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나 이 땅에 살면서 대부분 한 번쯤은  

호감 가는 사람에 대하여 관심 갖고 그 사람에 대해 알고자 하는 분들이

있었을 것이고, 또 그 사람과 잘해보려는 심리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여, 주로 남자의 경우는 호감 가는 여성에게 환심을 사려 선물도 하고

그 여성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취미가 무엇인가 알기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으려 노력한 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호감이 가는 남자에 대하여 알고자

여러 경로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뭘 알아야 상대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고,

원하는 결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표면적인 조건과 상황은 대략 알 수 있어도 그 사람 속에 숨겨진

진짜 모습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결혼 후... 전에 몰랐던 것이 슬슬 보입니다.  

이 사람이 이런 면이 있었네? 하며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직접 살아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그게 사귀면서 취하는 정보의 한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평생을 살아보려는 마음이 있다면...

내 생각과 고집, 성격, 자아 등 그동안 고수했던 것을 버리려는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배려 없이 상대가 나에게 맞춰주기만을 원한다면 

그 결혼 생활은 배우자에게 악몽이고,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하여, 주님에 대하여 알기 위해 성경도 부지런히 읽고 그것도 부족하여 

어떤 분들은 신앙 서적과 이런저런 교리서도 꾸준히 사다 보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교회당에 열심히 나가면서 이런저런 소임도 맡고, 

충성봉사도 하고, 목사님 눈에 좋게 들어 칭찬도 받고, 

교회의 각종 모임과 구역 예배도 착실히 참석하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믿음 좋은 것입니까? 

이런 모습이 주님을 잘 아는 자의 모습입니까? 

물론.. 진짜 믿음 있는 사람들도 이렇게 합니다만, 이 모습을 보인다고 

모두 믿음이 좋거나 주님을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대게...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을 가지고 믿음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과 하나님을 실제 아는 것의 차이는 

천국과 지옥의 간극입니다. 

정말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스펙이나, 신상명세,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나 등등 

이런 정보를 아는 것 자체가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를 아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예를 들어,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도... 

수영하는 방법과 이론에 대해서 독파하면 남들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수영 이론을 알고 가르친다고 해서 그가 실제 수영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실제 물에 들어가 수영을 직접 할 줄 알아야 그는 수영을 아는 자입니다. 

이론만 아는 것은 수영에 대하여 아는 자일 뿐입니다. 

수영 이론은 중고등학교 체육 시간에 졸지만 않아도 누구나 이론적으로 

배울 수 있는 간단한 일입니다. 

이처럼, 수영에 대하여 아는 것은 누구나 다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학생들이... 수영을 할 줄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수영의 이론에 대해서만 아는 것일 뿐, 수영을 할 줄 모르면 

그는 수영을 모르는 것입니다. 

적어도 실제 수영을 할 줄 알아야 그는 수영을 잘 아는 자입니다. 


주님에 대하여 아는 것은 주님에 대한 정보만을 아는 것입니다. 

마치, 호감 가는 사람에 대하여 주변의 정보를 통해 아는 것과 같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알려면 결혼 후... 직접 부대껴봐야 알 수 있듯이  

주님을 알려면 주님의 신부가 되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요한복음 15장 5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장 20절) 


위의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결혼해 함께 같이 살자는 말씀입니다. 즉 거듭나, 내 은혜 안에 거하라는 

주님의 간곡한 청혼입니다. 거듭나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봐야 진짜

주님의 속성을 체험하며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체험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마귀에게 세뇌된 내 육의 속성으로 살다가, 성령으로 거듭나 

주님의 거룩한 속성인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내 안에 안착되면 

진짜 주님의 속성을 알게 되고, 또 그 모습 그대로 인도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아는 자의 진짜 모습입니다. 

주님에 대하여 이론과 정보로 알기만 하는 것은 주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술로는 '주여주여 주님을 믿습니다' 라고 하지만... 

실제는 주님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아는 것과 삶이 일치되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도 결혼해서 살아봐야 서로에 대해 잘 알듯... 

주님을 아는 것도, 실제 거듭나 동행해 봐야 그분을 진실로 아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호세아 4장 6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세아 6장 3절) 


주님께서는 호세아의 입을 통해 위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위 말씀을 읽으며 참 의아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민이고 

모든 백성이 다 주님을 섬기는데 왜 주님을 알지 못해 망한다 했는지 

얼핏 보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선민인 이스라엘만큼 주님을 잘 아는 민족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하십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들은 주님을 아는 게 아니라, 그분에 대하여 알기만 했던 것입니다. 

주님과 결혼하지 않아 그분이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진짜 속내와 속성에 대해서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답답해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요구가 무엇입니까...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형식적 예배)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6장 6절)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을 아노라 하며 

예배 행위에만 목숨 걸었을 뿐, 실제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인애)... 

즉, 사람과 주님 사이에 서로 인격적인 사랑을 몰랐던 것입니다. 

하여, 주님께서 진짜 요구하는 것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예배 행위만 드리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것입니다. 즉, 주님에 대해 율법적인 것만 알았을뿐 

진짜 주님의 마음을 몰랐던 것입니다. 

