 
'완전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완전 한 치료를 받게 된다는 이 복음을 자랑하십시오.


둘째, 우리가 구원의 복음을 믿을 때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나도록 해야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넘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행위로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감정적 체험으로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되어야 강건한 믿음이 됩니다.

물론 기독교가 체험의 종교라는 것은 부인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 이전에 '계시의 종교'입니다. 
꼭 기적적 체험을 한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치료하신 10명의 문둥병자 중 오직 한 명만 
예수님께 감사 표현을 드렸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감정에 기초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호숫가 벤치에서 두 사람이 앉아 수면에 비친 달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아! 달이 아름답구나!"하고 감탄했습니다. 
그때 옆에 앉은 사람이 돌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파문이 일어나며 수면의 달이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감탄했었던 사람이 "아! 달이 없어졌구나!"하고 슬퍼했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그때 돌을 던졌던 사람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습니다. 
달은 여전히 하늘에 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호수 수면과 같습니다. 
사탄이 의심의 돌을 던지거나 죄를 범할 때 
우리의 마음은 구원을 잃은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느낌이나 감정에 구원의 근거를 둔다면 
하루에도 여러 번씩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감정적 믿음이어서는 안됩니다.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나는 구원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