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신앙생활을 잘 하기 원한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데 이것이 실제로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신다.

항상 늘 모든 일에서 기도하라는 것이다.

기도를 쉬지 말고 지속적으로 계속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고도 잘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하긴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성도들도 너무나 많다.

솔직하게 말하면 기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성경이 아무리 기도를 강조해도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는다.

사실 기도 없이도 우리는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기도하지 않아도 잘 먹고 살고,

기도하지 않아도 잘 입고 살고,

기도하지 않아도 집이 있어서 잘 자며 살 수 있다.

기도하지 않아도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고도 잘 산다.

 

그러나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주님이 우리의 주인으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의 마음의 주인이요,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시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이다.

주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모든 일에서 주님께 그대로 굴복된다.

우리 안에서 주님이 살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주님의 지배를 받는다.

항상 기뻐하라! 하면 그대로 아멘이 되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하면 그대로 감사가 되는 것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면 그대로 기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있는 사람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과연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인가?

과연 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것인가?

우리들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주 예수님과 관계 속에서 기도를 생각해 보자.

내가 주인 되어 나의 의식주 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면 

그 사람은 기도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주님이 주인 되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목표라면 

기도할 것이 너무나 많다.

이 우한 폐렴 사태만 해도 그렇다.

이 사태가 빨리 종식되어야 한다.

모든 성도들이 다 나와서 예배도 드려야 한다.

함께 교제하며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한다.

그러나 이 폐렴 사태로 기독교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수많은 영혼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독교의 위기가 실감나지 않는 사람은 

결코 기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주님의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복음만 생각해도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13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심각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초기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 올 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극심한 사회 계급이 존재 했다.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 역사에 보면 

선교사님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했다.

선교사님들은 당시 양반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지만 백정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양반들과 백정들이 함께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이런 예배에 대해서 양반들은 반발했다.

어떻게 양반인 우리들이 백정들과 함께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 있냐고...

그래서 양반들만 따로 나가서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이렇게 극심한 차별이 지금부터 130여 년 전의 우리나라의 모습이었다.

그런 이 나라에 복음이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렇게 자유스럽고 

영광스런 나라에서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풍성한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복음이 공짜로 우리들에게 전해 졌는가?

아니다.

수많은 희생과 함께 이 복음이 우리들에게 전해 졌다.

수많은 선교사님들의 희생과 그 자녀들과 그 가족의 희생.

우리는 지금 그 열매들을 따 먹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들을 대신해서 해외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기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 마음은 누구의 마음인가?

그 마음은 내가 주인 되어 있는 마음이요, 

그 마음은 사탄의 지배를 받는 마음이다.

 

우리들은 그렇게 말한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이요,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이다.

많은 성도들이 그 사실을 믿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들의 가족 가운데, 우리들의 이웃 가운데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지옥을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기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기도를 쉬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그 마음은 어디에서 온 마음인가?

주님이 주인 되면 그 사람은 주님의 심장을 갖고 기도할 수밖에 없다.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특별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이라면 당연하게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착각한다.

나는 믿는다고 말한다.

나는 예수님을 믿으니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참 된 믿음의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믿음에 행함이 따라 온다.

참 된 믿음의 사람에게는 반드시 삶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신앙을 정확하게 진단해 보아야 한다.

내가 믿음에 서 있는 사람인지를 확인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병원에 가면 먼저 의사들이 환자를 진단한다.

정확한 진단을 해서 정확한 병명을 알고 

거기에 맞는 치료를 해야 병을 고칠 수 있다.

그런데 병의 진단이 잘 못되면 잘못된 치료를 하느라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몸은 몸대로 고생만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앙을 잘 진단해 보아야 한다.

무조건 믿는 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나는 교회 다니니 반드시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 신앙을 비추어 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유대인들도 신앙생활에 실패한 사람들이다.


[요2: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유대인들은 전혀 알아듣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었다.

그들은 성경을 믿었다.

그들은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도 열심히 드렸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듣지 못했을 뿐만이 아니라 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다.

하나님이 구원자로 이 예수님을 보냈건만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 예수님을 죽여 버린 것이다.

이럴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죽여 버린 사람들.

믿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유대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단하게 헌신도가 높았고 결단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대중 가운데서 특별하게 선택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제자들도 신앙생활이 잘 못 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말하기만 하면 그들은 혼미함에 사로잡혀 버린 것이다.

복음의 핵심중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기도하지도 않았을 뿐만이 아니라, 

그들 마음속에는 세상적인 욕심이 가득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가 버렸다.

제자들도 이런 신앙생활을 했던 것이다.

 

이럴 수 있다.

이렇게 신앙생활이 잘 못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유대인들과 제자들만의 문제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앙생활을 잘 진단해 보아야 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에서부터 잘 못 되어 있는지를 깨달아 알아야 한다.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그곳에 바로 해결책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과 제자들의 신앙생활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했다.

참 됨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야 올바른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신앙생활이 잘 못 되는 모든 원인은 단 하나 예수님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 못 하고 있다면 

내가 예수님을 잘 모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못 하고 있으면 

그 근본 원인이 저 사람이 예수님을 잘 모르고 있구나 하고 진단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해결책이 나온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성전이라고 말씀하신다.


[요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성전을 사흘 동안에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라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건물을 성전이라고 생각하는 신앙과 

예수님이 성전이라는 것을 아는 신앙은 하늘과 땅 차이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수 천 년 동안 제사를 드렸던 성전을 

헐라 고 말씀하신 것은 이제는 성전 중심의 모든 종교 활동이 끝났다는 것이다.

