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1장 5절 ~ 13절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누가복음 11:11] |
오랫동안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던 리처드와 수잔 부부는 수잔이 임신했을 때 아주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산모의 건강 문제로 아기가 위험하게 되자 리처드는 매일 밤 아내와 아기를 위해 깨어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리처드는 하나님이 돌보아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이렇게까지 열심히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후 수잔은 유산하고 말았습니다. 리처드는 몹시 실망했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아기를 잃은 것은 아닐까?’ 라는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볼 때는 오늘 본문 속 비유도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이 생각됩니다. 이 비유에서 이웃(때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고 여김)은 오로지 친구의 성가신 끈질김(누가복음 11:5-8) 때문에 친구를 도와주러 잠자리에서 나옵니다. 이런 식으로 읽으면, 이 비유는 마치 하나님은 우리가 계속 귀찮게 졸라야만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아마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실 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클라인 스노드그라스와 같은 성경주석가들은 이것이 틀린 해석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비유의 진정한 초점은 이웃도 이기적인 이유로 우리를 도와주는데 하물며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얼마나 더 우리를 도와주시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결함 있는 인간들보다 더 위대하시다는 것 (11-13절)을 알고, 확신을 가지고 간구할 수 있습니다(9-10절). 하나님은 결코 이 비유에 나오는 이웃이 아닙니다. 아니 그 반대이십니다. 나는 리처드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왜 아기를 잃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당신이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에요.” 만일 이 비유에 나온 이웃이 하나님을 나타낸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 같습니까? 11-13절이 이 비유를 명확하게 해준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 같습니까?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하나님께서 저희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또 중요한 것은 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며, 저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들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