주님에 대해 알기만 했지, 실상으로는 사귀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아는 것, 주님을 진짜 사랑하는 것, 주님과 사귀는 것... 

주님을 진짜 사랑하여, 그분의 요구에 순종하며 합당이 이끌리는 것...

그것이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진짜 지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안 되니... 

예배 행위만 열심히 하다가 망한다고 하신 이유입니다. 

이 시대에도 그런 교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믿노라 하면서도.. 삶이 따라주지 못하고 엇박자를 보이는 것입니다. 

즉... 주님을 모르니, 육(죄)의 속성이 툭툭 튀어나와도 별 개의치 않고

예배 행위에만 목숨걸면, 믿음 좋은 걸로 착각하여 구원받는줄 알다가

멸망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절대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활동하며 쌓인 스펙과 그분의 신상명세에 대하여 많이 안들.. 

그게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고, 혼만 만족시킬 뿐입니다. 

믿음은 영에 연관된 실상이지, 혼에 연관된 허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대하여 아는 것이 내 안에서 생명으로 역사되지 아니하면 그건 

그냥 이론이고 정보일 뿐이라 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5절)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것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아, 멸망하는 것의 차이가 과연 무엇입니까... 

차이는 없습니다 두 말씀 다 주님이 하신 말씀이고 똑같은 의미입니다. 

결국,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거듭남은 반드시 주님(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야 이루어집니다. 

그래야 주님의 마음이 내 안에 실제 심어지기에 그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거듭나 주님과 친밀하게 동행해봐야

그분을 진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성령으로 거듭남)이니이다"

(요한복음 17장 3절)


이해하기 쉽도록, 한가지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믿노라 하는 사람들이라면 마귀에 대해서 모르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아마 지겹도록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귀에 대한 지식이나 이론이나 정보에 대하여... 

풍부한 앎이 있다고, 마귀의 속성으로 새로 태어난 것입니까? 

아마, 절대 아니라 하며 손사래 칠 것이고, 실제.. 손사래가 맞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주님을 믿노라 하면서 주님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에 대하여 지식이 있으면 거듭난 것이고, 주님을 아는 것입니까? 

그것 역시 아니므로 손사래 쳐야 합당합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은 영의 세계와 관련된 것이고, 

영의 세계는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막연히 교리나 하나님을 아는 정보에 의지하여 그럴 것이다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거듭난 내 영이 아닌...

육의 속성이 이끄는 대로 주님을 믿노라 하는 것도 믿음이 아닙니다.

그건 불교의 탑돌이 하며 '비나이다' 하는 것과 똑같은 심리상태로서 

탑 대신 예수님으로 그 대상만 바뀐 것뿐입니다.

이런 행태는 진정으로 내 영이 깨어 주님을 만난 영의 믿음이 아니라,

그저, 내 육적 만족에 영합하려는 혼의 믿음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실제 영으로 하나님을 친밀히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그분에 대해 아는 정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 영혼육이 변화되도록 절박하게 구해야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얻은 인본적 경험, 육의 모습, 내 가치관, 내 관념... 

모두, 그분 앞에서 단호히 다 부인하며 죽여달라고 매달려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역사로 내 영이 살 수 있습니다. 

육과 세상의 매력에 미련이 많아 포기하길 주저하며 

내 육이 죽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면, 내 영은 결코 살 방법이 없습니다. 

영계의 불변 법칙은... 내 육이 죽어야 내 영이 살고, 내 모든 것을 

비우고 버려야 성령으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절박하게 기도하십시오. 

내 오장육부가 찢겨나가는 고통의 심정으로, 주님께 매달리십시오. 

주님께서는 그 중심을 보시고 반드시 성령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분만의 비밀한 역사를 우리에게 보이실 것입니다. 

정말 육의 계산된 생각 없이, 순수하게 부르짖으십시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장 3절)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례미야 29장 12-13절) 


하나님께서는 단 한 심령이라도 구하시려 

우리의 원함보다 더욱 간절히 우리와 만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실제, 우리는 말과 생각뿐이 아닌, 실상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그분 앞에 굴복하고... 나의 모든 것을 죽여달라고 울부짖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약속대로 분명히 응답하시고 만나주십니다. 

주님을 지식과 정보가 아닌, 영으로 만나야 진짜 만난 것입니다. 

그분의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 내 안에 운행하며, 삶으로 지배해야 

나는 주님을 만난 것이고,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말씀이, 

내 머릿속의 정보로 처리되지 않고, 심장에 머문다면... 

나는 변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매일 자신을 

치며 그분께 굴복시켜야 은혜 안에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면(거듭나지 못하면) 절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걸으면서, 전철에서, 운전하면서, 잠자며 꿈에서라도 주님을 구하며 

그분을 알기 원한다고, 절박한 목마름의 심령으로 간청드리십시오. 

일상의 모든 상황 가운데 기도하십시오.

이제 남은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이 기회의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마십시오. 

이 호흡하는 시간이 끝나면 우리는 모든 것이 로그아웃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에베소서 4장 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