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고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히6:19-20)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열심보다 하나님과 관계입니다.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인간들은 자연을 통한 
창조주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받는 피조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일 뿐입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택함을 받아 복음을 듣고 
주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입어 거듭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특별한 은총을 받는 관계가 성립됩니다. 

신앙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절대적이며 생명의 관계입니다. 
그로인해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예배하고 섬기는 복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예배하러 모이는 자들은 많으나 참 예배가 없고 
기도한다고 부르짖는 자들은 많으나 정작 참 기도가 없어 보입니다. 
그 이유는 신앙의 초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첫째 이유이며 
그 다음엔 다른 대용품으로 예물과 제사를 드리려는 구약의 잔재 때문입니다. 
그로인해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멜기세덱에 관해서 사람들이 듣는 것이 
둔하기 때문에 설명하기 어려워서(히5:11) 하나님이 주신 큰 복을 놓쳐버립니다. 
따라서 소망이 현재적으로 살아 있는 소망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 오는 천국을 바라는 죽은 소망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변화가 없고 그 자리에서 뱅뱅 돕니다.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파악하고 
그의 동선을 따라 영과 혼과 육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정돈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어야 들은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에 머물러 
지난날의 죄를 회개하라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창조냐 진화냐 
또 세례냐 침례냐, 부활이 소망이 되고 천국 지옥은 반드시 있다고 
강조하는 기초신앙에 머물기 때문에 그 속에 있는 가시와 엉겅퀴가 
청소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자신도 찌르고 남도 찌르고 
자신도 휘감기고 남도 휘감는 못난 모습을 보입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사물이 예물과 제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므로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대속의 은총을 무시하고 
다른 대용품을 하나님께 드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는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엉뚱한 길에서 열심을 내고 있는 미혹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물과 제사가 물질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은 헛것이 되지요.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그 동선을 따라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도록 도우십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부름을 받은 성도들이 
육체에서 구원을 받아 안식과 자유를 누리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모진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인내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혼의 닻을 이끌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기 때문입니다. 
휘장 안이면 바로 지성소입니다. 
하늘의 성소입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의 반차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하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만난 그 분, 다윗이 말한 그 분(시110편)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멜기세덱, 바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붙잡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나님께서 맹세하고 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그 약속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겁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부름을 받아 진리로 거룩하게 되어 
주님의 부름을 받아 그 보좌를 침노할 마음을 갖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인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소망인 겁니다(히6:3) 
따라서 젖만 먹는 어린아이들의 자리에서 일어나 지각을 사용하여 
단단한 식물을 먹고 장성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히5:11-14) 
만약 안 되면 본인이 이 단단한 식물을 회피하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모르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겁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그리스도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는 말을 꺼내고는(히5:10) 
그 사이에 히5:11절에서 히6:20절을 끼워 놓고 
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는지 
그 이유를 길게 설명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히7:1절부터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을 
본격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합니다(히7:1) 
율법대로라면 대제사장은 반드시 레위지파여야 하는데 
유대지파이신 주 예수그리스도가 
어찌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설명합니다. 
땅의 성소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레위 지파의 대제사장에게 예물과 제사를 위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늘 성소에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몸으로 속죄의 제물이 되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그 몸으로 휘장을 여시고 
하늘 보좌에 나아가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이 되셨으므로 
반드시 그 주님과 하나가 되어 동행을 해야 하는 겁니다. 
이 말씀을 통한 결론과 우리의 다짐은 분명해 졌습니다. 
이미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의 닻을 그 몸에 지니고 하늘 성소 안에 들어가셨으므로 
우리도 지긋지긋한 육체에서 벗어나 주님을 좇아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일이 남은 육체의 때의 소망이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파악하는 겁니다. 
따라서 이 엄청난 구원을 받았고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을 드리는 주님을 뒤따라 
우리도 썩은 육체로 인해 상한 심령으로 통곡하고 애통해 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겁니다. 

엡2장으로 보면 허물과 죄로 인해 죽은 우리를 주님이 살리시고 
일으켜 세워 하늘에 앉히신 것을 듣고 믿어 그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젖만 먹은 어린아이가 되어 
가시와 엉겅퀴가 그대롭니다. 
남에게 양식이 되는 의인이 못 되고 
평생 아브라함의 짐만 되는 롯과 같은 의인이 될 뿐입니다. 
온 식구를 다 잃어버리고 아브라함의 도움을 받아 
겨우 본인 하나 불 심판을 벗어나는 부끄러운 구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피 안에서 주님과 하나가 되고 십자가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성령 안에서 새 사람으로 지음 받아 주와 하나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 

곧 휘장 안으로 들어가신 주님을 좇아 
그 휘장 안에 있는 지성소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의인들이 되는 겁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로 인해 하나님의 가문의 영광은 만방에 드러나는 겁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이와 같이 썩는 것들에게 
종노릇하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의 자유를 보기를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롬8:21) 
따라서 말씀을 더욱 사모하세요 
많이 듣고 숙고하고 묵상할수록 질 좋은 풍선처럼 용량이 커집니다. 
그러면 주님이 나를 어디에서 어디로 옮겨 
하나님 아버지와 어떤 관계를 맺어 놓으셨는지 
그 대속의 공로를 환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엄청난 은혜이지요. 
그야말로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입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눈앞에 놓여 있고 속죄제물이 되셔서 
나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 새 생명을 주시고 
나를 따르라 하신 주님이 그 정점에 서서 
나를 부르시고 손짓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물론 그 길에서 육체를 버리고 영을 좇아 
주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고난은 따릅니다. 
그렇지만 그 고난은 우리에게 주어진 영광에 비하면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롬8:18) 
그래서 우리가 ‘하늘 영광 보여 주며 날 오라 하네’하고 노래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맹세로 시작이 된 것이며(히6:13) 
그 맹세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실행이 되었고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그 동선에 얹어 
우리의 영혼이 닻이 이끌려 들어간 휘장 안 지성소로 
나아가는 살아 있는 소망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항상 초보에 머물지 말고 단단한 식물을 먹고 
지각을 사용하여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파악하세요. 
그리고 그 붙잡힌 것을 붙잡고 따라보세요. 
마음이 달라지고 가치가 달라지고 안목이 달라지고 품격이 달라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