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설교자만큼 중요한 것은 좋은 청중이다.

설교자가 진리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그의 말이 청중의 귀에 들어가면

청중이 참으로 그 메시지를 들은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것은 속단이다. 청중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므로

가르침을 받은 것이라는 논리는 너무 얄팍한 것이다.

그렇게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가르침을 받으려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들어야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진리를 듣기에 적당한 상태에 있지 못하면

설교를 듣거나 좋은 책을 읽거나 성경 자체를 읽어도 얻는 것이 별로 없을 수 있다.

진리를 올바로 듣는 데 요구되는 도덕적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사 55:11)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되는 곳에서는 언제나 효력이 나타난다는 주장을 

지지해주는 말씀이 아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소리로 외쳤지만 

철저히 무시당한다고 한탄했다.

우리가 이 목사의 설교를 들을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구약의 잠언에는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잠 1:24,25)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주님이 들려주신 ‘씨 뿌리는 자와 씨’의 비유는 진리를 들어도 

유익을 얻지 못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바울은 유대인들로부터 돌아서면서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행 28:26)라는 말씀을 인용했고,

결국 이방인들을 상대로 일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내면적 깨달음을 얻으려면 

먼저 도덕적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주님은 복음서들의 몇몇 구절에서 이 점을 분명히 밝히셨다.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5,26).


요한복음에도 하나님의 진리를 진정으로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의 영혼 안에 영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교훈이 아주 많이 나온다.

대표적인 구절을 찾자면 7장 17절을 들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17).


또한 바울도 이렇게 분명히 밝혔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대부분의 교회들은 목사를 설교단에 세우면서 

“이 목사가 설교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물론 이런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보다 더 시급히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바로 “우리가 이 목사의 설교를 들을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청중이 설교를 들으러 올 때 겸손한 자세로 임한다면,

주님이 그들에게 보내주신 촛불이 크던 작던 간에 

그 촛불에서 아주 많은 빛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자격을 갖추고 있으면 

하나님은 때로 아주 보잘것없는 것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예를 들어, 베드로는 수탉이 우는 소리를 듣고 회개했다.

물론 수탉은 자기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울었을 테지만

주님이 미리 다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에 신앙의 수렁에 빠진 그분의 사도는

마음에 찔림을 받아 회개의 눈물을 강물처럼 흘렸다.

어거스틴(Augustine)은 친구가 번개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회개하게 되었고,

니콜라스 헤르만 은 겨울에 나뭇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를 보고 회심했다.

스펄전(Spurgeon)은 평범한 주일학교 선생님이 회중을 권면하는 말을 들은 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무디(Moody)는 알고 지내던 순수한 노년의 여인이 하는 간증을 통해 

성령의 기름부음을 확실히 받았다.

이런 것들이 분명히 가르쳐주는 한 가지 사실은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는 사실이다.

바꿔 말하자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주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의 귀로 들어도 사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것이다. 

좋은 설교자만큼 중요한 것은 좋은 청중이다. 둘 다 지극히 중요하다.

불타는 믿음 미지근한 신앙은 버려라!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작은 믿음에 만족하며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갈망하는 믿음으로 

전진하라.

A. W. 토저 / 규장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잠 1:24)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마 13:3-9)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행 28:2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