이제는 새로운 성전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 중심의 새로운 성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들이 예수님 중심의 새로운 성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시대 성전의 의미를 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일들을 성전 중심으로 했다.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다.

성전은 죄 용서를 받는 장소였다.

성전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장소였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성전에 나갔던 것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중심 신앙생활은 

완성 된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림자요 모형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게 한 것은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라고 한 것이었지 그

것이 완전한 신앙생활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에 올인 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이 원하는 수준에 이를 수 없었다.

어떻게 그림자요 모형인 것을 중심으로 한 신앙생활이 

온전한 신앙생활이 될 수 있는가?

그러나 그들은 종교적인 열정으로 열심히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을 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수준에 결코 이를 수 없었다.

 

그들은 성전 중심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지만 

신앙생활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들은 성전 중심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지만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았지만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다.


[사29:13]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행동으로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입술로도 하나님을 존경한다고 했으나 

정작 그들의 마음은 바알 신에게 가 있었다.

바알신은 곧 이 세상이다.

바알신은 곧 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이것에 마음이 빼앗겨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없는 형식적인 제사만을 드리고 있었다.

왜 그랬는가?

그들의 마음의 중심을 사탄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드리는 제사로는 사탄을 물리칠 수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전 중심의 예배는 죄를 용서받을 수도 없었다.

그들은 짐승이 자신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니 

그 것으로 죄를 용서 받는다고 생각했었다.

사람이 죄를 범했는데 짐승이 대신 피를 흘리고 죽으면 

그 공로로 사람의 죄가 용서 되는 것인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이것은 장래 일의 그림자요 모형일 뿐이다.

사람이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는 

죄 없는 의인이 그 사람의 죄를 뒤집어쓰고 

대신 담당하여 죽을 때만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죄 없으신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만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직 짐승만을 잡아 죽이면서 

그 공로로 죄 용서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림자 인데 그것을 붙잡고 성전에서 제사만 드린 것이다.

당연하게 죄 용서도 없었다.

죄 용서가 없으니 하나님과 화목도 없었다.

하나님과 화목이 없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받아 들여 질 수 없었다.

하나님과 원수 상태인데 어찌 그 분의 말씀이 그들 마음속에 받아들여지겠는가?

그래서 안 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성전 중심의 제사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증이 없는 신앙생활이었다.

신앙생활의 핵심 중 핵심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사실적인 확증이다.

하나님의 존재가 확실하다면 

그 사람은 모든 영역에서 승리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누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사실적인 확증이 없으면 모든 일에서 흔들리게 된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이 확실하지 않는데 

그 사람의 모든 종교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증이 없으면 기도도 형식적인 기도가 될 수밖에 없다.

예배도 형식적인 예배가 될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맡긴다는 것도 형식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과 교제도 형식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존재가 확실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의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인가?

그리스도 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는 것이다.

참 된 성전이 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참 된 성전이 되신 예수님이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성전으로 살아 계신 것이다.

성전 되신 예수님이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면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 수준의 놀라운 변화가 시작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시기에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연 어떤 변화가 오는가?

참 된 성전이신 주 예수님이 마음속에 들어오시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악한 사탄이 쫓겨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간시키는 사탄의 쫓겨나니 

그 때부터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성전 되신 예수님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면 

그 사람은 온전한 죄용서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온전한 죄 용서가 되니 하나님과 막힌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하나님과 실제적인 화목의 시작된다.

이 때부터 이 사람은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그 말씀 앞에서 아멘! 하는 것이다.

그 때부터 이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찰떡처럼 착착 달라붙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안다.

영적인 양식이 공급되니 영혼이 건강하게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되는 것이다.

 

성전 되신 예수님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면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이 확증된 사실이 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신 안에 들어와 계시니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사실적인 증거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자신 안에 살아 계신다는 확증.

이 때부터 이 사람은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이 사실이 된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과 동행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모든 삶의 문제를 하나님께 온전하게 맡길 수 있게 된다.

이 사람은 이제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에서 

온전히 하나님으로부터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이 사람은 하나님 수준이 된다.

그 어떤 삶의 문제를 만날지라도 

이 사람은 하나님 수준의 해결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그래서 그 인생이 행복하고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다.

 

새 시대가 열렸다.

우리는 그림자와 같은 성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시대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참 된 성전인 예수님을 중심으로 

신앙생활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참 된 성전이신 주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 되시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신다.

나는 그 예수님께 내 마음의 중심을 내어 드렸다.

그 예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온 지 46년 째.

그 예수님은 내 안에서 신실하게 일 해 오셨다.

사도행전 29장의 역사가 내 인생 가운데서 실제가 된 것이다.

그 분이 내 인생 가운데 들어오셔서 이루신 수많은 일들.

그 분이 내 인생 가운데서 이루신 모든 일들을 회고록을 하나 써야 할까?

성전 되신 예수님이 나의 주인으로 오셔서 이 모든 역사를 이루어 오셨다.

지금도 이루어 가고 계신다.

그리고 내 인생이 다하는 그 날까지 

성전 되신 주 예수님이 내 안에서 신실하게 일 하실 것이다.

성전 되신 예수님이 내 인생에서 모든 인생의 갈증을 해결하시고 

              나를 진실로 풍성하게 하셨다.

성전 되신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시기에 나는 신앙생활의 목마름이 없다.

성전 되신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시기에 나는 신앙생활에 답답함이 없다.

성전 되신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시기에 나는 신앙생활에 무기력함도 없다.

최후 승리의 그날까지 나는 주 예수님과 함께 믿음의 경주를 경주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