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이  자기  중심적이다.


상대가  아무리  헌신적이여도  자신에게  조그마한  서운함이  있으면

그  전의  모든  것은  잊고  서운함이  떠나지를  않는  것이  인간이다.


사람은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여간해서는  벗어나기  힘이든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믿음이  좋아서  선을  행하고 

헌신  하는 줄  착각 하기도  한다.


예수님을  가장  닮기를  원하는  집단이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다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장  닮지  못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  일까?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그와  반대로  사는  그리스도인이  바로  나  자신이다.

노력이  부족해서인가?

믿음이  부족해서인가?

사람은  평생을  노력해도  선하게  살 수  없는  죄의  덩어리로  뭉쳐  있다.


믿음도  내가  갖고  싶다고  충만해  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믿음의  훈련이  필요하고  연단이  필요하다.


인생의  광야에는  돌뿌리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다.

하나의  난관을  지나면  또  하나의  어려움이  다가  온다.


나이가  들면  없어져야  할  것들이  늙어서  세상을  떠나는  순간 까지 

그런  일들은  쉬임없이  밀려온다.


고난이  없이  행복만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고난을  통해  그  주인을  알게  하고 

날마다의  삶에서  그 주인을  깨닫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  같이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전에  열심은  이미  지나간  것이다.

지금  현재가  중요하다.

내가  어떤  믿음으로  지금  주님  앞에  서 있는지가  중요하다.


현재의  내  모습은  나의  믿음의  최종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  없는  현재의  내 모습이라면  그것이  내  믿음의  전부인  것이다.


나의  믿음을  과거에서  찾지  말아야  한다.

가룟유다의  마지막  배반의  믿음이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랐던  믿음의  결론 이였듯이

지금의  내  모습이  나의  믿음의  결론이다.


자기  중심적으로  나의  믿음을  해석해서는  안된다.

예전에는  뜨거웠는데  하고  과거에  머무르면  안된다.


하나님은  지금  너의  믿음을  보여  달라고  하신다.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 하셨듯이  

지금 심판이  이른다면  나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순교자들은   마지막 까지  자기의  믿음을  지켰고  

그 들은  그  최후의  순간에  그 들의  믿음을  증거 하였다.

깨어  있어야 한다.

지금  내가  믿음에  서있는지  슬기로운  열 처녀의  비유에서  배워야  한다.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어느  순간이  나의  마지막  기회가  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살되  더욱  성령을  의지하라.

그리고  무시로  기도하며  그 분의  인도하심을  의지 하라.


주님은  한  순간도  나를  떠나신  적이  없다고  말씀 하신다.

세상  끝날  까지  너와  함께  하리라  말씀 하셨다.


두러워  말라

놀라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말씀 하신다.


지난날  내가  염려하고  걱정했고  근심  했던  것들을  회상해보라.

걱정하고  염려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99%일 것이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지금 까지  주님이  나를  인도 하셨고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서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