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무너지는 0 순위는 교만이다.

교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기도 많이 하는 사람도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도 

교만에 무너지기 쉬운 것은

기도 많이 했다고 하는 교만에 넘어지고

성경을 많이 안다는 교만에 무너진다.

 

내가 전도 많이 했다고 우쭐대며 

전도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 자랑 하는 것이 교만이다

 

목회자의 교만은 일반 성도들보다 성경을 많이 알기 때문에 

가르쳐야 한다는 교만에 빠지기가 쉽다.

예수님의 증인이 아닌 스승이 되려는 

영적 우월감이 교만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성도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는 믿음이 신앙의 바탕에 언제나 깔려야 한다.

 

신앙생활 잘하고 목회 잘하다 가도 넘어지는 것은 

내가 했다고 하는 교만함이 

내 속에서 일어 날 때에 생겨나게 된다.

 

모세의 지팡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능력이 있는 것이요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했기 때문에 

아말렉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셨기에 승리를 한 것이다.

 

성도들은 신앙의 본질을 잊어 버리는 순간 

자신이 우상이 되고 

성령 충만이 아닌 교만 충만에 넘어지게 된다.

신앙의 본질은 

오직 주님이요 믿음의 핵심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고 인구 조사하던 다윗에게 

교만이 싹틀 때에 

하나님은 징계의 채찍으로 그의 교만을 꺽으셨다.

인구조사 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 

그 마음속에 교만이 그를 넘어지게 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에서 

내가 잘해서 했다고 하는 교만으로 돌아서는 순간 

그의 믿음은 자신이 우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날마다 나는 죽노라" 고백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여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 이미 죽은자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나의 자랑은 있을 수가 없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

 

아직도 나를 십자가에 못박지 못하고 

내가 살아서 내가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 교만이 

고개를 들때에 나의 신앙은

위험 수위에 올라 있는 것이다.

 

나는 한알의 밀알이 되어 죽어져야 하고 

썩어 져야할 존재임을 인식하며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내가 죽어지고 썩어지지 않으면 

나는 절대로 많은 열매를 맺을수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교만이다.

 

인류의 비극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함에 

선악과를 먹은 것에서 시작 되었다.

마귀는 언제나 교만하게 만들어 나를 넘어지게 한다.

순간 순간 내 속에서 내가 살아 나서 내 생각, 

내 목소리가 커질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들리지 않는다.

 

교회에 사람의 목소리가 커지면 분쟁이 일어나고 

인본주의적인 교회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성도는 꿈속에서도 교만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내 속에서 교만이 일어 날 때마다 

나를 죽이고 꺽는 연습을 쉬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