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욥기를 살펴보면... 

마귀는 주님의 충실한 종인 욥을 무너뜨려.. 하나님을 배신하도록  

하겠다면서... 하나님께 공식적인 공중권세의 권리를 허락해줄 걸 

당당히 요구합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마귀에게 욥의 목숨만은 해하지 말라 명하시고 

마귀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지.. 쭉 그대로 두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물론... 

욥이 주님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미래의 결과를 

이미 다 아셨으므로, 마귀에게 공중권세를 허락하신 겁니다. 

전지전능의 주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을 훤히 아시므로 

욥이 어찌 나올 것이란 최종 결과를 다 아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마귀는 미래의 일을 모르므로 자기 능력으로 바꿔보겠다고 

무대뽀로 덤벼든 것입니다. 


마귀가 주님처럼, 애초에 욥의 미래까지 다 알았다면... 

모든 노력들이 헛수고가 될 것이 뻔하므로 감히 욥에게 자신만만 

접근하려 들지도 않았을 겁니다. 

마귀는, 아주 처참할 정도로 잔인하게 욥을 괴롭힙니다. 

가축을 빼앗기게 하고, 자식들을 죽이고, 그가 가진 모든 재산을 

한순간에 사라지도록 합니다. 

이제 욥에게 남은 건 피부병에 걸린 자신의 몸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에 욥은 너무 힘들었지만, 주님을 전혀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독백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

(욥기 1장 21-22절) 


모든 것은 내 소관이 아닌 주님께서 주관하시니 

전적으로, 주님의 뜻에 맡긴다는 욥의 엄청난 마음가짐을 봅니다.  

이에 대하여 옆에서 가장 위로해주고 다독여야 할 욥의 부인마저 

이 상황까지 방치하신 하나님을 욕하라며, 위로는커녕 

저주를 퍼붓는데, 이에 욥은 뭐라고 대응합니까...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욥기 2장 10절) 


욥의 이런 의연함이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욥은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마땅히 은혜를 입은 자답게 

지금 처한 엄청난 상황들을 원망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욥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 말의 의미는...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 과정과 결과가 모두, 주님의 절대적 주권의 영역이므로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자신의 얕은 생각으로 이리저리 판단한들 

아무 의미 다는 뜻입니다. 

욥은 이미 은혜를 입은 자답게 주님의 모든 뜻이 다 옳다는 것을 

깨우쳤기 때문입니다. 


현재 나는 고난 중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욥의 마음을 품으시면서... 

이런 고난을 통해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어떤 은혜로 

인도하시는지를 간절히 기도하며 인내로 기다려보십시오. 

주님께서는 분명히... 

그 어떠한 이유도 없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고난을 줘도, 그 사람의 상태에 맞게 조절하며 허락하시지 

감당치 못할 정도로 강압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러한 고난에는 필경 주님의 거룩한 결과를 생산하는 마지막이 

기다리고 있음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장 13절) 


그러나... 

이 고난을 견디지 못해 욥의 처처럼 주님을 힐난한다든지, 

주님이 계신다면... 나의 이런 힘든 상황을 왜 빨리 해결해주시지 

않냐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육적 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그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다 그럴만한 이유와 과정과 결과가 있음으로... 주님의 때에 맞춰 

우리를 적절히 다루심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과정이 너무 힘들어 고통 속에 울부짖지만... 

욥의 예에서 보듯... 

주님은.. 가장 좋은 결과를 이미 보시면서, 이 과정을 만드십니다. 

이 글을 쓰는 미련퉁이 저 역시... 주님의 뜻은 전혀 모른 채 

이것저것 다 빼앗기고... 하는 일마다 뭔가 어렵게 하시는 주님을 

많이도 원망했었습니다. 

내 실상의 모습을 거울처럼 직접 느끼라고, 사람을 붙여주시는데

붙여줘도 꼭 제 기질보다 더한 사람만 골라 붙여주시는 통에 

정신적으로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급기야 꺽이지 않으려 부단히도 오기를 부렸습니다.

