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리라”(마6:24)


사람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현재 그의 하나님이다. 

그래서 탐심은 우상숭배가 된다.(골3:5)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산다고 하면서 그 하나님이 그의 실세가 아니다. 

하나님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지금 앞에 있는 사안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그 증거이다. 한 때에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수석비서관이 장관이 되면 

실세 장관이라는 말을 했다.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뜻일 게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 보물이 나의 실세이다. 

사람은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곳에 시간과 물질을 투자한다. 

그래서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간다. 행동이 따른다. 

따라서 그 보물을 볼 수 있는 눈이 온 몸을 보존한다.


신앙의 초기에는 열심에 따라 믿음이 결정되는 것 같지만 

점점 성숙해서 안정이 되고 나면 성향으로 바뀐다. 

어둠으로 기울던 성향이 빛으로, 

돈으로 기울던 성향이 하나님께로 자신도 모르게 기운다. 

이 기울기가 바로 천국의 비중이다. 

8복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와 주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자본주의 유물론 시대에 살면서 돈에 자유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돈에 의해 산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보물이 되면 

돈을 그 이상의 차원에서 아래로 내려다본다. 

양쪽에서 이쪽이냐 저 쪽이냐의 싸움에서 

위쪽이냐 아래쪽이냐 위아래로 구분이 된다. 


말씀을 많이 묵상하는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광을 보아야 한다.(요1:14) 

영광을 본 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가치가 무척 크고 무거워 보인다. 

세상이 다 가볍게 보인다. 

명예도 권세도 돈도 존중할 만한 것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에 비하면 시시하다. 

세상의 금은보화와 각양 좋은 것들을 자신 속에 비쳐진 하나님의 영광과 

그 소망으로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젖이 떨어진 아이가 엄마 품에 조용히 안겨 있음같이 

하나님의 품에 안겨 뼈 속 깊이 스며드는 짜릿한 평안을 맛 볼 수 있다(시131편) 

가치관의 변화이다. 

인생관이 따라 온다. 

그리고 운명이 바뀐다.


그러나 땅의 보물에 걸려있는 사람은 

결코 그의 나라와 그의 나라를 구할 수 없다. 

실세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실세가 나를 움직인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그 올무에 빠져있다. 세상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있음이다. 

물질문명의 가치관의 파도가 무섭다. 

사람의 혼을 빼서 돈으로 향하게 한다. 

하나님은 상징적 대표일 뿐이다. 실세가 아니다. 

왜, 실제로 나를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물을 보는 눈이 바뀌고 영광을 보는 눈이 바뀌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복을 보는 눈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를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