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보다 더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는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자신에게 퍼부어진 온갖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무응답을 경험했다. 

이때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주목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세례 요한은 끝까지 충성한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촌 예수님이 무명 시절, 그가 자신의 뒤에 오실 그 분이심을 믿었다. 

그리고 철저히 그분을 예비하는 사역을 했다. 

자신의 사역과 제자들을 그분께 양보했으며 사역에서 오는 인기도 포기했다.

그런 그가 헤롯에 의해 허무한 죽음으로 세상을 마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무고한 죽음을 허락하셨다. 

세례 요한이 형장으로 끌려갈 때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의 삶과 죽음의 이유에 대해 하나님께 뭐라고 질문했을까? 

하나님은 과연 그 질문에 답하셨을 까? 

그렇다면 그 답은 어떤 것일까?

세례 요한은 많은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포기하게 하셨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세례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버려진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방식과 침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실망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별히 다른 사람의 죄악 때문에 피해자가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나님, 왜 이렇게 불공평하세요? 

 주님을 잘 믿고 싶었던 나와 우리 가족에게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

무정하게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들을 향한 분노는 

결국 그것을 허락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진다. 

이런 경험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부담감을 갖게 된다. 

온전한 순종이 일어나지 않는다.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원망이 있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완전하신 나의 주, 행하신 모든 일 완전하시다"라고 고백이 나오지 못한다.

세례 요한의 무고한 죽음은 결국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만 온전히 해석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삶은 에수님의 죽음을 예표(豫表)하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 역시 십자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려진 듯한 상황으로 들어가셨고 그 가운데 죽으셨다. 


예수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시편의 말씀으로 하나님께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철저한 하나님의 침묵과 외면을 경험해야 했다.

예수님은 인간의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상황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겪으시며 

그 저주를 다 받으셨다. 하나님 스스로 그 모든 고통의 짐을 다 받으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고통 가운데 외치는 그 소리에 

응답하지 않으심으로 우리에게 침묵하신 이유가 있었음을 설명하셨다. 

이것이 수없이 억울한 아픔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해 위로가 된다.

미국의 1.5세 청년들을 대상으로 집회에서 말씀을 듣고 

나는 담대히 그 상처들을 건드릴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 가운데 예수님보다 더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 이용규 / 더 내려놓음 P 157