그럴수록 상황만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하여...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저 주님의 입장보다 내 입장에만 취해있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며 회개하고 원망하길 반복하다가...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던 저로서는.. 솟아날 구멍은 주님 밖에

없다는 현실을 깨닫는 순간, 결국 꺽이고 말았습니다.

모두 내려놓고 항복(자기 부인)을 선언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는 억지로 자기를 부인하려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냥 그게 저절로 됩니다.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또, 그게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 속사람을 전격 변화시키려는 주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나서 

눈물 콧물 다 빠지도록 회개했습니다. 

전에는 성경 욥기를 읽으며 나와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짐짓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설처럼 읽었었지만

이런 상항을 겪으면서...

욥기를 다시 읽어보니 저 자신이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릅니다. 

욥의 상황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부끄럽게도...

욥이 처했던 상황에 비하면 조족지혈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서 

주님께 불평불만 원망만 했으니 쥐구멍만 찾게 되더군요.

결국... 

주님께서는 주변 여건과 환경을 적절히 조합하고 사용하여... 

이 죄인이 회복되는 걸 계획하시고.. 그 과정을 만드신 것입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는 은혜는, 시간이 충분히 지난 후, 돌아봐야 

그 과정과 끝의 결과가 얼마나 귀한지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회복된 자들이나 그렇지 않은 자들이나 

머리카락 세듯 우리의 숨소리 하나까지도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현명한 사람은 부모 된 위치에서 내 자식을 바라볼 때... 

늘 훌륭한 성장의 결과를 얻기 위해 그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고 

부도 시키고, 간혹 야단도 치고, 매도 들면서 다룰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마음이 많이 아프겠지만, 자식의 원대로 두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 하므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부모의 최종 목적은 자식이 잘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육의 부모도 이러할진대... 

영의 아버지인 주님께서도 이와 다를 바 전혀 없습니다. 

나의 육적인 이 상태를 그대로 두면, 그 결과가 어찌 되겠습니까... 

방향을 못 잡다가 지옥밖에 더 가겠습니까? 


이처럼... 고난을 통해 

주님께서 이루시려는 최종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또다시 같이 먹고 마시며 동행하는 관계로의 회복 아니겠습니다. 

하여, 결국 구원시키고자 함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고넬료처럼 큰 고난 없이 알아서 자기를 부인하고자 하여... 

스스로 말씀에 순종하며 겸손히 엎드린 이도 있습니다. 

주님은 스스로 알아서 자기를 부인하려는 자를 참 기뻐하십니다. 

자식이 알아서 잘하면 부모들도 너무 좋아하듯 말입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기뻤으면... 

천사를 시켜 고넬료에게 먼저 통보하고 

베드로를 직접 보내 성령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베풀었겠습니까...  

참으로 엄청난 특별 대우였습니다. 

고넬료처럼 이런 이들도 간혹 있습니다만... 

사람이란 게 고넬료처럼 알아서 자신을 부인하고 회개하는 자는 

실제 많지 않을 뿐더러, 쉽지도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안타깝지만... 

꼭, 주변 환경과 여건을 통해 고난으로 다뤄야, 주님만을 붙들고 

매달리며 자기를 부인하려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오니... 지금, 힘든 고난 중에 있다면... 

내가 주님께 큰 은혜를 입고 있다는 표적임을 꼭 기억하십시오. 

은혜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편 71절)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땅의 삶과 시간은 아무리 힘들거나 즐거워도... 

아침에 생겼다가 금방 사라지는 물안개와 같은 허탄한 것입니다. 

지금의 이러한 고난이 마그마 같은 불덩어리가 뜨겁게 타오르며 

쓰나미처럼 달려드는 지옥의 영원한 고통만 하겠습니까... 

인생의 희로애락 정말 잠시 잠깐의 시간입니다. 

이 땅의 즐거움과 고난에 연연하지 마시고, 영원히 계속되는 

천국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누리는 기쁨만 간직하길 원하십시오. 

그리고... 그런 고난의 은혜를 통해... 

내 영성이 회복되면, 주님께서 내 삶의 모든 것을 지켜주십니다. 

고난이 주님의 큰 은혜임을 꼭 기억하길 간절히 원합니다.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시편 34장 1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