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믿는 형제가 있었다.
말이 어눌하고 약간의 장애가 있었지만
항상 웃는 얼굴에 성품이 착했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나이가 많아 직장을 구하는 일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자신이 가고자 하면 갈수 있는 일터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곳은 주일을 지킬수 없는 곳이였다.
그는 주저함 없이 매우 힘이 들고 월급도 절반 밖에 안되는 곳을 택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 말고도 좀 괜찮은 곳이 많은데
왜 이렇게 고생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이곳 말고는 주일에 교회에 갈수가 없어서 이곳에 다닙니다"
흔한 이야기 같지만 나는 충격을 받았다.
현재 내게 주어어진 여건이 저렇다면 나는 그럴수 있을까?
나의 모든 소득이 절반으로 줄어서 생활 하기 어렵더라도 그럴수 있을까?
예수 믿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진리를 사수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십자가의 길이다.
그 길은 좁고 협착하며 고난을 짊어지고 가는 길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편하게 예수 믿고 천국 가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매맞고 욕먹고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 예수 믿는 자가 가야 할 길이다.
공산주의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공산화가 된다면
기독교인의 절반은 죽은 목숨이 될거라고 한다.
교회에 중직을 맡은 직분자는 배교를 하지 않는한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슬람이 많아지면 기독교의 핍박은 지금에 수십배로 더욱 심해질 것이다.
예수믿는 자들을 박해하고 박멸하는 일이 곳곳에서 생길 것이다.
예수 믿는다고 말도 못하고 숨죽여 가며 숨어서 믿는 자들이 속출할 것이다.
지금 처럼 마음껏 교회에 갈수 있는 때에도
게으름으로 신앙생활에 나태 하다면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배교의 길로 갈지도 모른다.
베드로는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분위기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으면 안될 분위기로 몰아 갔다.
자신이 신앙에 서있는 가는 나중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믿음이 없는 자가 나중에 더 믿음이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언제 환란 핍박이 나의 신앙을 위협 할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주를 위해 무엇을 포기 했는가?
나를 위하여 아무것도 포기 할수 없는 사람은
이미 배교자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죽으면 죽으리라」말은 쉽다.
그러나 지금 작은것도 주를 위해 포기하지 못하는 자는
환란의 때에 결코 그 신앙을 보장할수 없다.
믿음은 나를 포기 하는 것이다.
내가 죽고 죽어 주님을 존귀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누리고 있는것을 주를 위해 절반으로 줄일수 없다면
그는 절반의 그리스도인이요
유사 그리스도인 일지도 모른다.
내가 진정 그리스도인인가?
주를 위해 나는 무엇을 희생하며 살아 왔는가?
이 아침 나의 가슴을 찢으며 회개한다.
이대로는 믿는 자가 아니요 흉내만 내는 자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주를 위해 제물이 되어 주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